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 사생아, 잉글랜드 왕좌에 앉다
상태바
노르망디 사생아, 잉글랜드 왕좌에 앉다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5.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간소개]

■ 정복왕 윌리엄: 노르망디 공작에서 잉글랜드 왕으로 | 폴 쥠토르 지음 | 김동섭 옮김 | 글항아리 | 608쪽
 

이 책은 '정복왕'으로 불리는 윌리엄이 1066년 영국을 정복하고 영국 왕으로 등극하는 과정을 상세히 추적하고, 영어에 미친 프랑스어의 영향 등 역사와 문화 교류의 내용을 풀어 썼다. 윌리엄은 중세 유럽의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입지전적인 군주다. 그의 조상은 덴마크에서 건너온 바이킹이었고, 911년에 노르망디 지방에 정착해 프랑스 왕의 봉신이 된 롤롱이 그 시조다. 그는 노르망디 공국의 제1대 공작이었다. 윌리엄은 노르망디의 장엄공 로베르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중세 사회에서, 특히 노르망디 공국에서 제후의 사생아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 비해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덴마크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만인들은 ‘덴마크식 풍습’이라는 독특한 관습을 지키고 있었다. 이들의 풍습에 따르면 비록 서자라고 해도 아버지의 지위와 재산을 적자처럼 물려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어떻게 윌리엄이 서자 출신으로 노르망디 공작이 되었으며, 훗날 영국을 정복하고 위대한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를 다양한 학문적 관점에서 조망했다.

책은 두 개의 축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축은 공시적인 문화의 축으로, 윌리엄이 태어난 11세기 서유럽의 공간적 특징을 기술한다. 두번째 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통시적인 관점에서 사건과 인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윌리엄은 충동적이긴 했지만 이성이 지배하는 경우에는 자제할 줄 알았다. 그리고 결코 이유 없이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의 결단력과 냉정함은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초연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며, 또 그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만들 줄 알았고, 남들이 만들어놓은 경험과 사상도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그는 균형 감각과 합리적 사고의 소유자였으며, 규율을 존중하는 계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격한 분노에 사로잡힐 때는 드물게 실수도 범했다.

책의 3부는 영국 정복에 관한 이야기를 다뤘다. 윌리엄의 일생은 세 구간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구간은 1035년 윌리엄의 아버지인 장엄공 로베르가 죽고 불과 7세 때 노르망디의 공작이 되는 시기로, 후견인들 덕분에 안전하게 성장하는 단계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성년이 되어 공국의 제후들이 일으키는 수많은 반란을 제압하는 1065년까지의 시기다. 마지막은 1066년 영국 정복에 성공하고 영국 왕이 된 후 사망할 때까지의 기간이다. 영국 왕이 된 후에도 윌리엄은 사방에서 일어나는 반란을 진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노르망디보다 인구는 2배, 총생산이 3배 더 많았던 거대한 영국을 통치하기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말이다.

소수의 노르만인이 영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노르만국이라는 당시로서는 근대적인 국가 시스템을 들 수 있고, 엘리트 계층의 고급문화와 발달된 제도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영국에 없었던 요새성의 건축을 통해 피지배 계층을 효과적으로 통치한 것도 정복에 성공한 이유 중 하나였다. 정복 이후 영국에서는 앵글로색슨 왕조가 사라지고 노르만 왕조(1066~1154)가 들어선다. 영국이 게르만 세계에서 라틴 문화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이다. 영국 문화는 이후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언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등장하는 플랜태저넷 왕조(1154~1399)의 마지막 왕인 리처드 2세에 이르기까지 영국 왕의 모국어는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였다는 사실 하나만 봐도 윌리엄이 영국 왕조에 미친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은 중세 봉건 제후의 영웅담이 아니다. 윌리엄이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노르망디 공국보다 몇 배나 더 큰 잉글랜드 왕국을 정복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가 일구어놓은 앵글로-노르만 제국이 어떻게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원인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주제다. 서양사의 주도권은 여러 나라를 거쳐 영국에 정착했다. 영국은 프랑스와의 애증 관계를 끊고 세계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 이면에는 현재 영국 왕실의 뿌리인 윌리엄이 다져놓은 노르만 왕조, 즉 노르만 제국이 그 중심에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