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와 베르그손을 횡단하는 ‘잠재적인 것’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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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베르그손을 횡단하는 ‘잠재적인 것’의 모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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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그손과 생명의 시간: 철학과 잠재성의 모험 | 키스 안셀-피어슨 지음 | 정보람 옮김 | 그린비 | 496쪽

 

이 책은 잠재성과 생명/삶 개념을 중심으로 베르그손을 독해하는 책으로 베르그손과 들뢰즈의 관계에 관한 가장 철저한 탐구인 동시에 칸트, 니체, 프루스트, 러셀, 데넷, 바디우에 이르는 철학자들에 대한 훌륭한 요약과 해설이기도 하다. 저자 안셀-피어슨은 이들에 대한 논의를 통해 연속성의 한계를 연구하고, 상대성 이론을 탐구하며, 창조적 진화의 개념을 제시한다.

저자는 잠재성의 철학을 정교화함으로써 시간과 생명에 대한 물음에 접근한다. 이 두 가지 물음을 연결하는 게 이 책 전체의 목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베르그손의 특정 주저들과 베르그손주의에 대한 들뢰즈의 글들에 주목하여 베르그손 사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보고 『물질과 기억』과 『창조적 진화』와 같은 대표 저작들을 자세히 독해한다. 베르그손과 들뢰즈 연구자를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잠재적인 것은 여전히 불가사의하고 까다로운 관념이기에, 이 관념이 차지하는 위상과 그것이 어떤 종류의 철학적 작업을 수행하는지를 설명하는 작업은 그 자체로 철학적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각각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는 일곱 개의 에세이로 이루어져 있다. 책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논지는 생명/삶 자체가 창조적인 과정으로서 급진적 새로움을 본질로 하며, 이러한 의미에서 잠재성의 개념은 실현되기 전에 미리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되는 가능성 개념과는 엄격히 구분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방법론적 특징으로는 지속, 진화, 목적성, 기억 등 베르그손의 사유에서 중요한 주제들을 쟁점 위주로 소개하고 베르그손과 대립하는 입장을 견지한 철학자들을 살펴봄으로써, 해당 주제에 대한 논쟁의 철학사적 맥락을 보여 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예컨대, 플로티노스, 칸트에 대한 베르그손의 독해를 통해 다수성/다양체 및 목적성의 문제를 다룬다거나, 베르그손에 대한 러셀과 바슐라르의 비판을 통해 연속성에 대한 그의 입장을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니체, 포퍼, 데넷, 바디우, 사르트르 등이 베르그손의 대화 상대자로 등장한다.

1장에서는 잠재적 다양체의 관념을 시간과 관련해서, 그리고 우리가 연속성을 사유하는 방식과 관련하여 소개하고, 그 주된 특징들을 살펴본다. 2장에서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베르그손의 입장을 설명함으로써 ‘단일한 시간’이라는 관념의 의미를 파악해 본다. 3장에서는 지속과 진화를 주제로 잠재적인 것과 가능한 것 사이의 차이가 진화를 창조적이고 창발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4장에서는 ‘단일 잠재성’이라는 관념을, ‘새롭게 본 일자의 존재론’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 여기서 저자는 들뢰즈의 사유를 잠재적인 것의 플라톤주의라고 해석하는 바디우의 관점을 비판하며, 일자에 대한 새로운 사유가 다원론에 대한 들뢰즈의 투철한 신념에 있어 본질적이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5장에서는 베르그손 사유의 핵심적 측면들을 해명하기 위해 칸트에 대한 그의 대응을 살펴본다. 6장과 7장은 베르그손의 책 『물질과 기억』에 관한 것으로, 『물질과 기억』 1장과 4장에 나오는 실재적인 것의 형상과 이미지에 관한 물음을, 그리고 2, 3장에 나오는 기억의 잠재성에 대한 설명을 다룬다.

이 책은 명목상 베르그손 연구서이지만 해석의 관점에 있어서는 들뢰즈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들뢰즈의 철학이 베르그손에 큰 빚을 지고 있지만 그를 베르그손적이라고 묘사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은, 단지 들뢰즈의 철학적 기원이 다양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베르그손주의가 상당히 독창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간을 사유함에 있어 들뢰즈는 철저히 베르그손적이기도 하고 베르그손과 급진적으로 다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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