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바라보는 탈냉전 시대
상태바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탈냉전 시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6.10 14: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1강_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총론: 오늘의 세계」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국제 질서의 변화 및 전개 양상을 다루는 첫 번째 섹션 ‘오늘의 국제질서’ 제1강 최장집 명예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강연 중 일부를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오늘의 세계 – 한반도에서 바라보는 탈냉전 시대


최장집 교수는 오늘의 세계를 표상할 수 있는 “탈냉전에 대한 객관적 또는 균형적 이해”의 시금석을 놓고자 한다. 즉 피상적으로 “변화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국제정치 질서”를 두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방법 내지 전략에 대해” 말하는 대신 “탈냉전에 대한 아웃라인”을 그려보려 한다고 밝힌다. 그 같은 윤곽 그리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탈냉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첫 번째 부분, 그리고 “중국의 부상(浮上)으로 인한 국제정치 질서의 변화에 관한 것으로, 그것이 현실에서 발생하고 작동하는 장(場, theater)으로서 아시아-태평양/인도-태평양 지역의 변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 두 번째 부분에 해당한다. 특히 미국과 중국 간의 경쟁을 일컬어 “이중의 위계구조(dual hierarchy)”라고 지칭하는 데 주목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이형혼합(異形混合)적 지배 질서(heterarchy)”가 어떠한 양상을 띠고 있는지 살펴본다. 

 

지난 5월 20일, 최장집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2. 탈냉전과 그에 대한 이해

• 지난날 냉전은 각기 진영을 지배했던 미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세계를 이데올로기적 대립과 전쟁 또는 군사력의 사용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면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실현한바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미 냉전은 해체된 지 오래다. 그렇다면 우리는 탈냉전 체제가 냉전보다 어떤 진전된 국제정치 질서를 구현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냉전 시기 “자유주의적 국제주의(liberal internationalism)”를 기초로 확산되고 발전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더불어, 국가사회주의적 생산 체제가 사라짐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생산 체제와 시장 질서는 훨씬 더 인간화되고,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 한국민들에게 있어서는 일극 체제라 할 탈냉전 시기는 한국민의 의식과 관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한국민들에게 있어 세계는 하나로 통합돼 있고, 통합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 거리의 가까움이 주는 근린감(近隣感)이 더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의 결과일 것이다. 2010년대 한국민들을 위한 세계적 차원에서의 관심사는 시야에서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큰 관심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국 경제의 폭발적 성장과 중국과의 교역 확대였다. 그리고 빠른 속도의 고도성장을 이룬 중국이 세계적 차원에서 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동아시아 국제정치 영역에서 경제적 강대국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변화로 이해했을 것이다. 

• 냉전의 끝은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이다. 탈냉전과 더불어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홀로 섰다. 그러나 끝난 것은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한 냉전 시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갈등이지, 철학적, 문화적, 경제적 갈등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도 완성된 형태로 건설돼 있는 것도 아니다. 자유시장은 세계적으로 확산돼 있지 못하고, 민주주의는 늘 안전하게 작동하고 있지 않다. 냉전의 잿더미는 치워졌지만, 그 자리에 불신의 과거가 남겨놓은 잔재들은 더 많이 존재했다.

 

3. 미-중 경쟁의 중심적 장(場)으로 등장한 인도-태평양

• 탈냉전 시기 국제정치의 장에서 가장 새로운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가 새로이 부상한 중국에 의해 도전받는, 미-중 경쟁적 관계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경쟁의 중심적인 장이 유럽과 같은 어떤 다른 지역이 아니라, 바로 태평양을 장(場/theater)으로 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존 아이켄베리는 태평양을 장으로 하는 이 미중 간 경쟁을 일컬어 “이중의 위계(dual hierarchy)”라고 특징짓는다. 폭발적인 경제 성장을 앞세운 중국의 급부상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힘의 관계를 급격하게 변화시켜, 미국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중간급 국가들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 교역은 중국에 의존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능의 공간이 만들어져, 이 지역에서 양자 강대국 운영 체계가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고 분석한다. 이제 그만큼 인도-태평양 지역은 미국이 조금이라도 주의를 돌릴 수 없는 미중 간 정치, 군사적인 갈등, 내지 그 가능성을 안은 중심적 장(theater)으로 등장한 것이다.

• 로위 연구소의 아시아파워 인덱스 자료는, 현재와 미래의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의 추정된 성장률 비교(2017-2019)를 통해 복합적 위계구조라고 말할 수 있는 지표를 보여준다. 이 지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국내 총생산으로 계산된 한국 경제의 사이즈가 엄청나게 크며, 지역 규모에 있어 중국, 인도, 일본, 한국으로 대표되는 인도-태평양 국가들의 총생산의 합이 다른 지역, 대표적으로 미국, 유럽연합과 비교할 때, 두 배가 넘을 정도로 크다는 점이다. 미국은 여전히 군사적으로 최강국이고, 최대 경제 규모를 자랑하지만, 2030년경 중국이 미국의 규모를 능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미국, 일본, 한국은 기술 개혁과 높은 삶의 질에 있어 중심적인 원천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는 동안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유지하는 데 있어 경제적, 정치적 차원에서 구조적인 어려움을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한다. 동남아시아 역시 중요한 경제적, 군사적 자원이 될 수 있는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미국, 중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더 강력해지겠지만, 중간급 국가들의 관계와 역할은 더 복합적이고, 다이내믹해질 것이다.

