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logica vetus 삼부작이 하나의 텍스트로 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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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logica vetus 삼부작이 하나의 텍스트로 묶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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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주들·명제에 관하여, 입문 | 아리스토텔레스·포르퓌리오스 지음 | 김진성 옮김 | 그린비 | 320쪽

 

‘오르가논(Organon)’이라는 이름 아래 애독되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관련 저술 중 낱말 즉 개념을 다루는 『범주들』과 문장 즉 명제 형태로 표현된 판단을 다루는 『명제에 관하여』 그리고 중세 논리학 교과서의 표준이 되었던 포르퓌리오스의 『입문』은 12세기 초반부터 삼부작을 이루며 구논리학(logica vetus)이라 불렸던 저술들이다. 

그중 『범주들』과 『명제에 관하여』는 서양에서도 오랫동안 하나로 묶어 출판해 왔는데, 여기에 중세 서양에서 천 년 이상 논리학과 철학 입문서로 지위를 굳힌 포르퓌리오스의 『입문』을 더한 책이다. 요약하자면 낱말과 문장의 종류와 성격을 다루는 세 고전이 하나의 텍스트로 묶인 것이다. 

옛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과 이 세상을 둘러싼 우주의 근원이 무엇인지, 또 만물이 궁극적으로 무엇으로 되어 있는지 하는 의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고자 했다. 그들은 우선 신화를 통해 천체와 지상의 온갖 사물에 이름을 붙이며 큰 밑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그 밑그림을 바탕 삼아 철학자들은 존재를 비롯하여 생성, 변화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며 체계화하기 시작했다. 신화를 전하는 시인들처럼 철학자들은 세계의 창조자로서 신을 논했다. 그리고 만물의 근원 물질을 물, 불, 흙, 공기의 4원소로 환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주론과 존재론의 언어적 토대는 과연 무엇일까?

‘만학의 아버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들』에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것들은, 그것들을 나타내는 ‘낱말’(단어, 개념)로 표현된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은 낱말을 분류하는 작업에서부터 시작된다. 마치 사고파는 물건들을 부문별로 분류하듯, 아리스토텔레스는 열 가지 범주로써 낱말을 분류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그런 다음 곧바로 『명제에 관하여』에서 낱말들로 구성된 문장들을 분류하는 작업을 이어간다. 『범주들』의 핵심은 실체와 나머지 아홉 가지 범주와의 관계다. 이 관계는 철학적으로는 실체와 속성의 관계이고, 언어적으로는 주어와 술어의 관계이기도 한데,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나아가 이 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묻고, 낱말들의 의미 관계를 묻는다.

『범주들』은 세계의 종단면을 들춰보는 존재론이자 논리학이다. 범주는 술어라는 문법적 뜻을 넘어 사물을 분류하는 근본 개념이기도 하다. 또한 열 개의 범주는 어떤 주어에 붙는 열 가지 술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있는 모든 것’(모든 존재)을 분류하는 열 개의 큰 유(genos) 개념이기도 하다. 이렇듯 『범주들』의 범주들은 문법적, 논리학적 의미뿐 아니라 존재론적 의미도 가진다. 그것은 나아가 대립, 반대, 선후, 동시, 변화 개념 등을 논의한다. 이로써 기본적으로 세상의 횡단면을 들춰보면서도 생성과 변화의 문제를 다루는 자연학 저술들의 탄생을 예고한다. 아울러 『범주들』은 범주에 관한 논의가 들어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다른 저술들, 예컨대, 『형이상학』,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거쳐 가야 할 통로이기도 하다.

『명제에 관하여』는 참, 거짓의 판별 문제를 제기한다. 낱말과 낱말이 제대로 이어졌는지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명제에 관하여』에서는 참, 거짓을 판별할 수 있는 명제들과 그 종류, 명제들의 상호관계 등이 다뤄진다. 명제 즉 문장들의 상호 연결 관계를 따지는 추리에 앞서 그 토대가 되는 요소들이 분석 대상이다. 4장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 권유, 명령 등을 나타내는 문장은 명제에서 제쳐 놓는데, 참 또는 거짓을 가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서술문, 주장문, 진술문이다. 『명제에 관하여』는 문장과 더불어 문장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어떤 방식으로 결합되어 어떤 성질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지를 다루는데, 문법적, 논리적 관점뿐 아니라 심리적인 관점에서 문장을 다루기도 한다. 이는 『분석론』의 논의로 이어지면서, 전통 논리학 교과서에서 개념(단어), 판단(명제, 문장), 추리의 틀을 이루었다.

중세 서양에서 천 년 이상 논리학과 철학 입문서로 지위를 굳힌 포르퓌리오스의 『입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 원문을 전하는 대부분의 필사본에서 오르가논의 첫 저술인 『범주들』 앞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입문』이 『범주들』에 대한 입문서라는 전통적인 해석을 낳기도 했는데, 사실 『입문』은 말과 사물의 관계, 그리고 존재론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논리학 전반에 대한 입문서이자 철학에 대한 입문서다. 이런 이유로 포르퓌리오스는 자신의 책에 ‘입문’이라는 제목을 달았을 것이다. 한편 고대 후기에는 일반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으로 철학 공부를 시작하였기에 포르퓌리오스의 『입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로의 입문서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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