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영입’의 허와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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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영입’의 허와 실
  •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 승인 2024.04.02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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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형 칼럼]

국회의원 선거철이 되면 각 정당에서는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리곤 한다. 그 결과 각 분야의 유명인들과 전문가들은 물론 이전까지는 대중적인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사람들도 한순간에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인사로 탈바꿈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정치는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안인 만큼 다양한 식견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새롭게 참여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정당들이 여러 분야에서 정치 신인들을 발굴하고자 애쓰는 것 또한 분명한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이 좋은 일을 왜 항상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서야 하는지 모르겠다. 오는 4월 10일에 치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도 예외가 아니었다.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실제로 일을 하려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업무를 익히고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구체화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텐데, 이렇게 촉박한 선거 일정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 영입된 사람이 과연 그 수많은 과업을 한정된 시간 안에 아무 어려움 없이 완수하고 유능한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야 애초에 염려할 필요가 없겠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정당들이 일정상의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인재 영입 시기를 총선 직전으로 늦추는 것은 인재 영입이 공천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인재를 얻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능력 있는 사람들을 더 이른 시기에 당원으로 뽑아서 정치적인 식견을 길러 주거나 본래 자기 정당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내부 인사들을 국회의원이 되기에 적합한 사람으로 키워 내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공천 또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롭게 성장한 정치 신인들과 기존 정치인들이 당원들 앞에서 역량을 겨루는 방식으로 실시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래야 정치 인재도 제대로 육성할 수 있고 정당의 역량도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선거를 바로 앞둔 시기에 본래 직업 정치인이 아니었던 인사를 어느날 갑자기 자기 정당 소속이 되었다면서 언론에 노출시키고 국회의원 후보로 ‘전략 공천’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면 이는 ‘영입 인재’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뿐더러 정당 정치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정당들이 인재를 육성할 수 있게 하려면 그보다 앞서 정치 혐오부터 극복해야 할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는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 이야기의 대부분은 자기가 지지하지 않는 정치인 또는 세상의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비난과 혐오로 가득차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선거철이 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새로운 인물’을 갈망하게 되고, 정치인들은 그러한 심리에 편승해 정치적 이익을 노리곤 한다. 사실 ‘인재 영입’ 관행 또한 ‘새로운 인물’을 이용해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인들의 계산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정치 혐오는 오히려 정치인들이 스스로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얼마 전에 한 관료 출신 초보 정치인이 ‘여의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발언이야말로 대중의 정치 혐오감을 교묘하게 부추겨 자기의 정치적 이익을 취하겠다는 얄팍한 술수를 드러낸 행태였다. 그 초보 정치인의 말대로라면 불과 4년 전에 자기가 소속된 정당에서 ‘인재 영입’이라는 명목으로 뽑아서 내세웠던 사람들도 이제는 더 이상 ‘인재’가 아니라 ‘여의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는 뜻이 될 것이고, 그 이전에 한때 관료였다가 지금은 특정 정당에 몸담고 있는 자기 자신부터가 그 ‘사투리’를 쓰는 사람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뜻이 될 테니 이만한 자가당착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정치인이 이처럼 정치 혐오를 이용하려는 술수를 부리면 누구보다 먼저 자기 자신이 그 덫에 걸려 버리고 마는 법이다. 어떤 독자들은 지금 이 글 역시 특정 정치인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결코 누군가를 혐오하고 비난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 글에서 특정 정치인의 발언을 굳이 언급한 이유는 정치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이제는 그 누구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는 것임을 분명히 해 둔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극복한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활동하는 정당들 또한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성숙한 공론의 산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는 지금의 현실과 같은 이상한 방식의 ‘인재 영입’이 아니라 ‘인재 육성’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뿌리 깊은 혐오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서 필자가 생각하는 구체적인 방안은 5월 이후에 이 자리에서 제안하기로 한다. 필자는 ‘언어를 통한 인간과 사회의 소통’을 연구하는 텍스트언어학 연구자로서 이 문제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그에 앞서 게재할 바로 다음 글에서는 곧 10주기를 맞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하고자 한다. 다음 칼럼을 기약하면서 이 글은 일단 미완성으로 마무리한다.

 

조원형 편집기획위원/서울대·언어학

서울대학교 언어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언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만하임 라이프니츠 독일어연구원 방문학자, 국립국어원 학예연구사 등을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천주가사에 대한 텍스트언어학적 연구”, “텍스트언어학에 기반한 ‘쉬운 언어(Leichte Sprache)’ 텍스트 구성 시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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