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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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4.15 18: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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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45강_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의 「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섹션 총 46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기획됐다. 인류의 자유와 공존을 위해 요구되는 국제 질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여섯 번째 섹션 ‘자유와 공존을 향한 국제질서’ 제45강 최병일 교수(이화여대 국제대학원)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


최병일 교수는 오늘의 국제 질서를 두고 “세계화 시대에 구축되었던 글로벌 공급망”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의 파장으로 지역화되고 축소될 위기”에 처해 있다라고, 달리 말하여 “체제는 달라도 공급망은 공유할 수 있던 세상은 저물어”가는 듯하다며 지적한다. 그러면서 미중 관계가 “미국 혼자 힘으로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트럼프 정부를 거쳐 “가치 동맹의 깃발”을 내걸고 “중국 의존에서 미국 중심으로”의 “공급망 개편”을 꾀하는 바이든 정부를 따라 급속히 경쟁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살펴본다. 또한 작금의 세계 현실을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대결 구도라는 “역사의 귀환”이라 명명하며 특별히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고 있는 양측의 “기술 패권 경쟁”, 그리고 “규범에서 힘의 논리로” 전환되는 “경제 안보”의 상황을 들여다본다. 이런 만큼 “한국의 전략적 고민”은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는바, “자강과 혁신으로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유지”하며 “가치 공유 국가들과의 든든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현실적 답이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3월 25일, 최병일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45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코로나 팬데믹이 보여준 중국판 세계화의 대가

훗날 세계 역사는 2020년 3월을 “세계화 무대에서 운전사가 사라진 순간”으로 기록할 것이다. 2020년 3월 11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 미국 내 확산 방지를 이유로 유럽 국가들에 미국 국경 봉쇄 조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유럽은 집단 아노미 상태에 빠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초기, 트럼프는 초기 대처에 실패하고 미국을 위험에 빠트렸다. 영국이 유럽에서 이탈하는 브렉시트 와중에 남은 국가끼리는 결속을 과시해야 한다는 정치적 명분을 부둥켜쥔 유럽은 검역 조치에 실기했고, 그 결과 유럽 전체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2020년 3월 9일, 시진핑 중국 주석이 코로나의 진원지인 우한을 방문하여 “최악의 순간은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중국의 원죄는 씻어지지 않는다. 미국, 유럽, 중국, 모두 정치적 명분에 매몰되어 사태의 심각성을 경시하다가, “골든타임”을 흘려보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미국이 떠난 세계화 무대에 중국이 새로운 주역임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언론 탄압, 인권 탄압에도 불구하고 기민, 유능, 효율적이라던 차이나 모델(China Model)이 중국인들에게조차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미국이 걷어차버린 세계화 운전석을 이끌 수 있던 절호의 기회가 날라갔다. 차이나 모델의 위험성은 더 선명하게 부각되었다.

코로나 사태는 중국판 세계화에 동승한 대가가 어떤 것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008년 세계 경제를 침몰 직전에서 구해낸 G20은 뒤늦게 화상 회의를 소집한다고 부산을 떨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이미 지나가버렸다. 세계를 구할 리더십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계화 시대에 구축되었던 글로벌 공급망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 발생한 코로나 팬데믹의 파장으로 지역화되고 축소될 위기에 처했다. 미국 중심축과 중국 중심축으로의 양극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그와 함께 체제는 달라도 공급망은 공유할 수 있던 세상은 저물어갈 듯하다.

