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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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인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2.08.2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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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열린연단]

■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18강_ 송지우 서울대 교수의 「자유주의에서의 평등」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합리성의 증대는 자유의 신장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섯 섹션 총 4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한다. 자유의 이념과 지향에 관한 동서양의 지적 자산을 통시적으로 고찰하는 두 번째 섹션 ‘자유와 민주주의: 역사와 전개’ 제18강 송지우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에서의 평등


송지우 교수는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이다’라는 명제를 재검토한다. 그를 위해 먼저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을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살피며 “롤스에게 호혜성(reciprocity)이 자유와 평등을 매개하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계약주의 전통의 맥락에서 이해”를 시도한다. “이어서 평등과 자유 각각에 대한 고찰을 좀 더 자세히 전개”하는데 “먼저 평등에 관한 롤스의 후기 사고에 많은 영향을 준 T. M. 스캔런(Scanlon)의 연구를 중심으로 “불평등에 반대할 이유의 다양성”을” 점검한다. 그다음으로는 “이러한 이유들이 다양한 형태의 자유를 확보하거나 보호할 이유들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인간을 자유롭고 도덕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보고 사회 규범은 구성원 각 개인에게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취하는 것과 더불어 “사회의 기본적인 제도들이 개인의 인생 전망에 미치는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할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또한 (적절한 의미에서) 평등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에 이른다. 

 

지난 7월 30일, 송지우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18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은 상충하는 가치이다’라는 명제의 전파는 우리 시민 교육의 흔하고 심각한 오류이다. 해석과 구체화 없이 이 명제는 무용하다. 현대 자유주의의 주요한 한 조류에 따르면, 이 명제는 ‘자유’와 ‘평등’을 각각 의미 있는 방식으로 해석할 경우 거짓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의 한 조류란 존 롤스(John Rawls)가 현대적으로 이론화했다고 볼 수 있는 일종의 계약주의적(contractualist) 자유주의 전통으로 이러한 조류의 자유주의는 ‘평등주의적 자유주의(egalitarian liberalism)’라고 불리기도 한다.

우선 롤스의 정의론을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살펴본다. 롤스에게 호혜성(reciprocity)이 자유와 평등을 매개하는 중요한 개념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이를 계약주의 전통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이어서 평등에 관한 롤스의 후기 사고에 많은 영향을 준 T. M. 스캔런(Scanlon)의 연구를 중심으로 “불평등에 반대할 이유의 다양성”을 검토한 후 이러한 이유들이 다양한 형태의 자유를 확보하거나 보호할 이유들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살펴본다. 이로써 인간을 자유롭고 도덕적으로 평등한 존재로 보고 사회 규범은 구성원 각 개인에게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시각을 취하며 사회의 기본적인 제도들이 개인의 인생 전망에 미치는 영향력을 충분히 고려할 경우, 자유주의자들은 또한 평등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견해를 좀 더 잘 이해하고자 한다.

 

2. 협동과 호혜성: 자유주의 인간관과 사회관

자유주의 철학의 기본적 도덕 단위는 개인이다. 자유주의에서 정치ㆍ사회 규범의 정당화 대상은 궁극적으로 개인이다. 계약주의적 자유주의의 이러한 특징은 롤스의 정의론에서는 암묵적으로 전제되지만 스캔런의 도덕적 계약주의론에서는 더 명시적으로 드러나는데, 요컨대 스캔런은 규범의 정당화 가능성은 오직 그에 합당하게 이의를 제기할 만한 개인의 이유(individual reasons)들이 있는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개인은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free and equal) 존재로 이해된다. 이는 근대 사회계약론 전통을 계승하는 인간관으로, 홉스(Hobbes), 로크(Locke), 루소, 칸트와 같은 근대 계약론자들에게 국가의 정당성을 정치적 과제로 촉발시키는 전제이다. 이들의 이론에서 국가 정당성의 문제는, 저마다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권력의 간섭을 허용하고 그 권위를 인정해야 마땅한 이유를 설명하는 일이다.

롤스는 국가 자체의 정당화와는 조금 다른 문제, 즉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들이 소위 ‘정의의 상황(circumstances of justice)’에 처했을 때 발생하는 이득과 부담의 분배에 초점을 맞춘다. 정의의 상황이란 “협동을 가능하면서도 필수적이게끔 하는” 상황으로, 신체적ㆍ지적 비등함, 타인들의 집단적 공격에 대한 취약함, 자원의 적당한 희소함과 같은 객관적 상황과 상호 무관심함(mutual disinterestedness), 지식과 분별력의 한계와 같은 주관적 상황으로 이루어진다. 정의의 상황이 발생하는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 이해관심의 일치와 충돌이 동시에 일어난다. 이러한 상황에서 협동의 이득과 부담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적절한지를 밝히는 규범이 이른바 정의의 원칙들(principles of justice)이다. 말하자면 롤스는 국가의 존재 이유 자체를 따지기보다는 존재하는 국가의 정의로운 구성을 고민한다.

