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공·무학과 제도는 스탯을 잘못 찍은 캐릭터를 키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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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공·무학과 제도는 스탯을 잘못 찍은 캐릭터를 키우는 것’
  • 이윤임 유한대학교·게임학
  • 승인 2024.04.01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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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대학은 사회에 진출할 전문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산업체 인사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대학 교수들에게 전문성이 아닌 인성 교육을 해 줄 것을 요구한다. 고등학교에 직업인 특강을 나가보면 아이들이 수업을 듣지 않고 떠드는데도 수업 참관 중인 선생님은 특별한 제재를 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학습권, 인권 등이 중요하기 때문에 꾸중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학생들에게 “인성 교육은 언제 진행되어야 할까?”라고 물어보면 초등학교 때라는 답변을 한다. 덧붙여서 인성 교육은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점심 한 끼가 만 원이 넘고, 물가는 올라가는데 급여는 올라가지 않는 현실에서 부모들은 먹고사는 데 바쁠 수밖에 없다. 먹고 사는 일이 넉넉해도 빠르게 바뀌는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당장 유튜버가 되고 싶다는 학생에게 어떤 상담을 해줘야 할지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대학에 가면 놀 수 있을 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현실은 대학에 입학하는 순간 취업을 준비하는 모드로 전환된다. 대학 가면 놀 수 있다는 것도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무전공·무학과의 도입은 학생들이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대학에서 하라고 허용하는 것과 같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찾고, 학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대학에서 해결하라는 것이 아닌가.

더 이상 초, 중, 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꾸중하지 못 한다고 말한다. 대학은 ‘학점’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어 그나마 ‘쓴소리’를 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다. 학생이 선택한 진로(학과)에 맞는 전문 교육과 더불어 그 직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소양과 인성 교육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그런데 정부는 무전공·무학과 제도를 확대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다양한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학생들 선택의 폭을 넓힌다는 점에선 모두 좋은 제도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수강하며 어떤 학과로 갔을 때 혹은 어떤 분야로 갔을 때 졸업이 쉽고 덜 힘든지를 선택하게 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무전공 학과 입학 후 중도탈락률이 각 대학 내 평균 중도탈락률보다 2~5배까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그나마 학생이 학과를 선택하고, 교수들도 ‘우리’ 학과 학생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학생의 미래에 더 신경을 쓰고 고민하지 않을까?

대학은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특히 전문대학의 역할은 짧은 시간에 산업체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을 빠르게 익혀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다. 전공 과목을 집중해 학습하고 사회에 나가기도 빠듯한데 인성도 함양하고, 무엇으로 먹고 살지 고민하며 탐색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직업의 특징에 맞게 지능(int), 힘(str) 등의 수치를 올려 캐릭터를 성장시킨다. 무전공·무학과는 게임으로 치면 스탯(stat)을 잘못 찍은 캐릭터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좋게 말하면 이것저것 다 잘하는 하이브리드 캐릭터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잘하지 못하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과 같다. 게임의 캐릭터는 삭제하고 다시 키울 수 있지만 학생들은 그럴 수 없다. 대학은 사회 진출을 위한 인재를 양성하고 이것은 곧 나라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필요한 학과에서 필요한 교육을 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이것저것 탐색을 해보는 것은 오히려 학생들의 대학 적응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무전공·무학과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이윤임 유한대학교·게임학

• 현) 유한대학교 교수
• 현) 교수노조 교육선전실장
• 전) 교수노조 교육선전부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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