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학(BTSology), BTS 연구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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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학(BTSology), BTS 연구는 이미 시작되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8.21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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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S 예술혁명: 방탄소년단과 들뢰즈가 만나다 | 이지영 지음 | 동녘 | 350쪽

 

방탄이 초래한 변화와 그 영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깊다. 이 책은 방탄이 팬덤 아미(A.R.M.Y.)와 더불어 야기한 변화야말로 오늘날 사회 구조와 미디어, 예술 형식에서 일어나고 있는 근본적인 변혁을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 변화는 기존의 위계질서와 권력 관계를 침식하며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혁명의 의미까지 포함한다. 방탄소년단과 그 팬덤 아미들로 인해 초래되고 있는 변화는 전 지구적인 규모의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변혁을 징후적으로 표현한다. 저자는 방탄으로 인해 일어나고 있는 사회, 문화, 정치, 미학적 사태를 ‘방탄 현상’이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이를 질 들뢰즈와 발터 벤야민의 철학 개념과 예술이론으로 자세하게 풀어낸다.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전, 저자는 우선 방탄의 가사부터 분석한다. 방탄 가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저항과 사회 비판 메시지다. 방탄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억압과 불평등, 편견 등의 문제를 읽어내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며 힘을 모아 정의롭지 않은 현실을 바꾸자고 외친다. 그들이 음악을 통해 전한 메시지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 청년들의 공감을 얻었다. 그들의 현실 진단과 여기에 기초해 희구하는 변화의 방향이 보편성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기존 사회의 질서와 구조적 폭력에 대한 방탄의 비판을 ‘부친살해’라는 은유로 설명한다. 방탄에게 부친살해의 모티브는 기존 체제의 질서와 가치, 권위에 대한 저항과 비판을 의미함과 동시에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저항과 극복, 그리고 이를 통한 성장까지 포함한다. 

책은 이어 방탄이 그 팬덤 아미와 소통하는 온라인상에서의 활동에 주목한다. 방탄의 SNS 소통이 여타 아이돌 그룹과 다른 것은 수평적인 소통과 연대다. 방탄이 스스로를 알리는 방식은 완벽한 스타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친구처럼 잘 알면서도 친밀하게 소통한다. 음악은 말할 것도 없고, 그들의 실제 모습을 담은 수많은 영상으로 인간적인 면모도 선보인다. 방탄의 음악과 메시지, 그리고 인간적인 모습에 매료된 팬들은 방탄의 진가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온라인, 오프라인 활동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아미는 이름에 걸맞게 이들의 친구이자 방탄을 세계에 알리고 진출시키는 군대가 된다. 중요한 점은 방탄이 생산하는 수평적 판타지가 팬들과 강력한 연대를 형성하면서 예상치 못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방탄과 아미가 일으킨 변화의 혁명적 의미를 들뢰즈의 리좀 개념을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리좀은 중심과 주변이라는 위계질서를 가로지르며 끝없이 다른 것들과 연결 접속되어 생성하는 네트워크 구조다. 수목적 구조가 주변과 중심이 명확히 구분되는 위계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리좀적 체계에는 단일한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탄 역시 그 팬덤 아미와의 관계에서 위계의 맨 꼭대기에 위치한 중심이 아니다. SNS라는 탈중심적 네트워크를 통해 접속하는 이들은 서로 친구이자 조력자로 수평적 관계를 맺고 있다. 아미 역시 방탄 팬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는 아무 이해관계나 유사성도 없는, 무수히 다른 뿌리줄기들의 연결접속이다.

저자는 방탄소년단과 아미가 맺고 있는 리좀적 관계를 연결접속의 원리, 이질성의 원리, 다양체의 원리, 탈기표적 단절의 원리, 지도제작의 원리로 나누어 설명한다. 방탄소년단과 풀뿌리인 아미가 접속해 형성된 ‘방탄-아미 다양체’는 미디어 권력과 거대 자본의 바깥에서 연대를 점차 확장하면서 기존의 권력 관계와 위계를 침식하고 영어 중심 체제의 전복으로 상징되는 기존의 권력 구조를 해체한다. 뿐만 아니라 방탄의 영상들과 그에 대해 팬들이 생산한 무수한 콘텐츠들이 온라인에서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그에 따라 새로운 예술 작품을 생성하며 예술 개념 자체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방탄-아미 다양체가 수행하는 리좀적 혁명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새롭게 출현한 예술형식과 그 사회적 역할이다. 방탄소년단의 비디오는 뮤직비디오의 일반적 특징에서 더 나아간다. 각각의 영상들이 열린 구조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참조하는 관계로 여러 계열을 형성하며 매순간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팬들은 이 계열들의 한 부분으로, 단순히 방탄 예술을 감상하는 수용자를 넘어 다양한 영상들을 생산하며 방탄의 예술 세계를 재창조한다. 요컨대 팬덤 아미는 방탄 예술의 주요 소비자이자 생산자이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은 방탄소년단의 영상과 팬들의 영상이 함께 결합해 형성하고 있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네트워크-이미지’라고 명명한다. 예술의 형식이 변화함에 따라 예술의 가치와 사회적 역할 또한 ‘전시가치’에서 ‘공유가치’로 바뀌었다. 개정증보판에서는 1부의 마지막에 한 챕터(4장)를 새로 추가해 들뢰즈의 개념들을 바탕으로 방탄 현상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아미의 정체성에 대해 다뤘다. 특히 저항적인 활동들을 중심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아미공동체의 사회적인 역할을 중점적으로 살폈다.

발터 벤야민은 일찍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새로운 생산양식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예술형식의 출현을 말한 바 있다. ‘네트워크-이미지’는 모바일 네트워크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예술형식으로 방탄현상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부록에서는 ‘네트워크- 이미지’를 보다 깊이 있게 설명한다. [들뢰즈의 시간-이미지 너머: 네트워크 이미지]란 제목으로 매체 철학적 논의를 펼치는 부록은 벤야민의 예술 변화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들뢰즈 영화 철학의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저자 나름의 야심찬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방탄 현상의 혁명적인 의미를 일반 독자에게 흥미진진하게 소개하는 책이 철학계의 첨단 논의를 펼치는 학술서로 유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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