정의의 상황에서 사회는 일종의 협동체로 이해될 수 있다. 롤스는 이러한 사회관에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보는 자유주의적 인간관을 결합하여 정의의 원칙들을 도출한다. 롤스에게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서의 인간이란 두 가지 도덕적 능력, 요컨대 스스로 좋은 삶의 계획을 형성ㆍ수정하고 이를 추구하는 능력, 즉 선관의 능력(capacity for a conception of the good) 그리고 공정한 협동의 조건을 숙의하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 조건이 사적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도 준수할 수 있는 능력, 즉 정의감의 능력(capacity for a sense of justice)을 갖춘 사람이다.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들끼리 협동을 하고자 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은 호혜성이다. 롤스의 정치철학에서 호혜성은 분배 정의의 원칙을 찾아가는 길잡이가 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라고 불리는 그의 정의관에서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개념이 호혜성이다. 이 정의관에서는 협동의 조건이 공정하려면 호혜성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다. 호혜성은 규칙과 절차를 준수하면서 협동에 참여하여 자신의 적절한 몫을 한 구성원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몫을 얻을 것을 요구한다. 이때 적절한 몫이 무엇인지는 이른바 정의의 두 원칙, 즉 평등한 기본적 자유(equal basic liberties)의 제1원칙과 공정한 기회 균등(fair equality of opportunity) 원칙과 차등 원칙(difference principle)을 결합한 제2원칙으로 구체화된다.

 

제1원칙은 제2원칙에 우선한다. 요컨대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서 기본적 자유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롤스는 우선성을 가지는 것은 도덕적 능력의 개발과 활용에 필요한 기본적 자유이고, “자유 그 자체에는 우선성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충분한 이유 없이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만, 다른 사회적 가치나 목적이 그 어떤 경우에도 제약의 충분한 이유를 제공하지 못한다는 견해는 롤스가 보기에 이론적으로 합당하지 않을뿐더러 “특정한 권리와 자유 그리고 가령 다양한 권리 장전이나 권리 선언에 담긴 것과 같은 헌정적 보장을 쟁취”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자유주의 사상의 전통과도 동떨어진 발상이다. 그래서 호혜적 협동의 제도적 조건을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책이 “자유 그 자체”를 제약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는 논리는 롤스의 정의론에서 성립하기 어렵다. 

근대 사회계약론자들이 국가 권력의 정당한 행사를 고민한 반면, 롤스는 분배 정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초점의 전환은, 계약주의 전통에서 정당화의 단위인 개인에게 가해지는 부담의 종류와 성격에 대한 이해의 확장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로크, 홉스, 칸트와 같은 계약론자들에게 중요한 화두는 저마다 스스로 도덕적 주체인 개인에게 국가가 어떻게 정당한 강압(coercion)을 행사할 수 있는지이다. 롤스의 정의론에서 부각되는 또 다른 성격의 부담은 사회의 기본적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몫을 하는 일, 즉 정치, 경제, 사회 제도에 참여하고 기여하는 사회 협동의 부담이다. 이러한 협조를 어떻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지가 롤스의 질문이고, 적절한 몫을 기여한 이들은 적절한 몫을 돌려받는다는 호혜성의 기준이 답의 실마리가 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사회가 언제나 완벽하게 정의로울 수 없다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부정의(tolerable injustice)는 어디까지인지의 후속 질문이 발생한다. 롤스주의 정치철학자 토미 쉘비(Tommie Shelby)는 이 지점을 찾는 데에도 호혜성의 기준을 활용한다. 정의로운 사회가 호혜성의 관점에서 공정한 사회 협동체라면, 부정의한 사회에서는 호혜성의 기준이 무너져서 공정한 몫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정의는 이들이 그럼에도 협동체의 규칙을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여전히 시민적 책무를 다하면서 제도 안에서 제도 개선을 시도해야 마땅한 범주, 즉 시민적 참을성의 임계점을 규정한다.

쉘비가 제안하는 임계점은 적어도 세 가지만은 지켜지는 지점이다. 우선, 모두의 기본적 자유, 특히 정치적 자유와 참정권이 평등하게 보호받아서 모두가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둘째로, 모두가 생계를 위한 최저 수준의 사회 보장을 누린다. 끝으로, 비록 공정한 기회 균등은 이루지 못하더라도 모두가 자신을 개발하고 물질적 안정을 성취할 충분한 기회는 제공해야 한다. 