 

2. 미중 관계: 협력에서 경쟁으로

1) 미국 혼자 힘으로 중국 견제하려 했던 트럼프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폐렴이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하기 직전,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휴전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2020년 1월 15일이다. “1단계 무역 협정”으로 불리는 이 휴전 협정의 핵심은 향후 2년간 미국산 2000억 달러 추가 구매를 중국이 약속한 것이다. 그 2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중국은 약속 이행에 실패했다. 협정 이행에 실패한 중국을 미국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벌이는 근본 이유는 공산당 주도 비시장경제 때문이다. 미중 무역 전쟁은 기술 전쟁으로 이어지고, 군사 전쟁, 결국에는 체제 전쟁으로 이어진다. 미중 패권 경쟁의 복합 구도이다. 미국은 협상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 갈등을 해소할 수 있을까. 서구 체제와의 격돌을 선언한 시진핑에겐 중국 시스템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2단계 협상은 있을 수 없다. 트럼프는 자신의 지지자에게 1편보다 더 흥미진진한 2편의 개봉박두를 예고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그 트럼프는 퇴장했다. 바이든이 중국을 다루는 방식은 다르다.

2) 동맹으로 중국 포위하려는 바이든

바이든은 중국과 2단계 협상을 진행할 생각이 없다. 트럼프가 시종일관 미국의 근육질 힘에 의존하면서 미국 홀로 중국을 몰아세우기에 열중한 반면, 바이든은 가치 동맹 깃발을 내걸고 반중국 연합 전선을 구성하려고 한다. 

집권 첫해,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소재의 중국 의존적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착수한 바이든. 그는 미국 중심 공급망에 참가할 연합 국가들을 물색하고, 연계를 본격화하고 있다. EU, 인도ㆍ태평양 동맹국들과 반도체, 배터리 등 전략 품목의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한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중국 포위 전략만으로는 부족하다. BBB(Build Back Better)로 명명된 미국의 인프라, 인적 자산에 대한 투자 확대 구상은 미국의 혁신 역량 강화와 중산층의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겨냥한 바이든의 회심의 카드이다.

 

3. 민주주의-기술 동맹 탄생

1) 바이든, 가치 동맹의 깃발 내걸다

바이든은 트럼프가 쓰레기통에 던졌던 가치(value)를 복원시키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이든은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국가들과 연합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그의 신병기는 무엇일까? 중국산에 중독된 세계 공급망을 그대로 두고 패권 경쟁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바이든과 핵심 참모들의 생각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비결은 기술 때문이 아니다. 압도적인 인구의 압박과 저개발 경제의 이중주가 만들어내는 저임금 때문이다. 중국으로의 생산 설비 이전과 확장은 세계화가 기술을 가진 선진국 기업에 내린 축복이었다. 축복의 과실은 중국도 나눠 가져갔다. 21세기 초반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 팽창은 중국에 다른 꿈을 꾸게 만들었다. 중국은 기술을 끌어 모았고, 기술자를 확보했고, 브랜드를 쓸어 담았다. 중국의 본격적인 기술 굴기가 시작되었다. 생산 기반에다 기술까지 가진 중국. 미국은 그런 중국을 상대할 수 있을까.

2) 공급망 개편: 중국 의존에서 미국 중심으로

바이든은 무역-산업-안보 연계 정책을 들고 나왔다. 기존의 산업 정책이 외국산을 배제하고 국산을 육성하기 위한 방어적 보호주의라면, 바이든의 산업 정책은 외국산을 끌어들여 국내 생산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산업 정책의 본질은 미국의 생산 능력 확보를 통해 미중 패권 경쟁에서 흔들리지 않는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다. 바이든의 산업 정책의 목표는 미국 기업 보호, 육성이 아닌 미국 내 생산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다. 국산 기업에 대한 보조금과 수입 금지가 아닌, 미국 내 투자 유치가 핵심 수단이다. 모든 투자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푸른 돈만 환영하고 붉은 돈은 배제한다. 색깔의 구분은 가치와 동맹이다. 2021년 여름, 세계는 산업-통상-안보가 연계된 기술 동맹의 탄생을 목격했다.

 

4.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부상하는 “민주주의 vs 전체주의”

1) 역사의 귀환

미국과 소련의 냉전 구도가 종식되었을 때, 서구는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다고 기염을 토했다. 정치 체제 간의 경쟁이 사라진 후 어느 국가가 국민들을 더 부유하게 해줄 것인가만이 중요해졌다. 경제 논리가 압도했다. 2022년 2월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적으로 침공했다. 세계화를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은 스스로 자신들이 설계하고 시공, 증축한 그 무대를 떠나고 있다. 

