우리 시대의 소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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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소명은 무엇인가
  •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헌법학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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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소명 또한 계속 바뀐다. 일제강점기를 살던 사람들이 조국의 독립을, 해방 직후의 시대에는 민주국가의 건설을, 그리고 1960~70년대에는 경제적 부흥을, 70년대 중반 이후로는 민주화를 소명으로 했던 것처럼.

그런데 1987년 민주화 이후에는 시대적 소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오랜 숙원이었던 민주화의 성취에 대한 만족으로 긴장의 끈을 놓았다고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뚜렷한 시대적 과제에 대한 공감대가 없었던 것도 이유로 볼 수 있다.

민주화 이후 3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시대적 소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노력하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독재와 투쟁하며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피와 땀, 눈물을 흘리던 시대의 열매를 누리는 것에 취해, 무엇이 진정한 민주주의이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부족했던 것이다.

독재정권에 항거하여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고통스럽고 위험한 일이었지만, 적어도 그 목적과 목표에 대한 혼란은 없었다. 그런데 정작 민주화 이후에는 서로가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가운데 민주주의에 대한 혼란이 깊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혼란을 민주적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가볍게 넘긴 경우가 많았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있었고,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번갈아 집권하면서 망국적인 영호남 지역갈등이 상당히 완화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교체 과정에서의 권력투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포퓰리즘이라는 독소가 성장하는 것을 묵과했던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로막는 치명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는 자유와 평등이며, 민주적 의사결정의 기본방식이 다수결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올바른 실현을 위해서는 자유와 평등의 조화가, 개인적 자유와 공적 이익 사이의 균형이, 다수의 주도적 결정권과 소수자 보호의 양립이 중요하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에는 결코 성공적인 민주주의가 될 수 없으며, 영국과 미국, 프랑스, 독일 등의 대표적 선진국들도 이를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민주주의가 여야 간의 대립 격화를 비롯한 보혁갈등의 극단화, 양극화의 심화 등으로 인하여 새로운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정한 민주화라는 시대적 소명에 대한 인식과 노력의 부족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진정한 진보도, 진정한 보수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말이 공감될 정도로 보혁갈등이 왜곡되고 있으며, 서로가 기득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 가운데 균형추의 역할을 해야 할 중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80석 거대 여당이 마음껏 독주하고, 이를 다수결로 정당화시키는 것이 결코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과제는 무수히 많지만, 중장기적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점은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 및 공감대의 형성을 통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이다.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이 구별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 민주주의를 민주주의이게 하는 본질적 요소들, 민주주의의 근본 가치에 대한 깊은 숙고와 성찰이 주권자인 국민 모두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시대적 소명, 이제 우리는 그 앞에 서 있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헌법학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Frankfurt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했다. 현재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 정개특위 자문위원, 헌법연구자문위원, 헌법재판소 제도개선위원/연구위원,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대검 사법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민주헌법과 국가질서>, <헌법총론>, <기본권론>, <국가조직론>, <헌법학>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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