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윤리학의 통렬한 비판...'선'의 절대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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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윤리학의 통렬한 비판...'선'의 절대성에 대하여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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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선의 군림 | 아이리스 머독 지음, 이병익 옮김 | 이숲 | 176쪽
 

『그물을 헤치고』를 비롯해 부커상 수상작 『바다여, 바다여』로 유명한 20세기 영국 대표 작가 아이리스 머독의 핵심 철학을 담은 책이다. 날로 다양하고 복잡해지는 현대 사회의 윤리 문제를 담은 윤리학의 기본서라 할 수 있다. 영국 문학계에 큰 영향을 남긴 저자 머독은 철학을 전공하고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 교수로 15년간 재직했다. 하지만 철학자로서 그의 영향과 성과는 소설가로서의 명성에 한동안 가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 이전에 행위를 중시하던 규범 윤리학의 대안으로 덕 윤리학이 대두하면서 철학자들은 오래전 출간된 이 책에 주목했다. 행동을 중시했던 실존주의나 행태주의 윤리학을 비판하고 덕을 윤리의 본질로 파악한 그의 철학만큼 날카롭게 핵심을 파악한 사고를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윤리학의 전성기였고 그런 상황은 21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의료 윤리, 생명 윤리, 법조 윤리, 기업 윤리 등 다양한 분야의 도덕 기준과 적용에 대한 성찰이 절실해지면서 현대 윤리학은 ‘옳은 선택’이란 과연 무엇이냐는 문제에 집중한다. 이 ‘옳음’의 기준은 개인의 권익 보호일 수도 있고, 공동체의 이익 보존일 수도 있다. '선(좋음)'에 옳은 선택은 결과 이상의 의미는 없다. 선택은 외적 행위다. 윤리학이 선택의 범주에 머문다면, 각자의 행위 이전의 심리 상태는 윤리학의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럴 때 이른바 내성은 윤리학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현대 윤리학의 주류에서 행위의 내적 동기, 갈등 같은 인간 내면의 상태는 완벽하게 무시되고, 관찰 가능한 외적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만 부각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현대 윤리학의 이런 흐름을 실존-행태주의로 규정하고 완강하게 대립한다. '과연 이것이 윤리학의 본령인가', '선에 대한 지향을 배제한 윤리학을 과연 윤리학이라 부를 수 있을까'라고 저자는 묻는다.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할 당시 철학계의 주류는 유럽의 실존주의와 영미권의 '분석철학'이었다. 저자의 도덕철학은 이 양대 철학의 핵심을 반박한다. 플라톤과 시몬 베유의 영향을 받아 초월적 존재인 신과 타자를 아우르는 현실에 대한 ‘관심 쏟음’이라는 개념에서 영감을 얻고, 행위자의 자율적인 행동을 도덕의 기초로 보았던 기존 관점을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행동의 목적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오늘날 세태와는 거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선'이 무엇인가를 규정하지 않는 이 책은 결과 지향적 사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선'의 개념을 향하게 하는 내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어로 처음 번역되는 이 책은 '선(좋음)'의 절대성, 도덕의 본령을 요령과 타협 없이 추구한 책이다. 저자의 이런 ‘불친절한’ 태도는 오히려 편리한 독서, 이득이 되는 독서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어떤 충만함을 느끼게 한다. 선을 추구하고, 선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타협할 수 없고, 편리를 추구할 수 없는 도덕 철학의 존재이유라고 이 책은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선이란 말하자면, 완전한 선에 대한 포부와 우리 한계 안에서의 현실적인 성취 사이의 경계에 걸쳐 있는 것으로, 우리에게는 그 경계의 양쪽을 화합하게 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며 "선 개념은 우리가 이기적인 층위의 의식 속으로 주저앉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저 선택 의지에 매달린 가격표가 아니며, 일부 철학자들의 바람과 달리 기능적이고 가벼운 의미의 ‘선’은 선 개념 구조의 일부분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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