 

• 이 지역의 발전이 불러오는 복합적인 다이너미즘의 결과로서 군사력이 더 이상 국력의 유일한 측정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여러 국가들의 상대적인 경제적, 군사적, 소프트파워의 능력과 수준을 고려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국력의 수준과 내용을 평가하는 데, 스스로의 국가 이익과 열망을 실현하는 데 더 중요한지에 대해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중국과 미국, 강대국 간의 경쟁에 집중하다 보면 작은 분쟁들에다 온 힘을 쏟아 붓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또한 강대국 간 경쟁은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영역에서 소모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 관계를 갖는 최대 무역 파트너이다. 중국은 이 지역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축소시키면서, 이 지역 경제의 중심적인 역할을 갖는 방향으로 자신의 지위를 굳혀왔다. 

• 오늘의 인도-태평양 지역은 여러 차원, 여러 방식에서 기존의 미국의 헤게모니와 이 지역의 강국으로 등장한 중국 간의 경쟁이 현실로 나타나는 현장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이 지역의 중간적 국가들이 대응하면서 나타나는 경향들은 “이중의 위계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지역의 국제정치 체제가 작동하는 방식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 결론적으로, 아시아는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 정치 권력은 이전에 비해 더 많이 배분되기에 이르렀다. 중국은 부유하고, 강력하게 성장했고, 인도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다른 강대국들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어내고 있다. 미국의 우세는 지금도 그대로이지만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미국이 관여하는 것이 얼마나 지속성이나 신뢰성에 있어 믿을 만한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불확실성은 이 지역의 자유주의적 질서가 얼마나 장기적으로 생존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도록 한다.

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새로운 “이형혼합(異形混合)적 지배 질서(heterarchy)”에 있어 주요 강국(强國)들은 국력의 모든 측면들을 가로질러 자신들의 이점들을 위해 경쟁하려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 중간급 국가들은 그들의 융통성을 극대화하고, 취약성을 줄이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또한 미국의 적대자들의 능력과 야망은 증가할 것이고, 미국의 동맹국들과 파트너들은 새로운 협력의 방식을 찾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역할은 2차 대전 종전 이후 시기에 미국이 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제한된 것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오늘날 아시아는 불안정하고, 불가 예측적이다. 그렇지만 점차적으로 역내 국가들이 잘 무장화되는 상황을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자유주의적 질서를 뒷받침하는 데 있어 미국의 능력을 시험하는 다이내믹스를 보여주게 되지 않을까 하고 예견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다.

 

4. 결론을 대신하여—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한 비전

오늘날 세계 질서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거나, 이미 변했다. 긴 시기 절대강자로서 세계 질서를 운영하고 유지해온 미국 일국 지배 시대가 이제 이미 끝났거나 저물어가고 있다. 이러한 탈냉전 시대 국제정치 환경하에서 한국민들은 스스로 국제정치 환경과 조건을 냉정하게 이해해야 하고, 우리 앞에 등장한 새로운 국제정치 질서의 구조와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으로 던져졌다. 한국은 이제 자체의 외교 능력과 안보 전략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며, 국가의 국제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전략(statecraft)을 발전시켜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오늘날 한국의 국내 정치는 제어되지 않은 의견, 갈등의 강도가 지극히 높은 이익의 분출, 제어되지 않은 열정과 가치들이 문지기(gatekeeping) 없는 민주주의 제도 내로 폭발적으로 인풋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건강한 작동과는 거리가 먼, 포퓰리즘적 위기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 중요한 원인이자 결과는, 국내 정치적 이슈, 이익 갈등만이 아니라, 민족 문제를 둘러싼 이념 갈등의 확대 증폭 현상이 그것들을 불러들인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은 진보, 보수 간 정치 양극화를 확대 심화하면서 갈등의 위험스러운 극대화를 통한 정치적, 사회적 균열의 심화 양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의 출현을 두려워하면서, 오늘날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정치적 조건에서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다음 세 가지 문제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의 외교안보를 위한 정책 방향에 있어 북한과의 평화 지향적, 평화 공존적 정책 방향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새로운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삼았으면 한다. 평화 공존 정책으로의 전환은 냉전 시기의 대북 적대적 기본 정책으로부터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 말은 한미 관계, 한일 관계를 부정적으로 또는 비판적으로 보는 것과는 다르다. 근본적인 대북 정책의 변화를 위해서는 대미, 대일 관계에 있어 한국의 정책 목표를 설명하고, 추구하고, 설득하는 어려운 외교술을 요구하게 되는 것임은 물론이다.

둘째, 냉전 시기 한국 외교 관계의 중심축이던 미국과의 관계를 탈냉전 시기에서도 그대로 유지한다. 그와 동시에 일본과의 관계도 가장 중요한 인접 국가와의 관계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대외 관계는 냉전 시기와 동일하나, 냉전 시기, 특히 탈냉전의 미국 일극 체제 시기 이명박 정부로부터 문재인 정부에 이르는 시기를 포함하는 대일 관계는 악화될 대로 악화돼 오늘에 이르렀다. 더 없이 악화될 수 없는 대일 관계를 김대중 정부 이전 시기의 그것으로 복원하는 방향으로 발전시킨다. 여기에서 인접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요구될 수 있는 것은, 중국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는 문제 역시 우리의 민족 문제 해결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다.

셋째, 국내의 이념 갈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나, 민족 문제를 위한 정책에 있어서나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놓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 정치, 의회에서의 협력과 타협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또한 민족 문제를 위한 정책의 연속성을 위한 정치 제도와 규범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 경험적 사례로서 우리는 냉전 시기 독일의 “동방 정책(Ostpolitik)”으로부터 훌륭한 모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총론: 오늘의 세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