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부터 세계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 지구인문학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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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부터 세계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 지구인문학의 시선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8.27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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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지구를 상상할 것인가?: 지구인문학의 발견 | 허남진·조성환·이우진·이원진 지음 | 모시는사람들 | 288쪽

 

이 책은 한국에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으로서의 지구인문학의 관점에서, 오늘 인류세의 생태위기와 기후위기 등 복합위기, 다중위기의 시대에 직면한 인류와 지구, 만물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미래를 모색하기 위하여 우리가 새롭게 가져야 하는 인식과 태도는 무엇인지를 모색한다. 

인간이 진보하는 동안 퇴보를 거듭하며 자원으로 전락해 온 지구의 반격, 인류 절망의 끝자락에서 지구 존재자들의 연결망을 새롭게 상상하고 재구축하는, 원리와 동력을 외래의 사상이 아니라 우리 전통의 사상과 실천들, 즉 이규보와 홍대용 등의 실학사상과 동학, 원불교, 한용운 등 개벽종교의 철학과 사상 등 토착적 사상의 맥락에서 찾아 내놓는다. 

지구인문학연구소가 구축한 한국학 또는 개벽학의 맥락과 21세기의 전 지구적 다중 위기를 대표하는 인류세 담론의 맥락은 ‘생명을 넘어서 살림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로 상통하는 바가 많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그 논의를 이규보, 홍대용 등의 실학자나 동학, 원불교 등의 개벽종교, 그리고 특히 한용운이 대표하는 한국 고유의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님’의 철학 같은 한국학에서 출발시키면서, 서양의 지구학과 대면한다는 점에서 한국으로부터 세계로 발신하는 ‘토착적 지구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구인문학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인문학의 범위를 전 지구적으로 확장한다는 뜻이다. 동양학과 서양학을 통섭하는 일이지만, 주로는 그 균형점의 회복을 위하여, 동양학의 서양학에 대한 짝사랑을 넘어서 서양학에서 동양학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동양학(한국학)적 맥락에서의 말 걸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의 전개이다. 이는 지구-내-존재 전체의 존재론을 전개하는 일이며, 서구 인류학의 ‘퍼슨(person)’과 한국학의 ‘님’의 대화 시도가 대표적인 것이다. 여기에는 한국학 내에서의 인문학이 본래 ‘천지인삼재(天地人三才)’를 아우르는 것이었다는 점이 천문학, 지리학, 인문학을 통섭하는 인문학으로서의 ‘지구인문학’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1장에서는 ‘지구화 시대의 지구인문학’의 기본 의미를 살핀다. 지구인문학은 1990년대 이래 지구화 시대에 즈음한 ‘지구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로서의 ‘지구학’ 중에서도 특히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고 지구중심주의로 나아가고자 하는 학문적 경향을 의미한다. 가톨릭 신부이자 지구학자(geologian)를 자처한 토마스 베리는 인간과 지구가 상생하는 방법의 하나로 자원으로서의 지구가 아니라 친교와 외경의 대상으로의 지구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러한 지구인문학적 지향은 조선 후기 동학과 실학에서도 찾을 수 있는바, 18세기 실학자 홍대용, 19세기 동학의 스승 최시형, 20세기의 천도교 철학자 이돈화, 원불교를 그 핵심 사례로 제시한다.

제2장은 두 개의 사건(인물)을 통해 ‘지구적 전환’의 의미를 살핀다. 조선 후기의 기학자 홍대용은 지구의 위상에 대한 관점 변화를 통해 사람과 자연 존재자의 연결망을 변혁하는 거대한 정치생태적 변화를 예고하였다. 브뤼노 라투르는 온전한 전체성을 지닌 객관적 과학으로서의 지구에서 벗어나, 부분으로서도 충족적인 대지로서의 지구로 관점 전환을 요구한다. 라투르의 지구적 전환이 고대 코스모스에서 갈릴레오 사건이 일으킨 서구 근대 과학적 지구에서 다시 인류세 시대의 지구중심적 사고로 돌아온 신코스모스로의 이동이라면, 홍대용이 일으킨 지구적 전환은 고대 천인합일(天人合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고전적 코스모스에서 인간-자연의 구분을 없앤 ‘천인물합일’(天人物合一) 코스모스로의 이동이다.

제3장은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로서 지구인문학의 학문적 모토를 지향하면서 인간과 지구의 관계 정립을 위한 ‘지구종교’의 방향성을 모색한다. ‘지구종교’란 ‘인간과 지구의 상생을 위해 지구를 하나의 공동체로 인식하며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를 말한다. 먼저 지구에 대한 인간의 시선이 탐구나 정복의 대상에서 ‘공동운명체’로 변모하고 있음을 살펴보고 대표적인 사례로 토마스 베리의 지구학과 지구종교에 대해 검토한다. 다음으로 ‘지구를 공경하는 종교’를 ‘지구종교’라고 개념화하고, 그러한 사례를 폴 왓슨, 래리 라스무쎈, 브론테일러 등을 통해 살펴보고, 근대 한국의 개벽사상을 지구종교와 지구윤리로 재해석한다.

제4장 ‘인류세 시대 존재론의 전환’에서는 캐나다의 오지브웨족의 언어에서 만물을 ‘person’으로 간주하는 사례를 출발점으로 하여, 여기에서 ‘person’은 한국철학적으로 한국어의 ‘님’에 해당한다고 보고, ‘님의 존재론’을 시도한다. 오지브웨족의 person과 한국어의 님은 인간 이외의 존재를 thing이나 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먼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처럼 인간과 사물의 상호의존과 상호연대를 함축하는 님의 존재론이야말로 생태위기 시대에 요청되는 포스트휴먼 존재론이라고 할 수 있다.

제5장 ‘지구학적 관점에서 본 먹음-먹힘의 철학’에서는 ‘먹고 사는’ 일이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분야와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논의를 출발한다. 심지어는 인간의 먹거리가 기후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최근의 연구도 논의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특히 요즘과 같이 생태위기와 기후변화로 지구에서의 거주가능성(habitability)이 문제시되는 현실에서 먹음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이 장에서는 플럼우드의 음식(飮食) 철학의 철학적, 종교학적, 지구학적 의미에 주목하면서 ‘지구학자’로서 플럼우드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동학사상과 대면시키고자 한다.

제6장 ‘인류세 시대 지구 담론의 지형도’에서는 서양에서 논의되는 지구 담론의 흐름을 살핀다. 즉 ‘지구’를 가리키는 말로 Earth, globe, Gaia, planet 등의 개념이 각각 사용되고 ‘Gaia2.0’(브뤼노 라투르), ‘Eaarh’(빌 맥키번), ‘the Intrusion of Gaia’(이사벨 스텡제)와 같이 다양하게 재개념화되는 현장을 살핀다. 지구화 시대, 그리고 인류세 시대의 지구가 이전의 지구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그리고 인간중심적 사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안된 이들 개념들이 사용되는 맥락을 고찰하고, 의미상의 차이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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