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역사 화해의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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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역사 화해의 길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6.10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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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은 5월 31일 제주포럼에서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세션을 열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br>
동북아역사재단은 5월 31일 제주포럼에서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세션을 열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현 정부 출범 후 한일관계가 급속한 개선의 물결을 타고 있지만 한일 갈등의 근본 요인인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양국 정상들의 의지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한일관계 개선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 갈등의 골을 좁혀나가야 하는 필수과제가 놓여있다.

이와 관련해 한일관계 개선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양국이 한때 추진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를 재개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또한 한·일 양국이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비해 국제규범(국제법) 형성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일간 역사적 반목이 아시아 지역에서 보편적 국제규범을 만드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달 31일 제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막한 ‘2023 제주포럼’ 중 한 세션으로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세미나를 주최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일 학자들은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를 좁혀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양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선결과제는 무엇인지 논의했다.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제안한 것은 ‘역사공동연구와 한일역사대화의 재개’였다.


정재정 명예교수 "한일 '역사화해' 위해서는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재개해야"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는 ‘역사화해를 향한 소중한 발걸음 -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성찰과 기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역사문제를 수습하려고 하면 항상 반동이 뒤따라 한일관계를 더 나쁘게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며, “역사 화해의 최상 목표는 정부끼리 뿐만 아니라 국민이 서로 적대와 불신을 해소하고 존중과 신뢰를 쌓아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모처럼 태동한 관계개선의 동력을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한일이 역사화해라는 궁극적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치밀하게 실행에 옮길 필요가 있다"며 양국 정부가 두 차례 추진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재개를 제안했다.

그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청소년과 대중문화 교류,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설치를 통해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대립의 완화를 꾀했던 경험을 전했다.

정 명예교수는 “양국은 역사화해의 노력을 제대로 계승하지 않았다. 역사공동연구도 제2기를 끝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역사 갈등은 오히려 깊어지고, 국민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양국 정부는 화해를 모색하기는커녕 불화를 부추겼다”고 비판하고 “진정으로 역사 화해라는 궁극적 목표와 구체적 계획추진을 위해 시급한 것이 바로 ‘역사 공동연구의 재개’”라고 밝혔다.

정 명예교수는 공동연구위원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토대로, 역사 공동연구는 갈등을 완화‧치유하는 수단 또는 화해를 실현‧담보하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한일관계사의 공동연구와 보급을 제안했다.

 

이석우 교수 “한·일, 위상에 비해 국제법 형성에 역할 못해…역사 반목이 영향”

▶ 이어 국제법 전문가인 이석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힘든 길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 한일역사대화를 통한 국제규범의 형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국제법 활용은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진행절차나 방식, 목적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지적했다. 2차 대전 이후 만들어진 서구열강의 국제법 질서를 수용했을 뿐,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미국 다음의 실질적 2인자’임에도 일본은 아시아지역의 국제법 형성에서 기준과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한국에 대해서도 “정권 교체 후 이미 국제법으로 형성된 기존 대외관계에 대한 변형 시도는 매우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한국은 이런 복잡다기한 국가적 현안에 있어 기준과 방향성을 가지고 국제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한국이 정권 변동 속에서도 대외관계에서 안정성을 제공하는 국제법, 국제조약 준수와 관련해 신뢰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점을 짚은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같은 영향으로 한·일은 높아진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제법 질서에서 아시아 지역의 강자로서 해야 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보편적 국제 규범을 만들 때는 시대정신과 도덕성이 반영돼야 하는데 양국 모두 이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교수는 한·일이 ‘피해국과 가해국’이라는 고착화된 모습을 갖는 현재의 한·일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 “서로의 차이에 대해 대화하고 서로를 포용하는 노력을 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중단된 한·일 역사 대화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2007. 6월~2009. 12월)를 마치며 당시 조광 위원장은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 폴란드 등은 상호 이견이 많은 역사문제에 대한 협의를 지속해 이견을 좁히고 있다. 그 대화는 50년째 진행되는 것도 있고 70년 이상 진행되는 것도 있다. 유럽 사례에 비해 한일 간 역사 대화는 불과 8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며 이후 또다시 단절된 한일 상황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여 국가적인 위상에 부합하는 국제사회의 규범 형성을 위해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한·일 간 문제가 선행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주도적인 규범형성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중단된 한일 역사대화의 재개를 통한 국제규범의 형성에 기여하는 길은 매우 힘든 길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피력했다.

 

지난 5월 31일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3 제주포럼'의 한 세션으로 열린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 :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세미나.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br>
지난 5월 31일 제주 서귀포 국제컨벤션센터에서  '2023 제주포럼'의 한 세션으로 열린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 :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 세미나.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가토 게이키 교수 "일본 시민단체에 구축된 교류성과 활용해야"

▶ 한편, 일본 발표자인 가토 케이키(加藤圭木)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學) 교수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세우기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과제’ 발표에서 자신의 수업 경험을 토대로 "일본 학생들은 처음에는 한국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수업을 통해 일본이 가해 책임에 성실하게 마주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 30년 동안 일본 교육의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정치개입을 강화했고, 2021년부터는 일본군 ‘위안부’문제 및 강제동원 문제 관련 용어를 교과서 회사에 변경하도록 하는 등 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다”며 “현재 대부분 일본 시민은 많든 적든 ‘한국 때리기’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에 의한 가해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은 ‘반일’이자 ‘좌익’으로 매도당한다”고 밝혔다.

가토 교수는 “대학 수업을 하면 ‘한일 역사연구자 간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일본 측 연구자는 일본의 가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있다. 실제는 침략과 가해의 실태에 대해 큰 맥락에서 공유재산이라 부를 성과가 한일 학계에 축적되어 있음에도 학생들이 전혀 알지 못 한다”고 했다.

또한, 2002년 출범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 중 일본 측 문제로 “위원 선정시 일본 역사학회를 아우르는 학회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입맛에 맞춰 선정되었다. 한일 간 역사 대화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며 올바른 진척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을 지적했다.

가토 교수는 학생들과 수업한 세미나 내용을 바탕으로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大月書店)를 출판한 바 있다. 일본 시민사회에 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책 집필을 고려했으나 귀 기울이지 않아 일본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끄는 K-POP이나 한국 문화를 매개로 ‘답답함’을 키워드로 내세운 책을 만들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배우려 하면 ‘너는 반일이구나’와 같은 말을 들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있는 그대로의 의문이나 경험을 시작으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해설하는 형식을 취했다.

지금까지 없던 콘셉트의 책으로, SNS를 활용한 프로모션을 실시해 K-POP팬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6쇄 1만 1천 부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유력신문사 마이니치 신문 오오누키 토모코 기자가 취재도 없이 비판기사를 낸 것에 대해 독자들이 신문사에 공식 항의함으로써 정치부장이 직접 사과를 하고 기사삭제 조치를 하기도 했다.

가토 교수는 발표를 마치며 “지금도 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만으로도 유력 언론사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 일본 시민에게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해 착실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나갈 것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1990년대 이후 민간 차원에서 축적된 한일학술교류 성과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제발표에 이어 토론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조윤수 국제관계와역사대화연구소장, 위가야 연구위원 등이 참여했다. 조윤수 소장은 토론에서 "한·일 역사 화해를 위한 새로운 공동기구를 조직해 연구하고, 정부는 안전보장과 경제, 문화 등 현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최근 한·일 관계 개선의 동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역사 인식 차이로 인한 양국 갈등을 좁혀나가기 위한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열렸다. 이영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한·일 역사화해를 위한 실현가능한 구체적 제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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