지금 후쿠야마와 프리드먼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승리로 역사가 끝난 줄 알았는데, 그 후 30년 지구상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오히려 후퇴했다. 미소 냉전 종식 후 압도적으로 더 많은 국가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지 않았고, 여전히 권위주의, 독재 체제가 지구 곳곳서 버젓이 지속되고 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전파자를 자처해온 미국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2) “민주주의 vs 전체주의” 대결 구도

미국이 주도하는 NATO는 사상 처음으로 중국을 “도전”으로 규정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침공”이라고 비난하지 않은 중국에 대해 NATO가 공개적으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고 전 세계에 선언한 셈이다. NATO의 ‘새로운 전략 개념’은 중국의 계산을 흔들리게 만든다. 트럼프-시진핑 시대 미중 갈등이 본격화될 때, 중국의 계산은 ‘천하삼분지계’였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 폭탄을 투척하고 중국 기업들을 정조준해서 압박하더라도, 유럽이 미국 편에 서지 않는다면 미국과의 게임은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러시아 편들기는 그간 실리와 명분 사이에서 좌고우면해오던 유럽을 중국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미중 패권 경쟁을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을 대체하는 패권 국가가 되려는 중국의 천하삼분지계 구도가 헝클어졌다. 미국, 영국, EU, 일본, 캐나다, 호주 등 자유민주주의 국가 진영과 중국과 러시아가 중심이 되는 전체주의 진영 간 대립 구도가 선명해지고 있다.

 

5. 미중 기술 패권 경쟁, 사이버 공간 양분화시키나?

패권 경쟁을 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게 사이버 공간은 경제와 안보가 맞물린 새로운 대결 공간이다. 미국이 중국 플랫폼을 차단하지 않았던 것은 소비자 편리성의 경제적 효용이 안보 리스크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사이버 플랫폼 통제의 범위를 중국 바깥에서 사용되는 중국산 플랫폼에 외국인이 접속하는 곳까지 확장하려고 한다. 2020년 6월 4일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31주년 기념행사를 하려던 시도를 줌(ZOOM)이 막아버렸다. 중국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중국 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줌의 설명은 의혹을 더했다. 줌은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인데, 중국 법을 따라야 하다니? 그 중국 법의 요체가 ‘중국에서 운영되는 모든 기업은 데이터를 중국 내에 보관하고, 중국 정부가 요청하면 언제든지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중국발 안보 리스크를 부각시키고 있는 미국의 공세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개성 발산의 대표 플랫폼이 된 틱톡까지 겨냥하고 있다. 틱톡의 주인이 중국 기업인 바이트댄스라는 사실을 미국 소비자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하다. 하지만 국가는 그럴 수 없다. 사이버 안보가 패권 경쟁의 향방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국가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은 사이버 공간을 양분화할 태세이다. 열린 사회 대 통제 사회의 사이버 공간에서의 패권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을 하는 것과 같다. 사이버 공간에서 중국 리스크를 방치하면 자유민주 체제의 가치는 훼손되고 제도는 위협에 처한다.

 

6. 경제 안보 시대: 규범에서 힘의 논리로

‘묻지마 세계화’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기술만 가지면 체제 차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전 세계의 소재 공급자들과 조립자들을 연결했던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철석같이 믿었던 조립 생태계의 해결사 중국은 더 이상 과거의 위상을 누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으로 시작된 미국의 중국 견제가 바이든의 중국 기술 패권 저지로 이어지고 있다. 디지털 산업의 쌀로 간주되는 반도체가 미중 대립의 핵심 전쟁터가 되었다.

