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음식에 담긴 경이로운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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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할 수 없는 특별한 음식에 담긴 경이로운 사연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7.10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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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 가는 음식들: 우리가 잃어버린 음식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 | 댄 살라디노 지음 | 김병화 옮김 | 김영사 | 632쪽

 

이 책은 우리가 잊었거나 존재조차 몰랐던 자연의 동식물을 재배하고, 채집하고, 사냥하고, 요리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의 매혹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역사, 정치, 문화, 공동체, 풍미 등 그 음식이 유래한 지역에 대한 특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전 세계 각지에서 수천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음식들이 사라지는 비극을 증언한다. 대량생산과 효율성만을 위해 개량된 극소수의 종에 기대고 있는 오늘날의 위태로운 식량 시스템에 대해 묵직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의 음식을 잃는다는 것은 우리와 세계를 연결해주는 고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인류는 20세기 중반 녹색혁명을 통해 기근을 예방하고 10억 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다는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했다. 그러나 지구는 이제 그 무거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새 품종은 수확량이 늘어난 만큼 많은 물과 비료를 필요로 해서 자원을 고갈시켰다. 녹색혁명은 세계를 먹여 살리기 위한 장기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지만, 세계는 이 임시방편의 시스템에 갇혀 버렸다.

그와 함께 우리 삶 역시 점점 균질화되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난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보다 훨씬 다양한 음식을 먹고 있는데?” 맞는 말이다. 우리는 서울에서 미국의 유명 브랜드 버거를 먹고, 내륙지방에서 언제든지 초밥을 먹고, 여름에도 냉면과 빙수를 먹을 수 있다. 마트에만 가면 열대의 신선한 바나나와 아보카도, 오렌지를 언제든지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다양성은 똑같은 종류의 다양성이다. 전 세계가 사서 먹는 것이 갈수록 똑같아지는 것이다. 전 세계의 씨앗은 기업 네 군데 손에 장악되어 있고, 세계 치즈 생산의 절반이 한 곳에서 제조한 박테리아와 효소로 생산된다. 전 세계 돼지고기는 단 한 품종의 돼지 유전자에서 비롯되었고, 바나나는 단 하나의 캐번디시 품종만이 국제적으로 거래된다. 세계 80억 인류의 경험 전체가 균질성의 덩어리로 수렴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지구를 폭력적으로 지배한 결과, 식물과 동물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몰려 있다. 인류는 어마어마한 단일경작 품종을 심기 위해 넓은 삼림을 밀어버리고, 그 땅에 뿌릴 비료를 만들려고 하루에 수억 리터의 기름을 태우고 있다. 대양의 90퍼센트가 이미 변형되어 해양의 야생성이 사라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유전적으로 단일한 식물을 재배하게 유도해서 소수의 엘리트 품종을 제외한 토착 품종들이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우리는 생물다양성을 파괴하는 한편 소수의 작물을 대량생산하는 방식을 위해 강과 저수지에서 엄청난 분량의 물을 끌어다 쓰고 있다. 이는 미래의 자원을 빌려 쓰는 갚을 수 없는 빚이다. 우리는 지금 빌려온 시간으로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미래에서 빌려온 풍요에 취해 손을 놓은 사이 식품 다양성의 위기뿐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생명이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곳곳에서 이상 징후를 알리는 경고가 울리고 있음에도 우리는 자연을 착취해서 얻어진 현재의 풍요가 영원히 가능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그런 우리에게 코로나-19 팬데믹은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고 사회를 파열시키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와 똑같은 일이 작물에게서도 이미 진행 중이다. 맥류붉은곰팡이병은 매년 수십 억 달러의 손해를 끼치며 식량 시스템을 위협하고 있다. 온난해지고 습해지는 기후변화는 이런 질병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유전적으로 하나의 복제체인 바나나는 포자 몇 개만으로 농장 전체를 초토화시키는 파나마병에 의해 괴멸적 타격을 받고 있으며 감귤류 산업 역시 감귤그린병으로 병들고 있다. 이 모두가 대량생산을 위해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은 결과이다.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가? 저자는 환상 속의 과거 같은 시대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를 폭력적으로 굴복시키고 지배하는 현재의 식량시스템으로는 80억 인구를 지탱하기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재의 소품종 대량생산의 시스템이 붕괴하기 전에 이를 보완해야 하며, 더 늦기 전에 그 대안으로 사라져 가는 음식들과 그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를 통해 저자가 발견한 것은 음식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먹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인류가 역사를 살아오면서 음식을 대하는 아주 전통적인 방식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늘날은 이런 자신들을 먹여 살리는 생물에 품었던 경외심과 존중심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동물과 작물이 상품화되고, 눈에 보이지 않도록 창고와 도축장에 가득 쌓여 있는 이름 없는 제품 단위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라져 가는 음식과 동식물을 지키려고 분투하는 농부, 어부, 제빵사, 치즈 제조자, 양조자, 요리사, 소비자들이 있다. 저자는 이들에게서 낙관적 미래의 희망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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