자유롭고 평등한 사람들의 관계 맺음은 호혜적이어야 하고 그 호혜적 관계 맺음에는 이처럼 사회경제적인 측면이 있다고 본다면, 사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의 부정의를 허용하는 것은 아닌지 검토하지 않은 채 빈곤이나 사회경제적 소외를 개인 책임으로만 돌리는 시각은 문제적이다. 사회 협동체 참여자로서의 책임이 결국 호혜적 협동에서 제 몫을 하는 일이라면, 호혜성이 무너진 대가를 짊어지는 빈곤층이나 소외 계층 구성원에게 이러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3. 불평등에 반대할 이유의 다양성

이처럼 롤스는 자유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동시에 “자유주의의 기본적 아이디어들을 그 논리적 종착점으로 가져가면” 평등주의적 결론들이 도출된다고 본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평등주의가 물질적 평등이 그 자체로 중요하거나 가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마틴 오닐(Martin O’Neill)의 분류에 따르면, 롤스는 불평등한 물질적 분배가 그 자체로 나쁘다는 목적 평등주의자(telic egalitarian)가 아니라 물질적 불평등을 제한할 이유가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며 이 가운데에는 불평등이 그 자체로 나쁘기보다는 다른 나쁜 결과를 촉진한다는 수단적 이유도 있다는 비내재적 평등주의자(non-intrinsic egalitarian)이다.

롤스의 비내재적 평등주의는 후기작인 『공정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고, 스캔런의 연구에 영향을 받았다. 스캔런은 1996년 논문 「불평등에 반대할 이유의 다양성(The Diversity of Obections to Inequality)」과 이 논문을 확장한 2018년 저작 『불평등은 왜 문제인가?(Why Does Inequality Matter?)』를 통해서 비내재적 평등주의 이론을 자세히 전개한다. 스캔런에 따르면 불평등에 반대할 이유 또는 평등주의적 이유(egalitarian reason)는 좁게도 넓게도 이해할 수 있다. 좁은 의미의 평등주의적 이유는 어떤 불평등이 그 자체로 나쁘다는 발상에 궁극적으로 기반한다. 목적 평등주의자들은 모든 물질적 불평등에서 이러한 좁은 의미의 평등주의적 이유를 찾는다. 넓은 의미의 평등주의적 이유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에 (또는 그 정도에) 반대할 모든 이유를 아우르며, 이때 해당 격차가 그 자체로 문제라는 전제는 불필요하다. 이렇듯 평등주의적 이유를 넓게 이해할 때 스캔런은 물질적 불평등이 반대할 만하다고 또는 문제적(objectionable)이라고 판단할 이유가 적어도 다음 여섯 가지를 포함한다고 주장한다.

1) 지위의 차이: 불평등은 지위의 굴욕적인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반대할 만하다.
2) 통제와 권력: 불평등은 부유한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을 상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형태의 권력을 가지게 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하다.
3) 경제적 기회 평등: 불평등은 경제적 기회의 평등을 저해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하다.
4) 정치적 공정성: 불평등은 정치 제도의 공정성을 저해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하다.
5) 평등한 고려: 불평등은 정부와 같은 기관이 어떤 이득 제공의 의무를 지니는 대상들에 대해 평등한 고려(equal concern)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 결과일 때, 그러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하다.
6) 경제적 공정성: 부와 소득의 불평등은 불공정한 경제 제도의 산물일 때, 그러하기 때문에 반대할 만하다.

이들 이유 가운데 어떤 것은 넓은 의미에서만 평등주의적인 이유이고, 어떤 것은 좁은 의미에서도 넓은 의미에서도 평등주의적이다. 1)~6) 모두 인간을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 특히 사람들 사이의 도덕적 지위의 평등 혹은 도덕적 평등(moral equality)을 전제한다. 

 

4. 비내재적 평등주의와 자유

특히 비내재적 평등주의는 여러 지점에서 자유의 중요성에 근거하여 불평등의 제한을 논변한다. 물질적 불평등을 언제 얼마나 제한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에서 “자유와 평등은 논쟁의 양측 모두에서 동원될 수 있다.” 생산적인 답을 찾으려면 결정적으로 누구의 어떤 자유를 말하는지, 어떤 사람들 사이 무엇의 평등을 말하는지, 이때의 자유와 평등이 각각 왜 얼마나 중요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스캔런의 접근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자유를 원할 만한 다양한 이유를 식별하고 그 이유들의 중요성, 특히 다른 사람들이 그 이유를 행동에 반영할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스캔런은 자유의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첫째, 어떤 기회나 삶의 선택지가 제한되지 않기를 원할 이유가 있다. 둘째로, 어떤 기회나 선택지가 차단되는지와 별개로 삶의 어떤 영역에서 다른 사람의 통제 아래 놓이거나 그의 의지를 따라야만 하는 상황은 자유의 제한이라고 할 수 있고, 이런 제한에 반대할 자유의 이유, 즉 ‘통제 반대 이유’가 있다. 