바이든은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새로 디자인하고 싶어 한다. 미국의 원천 기술에서 시작해서 미국에서 반도체가 생산되는, 미국에서 시작하여 미국 내에서 완결되는 공급망 구축이 목표이다. 제조 역량 생태계가 사라진 미국에서 그것이 가능할까. 미국이 꺼낸 비장의 카드는 “동맹국의 투자를 미국에 유치하라.”

동맹국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은 보조금으로 유혹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보조금이 아닌 족쇄이다. 미국의 보조금을 받으면 중국 투자가 제한된다. 생산 시설 접근권 보장, 초과 이익 공유 등 수상한 조건들도 주렁주렁 달려 있다. 자동차, 스마트폰, 의료 장비 등 일상생활에서부터 항공기, 레이더, 슈퍼컴퓨터 등 안보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반도체 산업의 생태계를 권위주의 정부에 의존할 수 없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간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을 때의 그 비장함은 얄팍한 미국의 국내 정치 표 계산에 갑자기 초라해진다. 

 

7. 깊어지는 한국의 전략적 고민

미국과 중국 간 본격화되는 패권 경쟁은 ‘체제가 달라도 거래’할 수 있었던 “묻지마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한다. 신냉전의 본격화는 역사의 귀환, 지정학의 귀환, 동맹으로의 귀환을 재촉한다. 동맹의 시대가 막을 연다는 것은 한국의 집권 세력이 지난 세월 무수히 저질렀던 전략적 사고와 행동의 부재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주의의 도전에 직면한 자유민주주의, 규범 중심 다자 체제를 근간으로 한 세계화의 퇴조는 대한민국의 위기로 다가온다. 

미중 간의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은 경제 안보를 내세우는 신냉전 시대를 관통하는 전략적인 질문이 될 수 없다. 가치 공유 동맹을 축으로 공급망이 재구축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인가에 대한 판단이 먼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념적, 희망적 사고가 아닌 냉정한 현실적인 생각이 요구된다. 그다음 질문은 어느 한쪽 무역 상대국과의 교류가 과거와 같은 규모와 속도로 지속할 수 없게 되고 심지어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여기에 대한 상쇄 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깃발만 보고 따라갈 것이 아니라, 동맹에 속한 다른 국가들을 연계하여 적극적인 상쇄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냉전 종식 후 30년간 지속된 ‘국경 없는 세계화’는 원천 기술 개발-핵심 소재-조립의 전 과정에 걸쳐 비용 최소화의 원리가 지배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만들어냈다. 반면 패권 경쟁 시대는 경제 운영에서 효율성만이 지고지선인 시대에서 안정성이 더 중요해진 시대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그 분열의 단층선 위에 한국이 서 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과 함께 반도체 공급망(이른바 CHIP4)을 구축하려 한다. 이런 와중에 중국은 한국만 콕 집어, “반중국 대열에 서지 말라”고 윽박지르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미리 지레짐작으로 중국의 보복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만약 CHIP4가 동맹으로 발전한다면, 동맹국들은 집단적으로 외부의 보복과 도발에 대응하게 될 것이다. 어떤 형태로 CHIP4가 발전하더라도 중국발 리스크에 대한 집단 대응 전략 모색이라는 의도를 감출 이유는 없다. 

중국의 보복을 걱정하는 만큼, 미국의 변심에도 대비책을 세우는 것이 현명하다. 미국은 미국에 투자한 외국 기업이 보조금을 받게 되는 경우, 향후 중국에서의 투자를 제한하려 한다. 미국과 중국에 모두 대규모 투자를 했거나 계획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은 진퇴양난의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CHIP4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발 리스크, 미국발 리스크를 협상할 수 있을까? 한국이 배제된 상황에서 다른 국가들이 경기 규칙을 정한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강점을 부각시킬 기회도,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도 모두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이다. 자강과 혁신으로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 가치 공유 국가들과의 든든한 연결 고리를 형성하는 것이 역사가 던지는 신냉전 시대의 파고를 넘을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미·중 관계와 패권 경쟁의 미래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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