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에 대한 유교적 관용론의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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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대한 유교적 관용론의 영향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2.1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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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동의 격몽과 서구 관용국가의 탄생: 유교제국의 무제한적 관용사회의 서천 | 황태연 지음 | 솔과학 | 1,136쪽

 

이 책은 4부작 전8권으로 이루어진 황태연 동국대 교수의 ‘충격과 탄생’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이 책의 제목 ‘극동의 격몽과 서구 관용국가의 탄생’에서 ‘격몽擊蒙’은 “스스로 깨우치지 못할 정도로 몽매한 자들에게 충격을 가해 깨우쳐주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전체 제목은 “극동 유교문명권의 무제한적 관용국가들이 서구제국에 충격을 가해 그들의 종교적 몽매를 깨우쳐 서구의 근대적 관용국가들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중용』에서 공자는 “관유寬裕와 온유溫柔로써 교화하고 무도함에 대해서도 보복하지 않는 것(寬柔以敎 不報無道)”이 “군자가 사는 남방지역의 강함”이라고 천명하고, “관유와 온유는 족히 관용이 있다(寬裕溫柔 足以有容也)”라고 갈파했다.

극동제국의 재부상과 관련된 정체성 논란이 서구주의적 거대담론, 아시아정체론, 권위주의적 전통가치론, 아메리카니즘, 진정한 공자주의전통론 등과 뒤엉켜 난잡스런 가치관적 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서구에 대한 유교적 관용론의 영향’을 논하는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진정한’ 극동적 전통가치와 17~18세기 동서교류에 대한 심층적 탐구와 이를 통한 극동인들의 - 권위주의적 자존심 회복이 아니라 - ‘올바른’ 자존심 회복이 간절하게 요청된다고 말한다. 

벨과 볼테르가 대변한 ‘무차별적 관용’과 ‘보편적 관용’ 패러다임만이 아니라 불가지론과 무신론, 그리고 미국·프랑스의 근대적 관용국가가 극동의 유교문명권의 ‘무제한적 종교자유와 관용’ 패러다임의 ‘격몽’ 속에서 탄생했다는 이 책의 근본명제는 어쩌면 동서양의 사상적 영향관계에 관한 연구주제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에게 다시 심각한 ‘격몽’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격몽’이 오늘날 극동적 전통가치를 역사적으로, 그리고 미래지향적인 ‘긍정하는’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게끔 최선을 다했다고 저자는 밝혔다.

이 책이 논제로 삼는 주제는 십계명의 제1계명에 따라 “질투어린 하느님(a jealous God)” 여호와의 불관용을 교리로 삼는 서양 기독교인들을 깨우치는 것이다. 이 경우에다 ‘격몽’ 개념을 적용하면, 공자의 무제한적 관용사상으로 오랑캐처럼 서구를 노략질하듯 침략하여 불관용적 기독교문화를 청산하려고까지 해서는 아니 되고, 단지 양이洋夷(서양오랑캐)를 깨우쳐 그들이 서로 박해하는 것을 막고, 그들이 극동에 와서 선교한답시고 유교제국의 관용문화와 안보를 교란하는 것을 방어하는 것으로 족하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예기』 「유행儒行」에서 공자는 “온량(=온유)은 인의 근본이고, 관유는 인의 작용이다(溫良者 仁之本也, 寬裕者 仁之作也)”라고 밝혔다. 그래서 “관유”와 “온유”를 근본가치로 삼는 ‘인仁의 철학’ 유학儒學 또는 유교儒敎의 ‘유儒’자는 ‘선비’도 뜻하지만 ‘온유’도 뜻한다. 그리하여 공자는 『논어』에서 위정자를 향해 “윗자리에 있으면서 관유하지 않고, 예치를 한다면서 불경하다면, 내가 어찌 이를 보겠는가(子曰 居上不寬 爲禮不敬 吾何以觀之哉?)”라고 말하고, “인仁”을 “공손·관유·믿음·무실務實·시혜(恭寬信敏惠)”의 다섯 가지 덕행으로 분설分說하고 “관유하면 민중을 얻는다(寬則得衆)”고 확언했다.

16세기 중반 이래 300년간 종교문화적 동서교류의 사상사는 서구의 불관용적 기독교제국에 대한 극동의 유교적 관용국가의 ‘격몽’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관용’을 스스로 깨치지 못할 정도로 몽매하기 짝이 없던 서양의 불관용적 신·구 기독교도들과 개신교 종파들은 저들끼리 두 번의 종교적 세계대전을 치르고 영국에서는 두 번의 내전을 치르고 있었고 각종파가 ‘이단’으로 지목한 소위 ‘이단군주’를 암살하거나 추방하는 짓을 반복하고 18세기 말까지, 아니 19세기 초까지 종교적 집단학살·종교탄압·마녀재판을 계속하고 있었다.

제1차 종교전쟁은 1562년부터 1598년까지 36년간 계속되었고 주전장은 프랑스였던 반면, 1618년부터 1648년까지 30년간 계속된 제2차 종교전쟁은 독일을 주전장으로 삼아 벌어진 ‘30년전쟁’이었다. 내전은 성공회(국교회) 왕당파와 청교도(영국 칼뱅주의자) 의회파 간에 1642년부터 1651년까지 벌어진 ‘영국내전’에서 정점에 달했다. 군주암살은 1610년 가톨릭교도가 줄곧 칼뱅주의 개신교도(위그노)였다가 종교적 화해를 위해 막 가톨릭으로 개종한 앙리 4세의 암살에서 정점을 찍었고, 군주방벌은 영국의 1688년 ‘명예혁명’에서 정점에 달했다. 이 방벌사건에서 개신교 영국귀족들은 외국군대를 끌어들여 가톨릭군주를 몰아내고 이후 가톨릭교도를 왕이 될 수 없도록 만든 ‘왕위계승법’을 만들었다.

종교적 집단학살은 프랑스 가톨릭교도들이 1572년 8월 24일 최소 9000명에서 최대 수만 명의 위그노들을 학살한 성 바르톨로메오 축제일의 대학살이 대표적이다. 당시 로마교황은 이 대학살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하느님 찬양(Te Deum)’이라는 성가를 부르도록 명했다. 마녀재판과 마녀화형은 18세기 말엽까지 그치지 않았고, 북미 뉴잉글랜드에서 19세기 초까지도 창궐했다. 그리고 가톨릭·국교회·개신교 국가들은 이단종파를 모든 공직과 대학교에서 상호배제하는 심사율(Test Acts) 등과 같은 종교억압제도를 운영하여 이단종교와 무신론자에 대한 정치·교육탄압을 19세기까지 계속했다.

이런 유럽에 “극동제국은 무제한적 관용국가들이다”는 사실과 유교적 관용철학을 16세기 중반부터 줄곧 전해서 그야말로 몽매한 서구에 대한 “격몽”이 되도록 만든 철학자들은 이 책에서 상론하는 핀토, 멘도자, 발리냐노, 산데, 마테오리치, 세메도, 나바레테, 르콩트, 뒤알드 등이었다. 또한 이들이 전한 극동보고를 통해 ‘격몽’되어 유럽에 관용정신과 관용정책을 이식하고 전근대적 국가를 정경분리의 관용국가로 만들려고 사상운동과 혁명운동을 벌인 계몽철학자들은 본론에서 상론하는 존 밀턴, 스피노자, 존 로크, 피에르 벨, 볼테르, 존 트렝커드, 토마스 고든, 볼링브룩, 데이비드 흄, 장 멜리에, 폴-앙리 돌바하, 벤저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토마스 페인 등 기라성 같은 사상가들과 혁명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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