기회 차단 반대 이유와 통제 반대 이유 모두 자유 제한의 정당화가 제공되지 않을 경우, 자유 제한에 대한 결정적 반대 근거를 성립한다. 하지만 모든 기회의 차단과 모든 영역에서 모든 사안에 대한 통제가 같은 강도의 이유를 생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충분한 이유 없이 자유를 제약하는 것은 물론 문제가 되지만, 정의의 제2원칙에 대해 우선성을 가지는 것은 기본적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이지 “자유 그 자체”가 아니라는 롤스의 견해와 일맥상통한다. 

예를 들어 스캔런은 통제 반대 이유의 강도를 다음 세 가지 변수의 조합으로 판단할 것을 제안한다. 먼저, 통제하는 이와 받는 이의 구체적인 관계가 중요하다. 또한, 통제하는 이의 재량이 어느 정도인지가 유관하다. 끝으로, 통제받는 삶의 영역이 무엇인지도 유관하다. 이 마지막 고려 사항은, 자유의 이유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규범적 재량(normative discretion)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기회 차단 반대 이유와 통제 반대 이유 모두 소위 적극적 자유와 소극적 자유를 아우른다. 예를 들어 기회가 차단되는 이유가 어떤 구체적인 행위자가 해당 기회를 가로막아서인지 아니면 사회경제적 결핍으로 교육이나 훈련 자원에 접근할 수 없어서인지는 그 자체로 이유의 강도를 결정하지 않는다. 스캔런은 특히 전자와 같은 경우에만 강압이 존재한다는 하이에크의 주장에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자원의 수준 역시 시장 체계, 재산권의 인정과 규제 등 기저 제도들의 ‘배경 강압(background coercion)’에 달려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사회의 기본적인 제도들 혹은 기본구조의 양태가 그 사회 구성원의 인생 전망에 광범위하고 깊은 영향을 미친다는 롤스의 주장과 맞닿아 있는 생각이다.

 

통제와 권력의 평등주의적 이유는 또한 통제 반대의 이유, 즉 자유의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서 자유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한 몇 가지 함의가 드러난다. 우선, 자유주의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가진다는 기본적 전제가 환기된다. 즉 자유주의는 기저 인간관에서 이미 자유와 평등이 충돌하는 게 아니라 연동되는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 불평등에 따른 일방적 통제, 즉 자유의 불평등이 곧바로 문제로 포착되는 것이다. 둘째, “자유 그 자체”에 대한 제한을 문제시하는 관점에서 멀어지고 기회 차단 반대의 이유, 통제 반대의 이유와 같은 구체화된 자유의 이유를 명시하는 관점에 가까워질수록, 해당 사례를 ‘자유 대 자유’의 까다로운 대결로 보는 이해도 힘을 잃는다. 경제적 불평등의 결과 통제를 받는 쪽의 자유의 이유들은 직관적으로 강력하다. 반면 통제를 가하는 측이 통제할 ‘자유’를 잃을 경우 어떤 유의미한 규범적 손실이 생기는지는 훨씬 불분명하다. 

기회 차단 반대의 이유는 유사한 논증 구조를 통해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적 기회 평등을 저해하는 경우와 정치적 공정성을 저해하는 경우에도 작동한다. 정치적 공정성의 훼손의 경우에는, 정치적 결정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기회가 불평등해질 때 정치 영역에서 있어 부유한 이들이 그렇지 못한 이들의 삶에 과도한 통제력을 지니게 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통제 반대의 이유 또한 존재한다.

평등한 고려 위반이나 경제적 불공정성의 경우에도 기회 차단 반대의 이유가 적용될 수 있다. 불리한 처지에 놓은 이들은 물질적 기반을 필요로 하는 중요한 기회들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략 ‘호혜성의 이유’라고 부를 만한 추가적인 자유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나의 지지로 유지되고 나를 상대로 규범을 강압하는 정부 기구가 이득 제공 의무에 있어서 나를 평등하게 고려하지 않는 경우 또는 노동시장에서 적절한 몫의 기여를 한 나에게 적절한 몫이 돌아오지 못하는 경우, 해당 제도들은 나에 대한 호혜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자유주의의 인간, 즉 자유롭고 서로 도덕적으로 평등한 존재로서의 인간들 사이 관계 맺음은 응당 호혜적이어야 한다면, 이들 제도는 그로써 나를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존중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호혜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사회 제도에 반대할 이유는 자유주의 인간관을 전제할 경우 평등의 이유인 동시에 자유의 이유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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