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로마에서 “나는 시민이다”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상태바
그리스와 로마에서 “나는 시민이다”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2.13 2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나는 시민이다: 그리스와 로마에서 만나는 최초의 시민들 | 김헌·김기영·이윤철·최자영·김경현 외 3명 지음 | 아카넷 | 292쪽

 

수천 년 전 고대 지중해 세계에는 마법의 주문이 하나 있었다. “나는 시민이다.” 이 짤막한 주문 하나면 지중해 세계 그 어디에서도 생명과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신약성경의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당하자 내뱉은 주문이기도 하다.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천인대장도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결박해놓은 일로 두려워하였다.”

그리스와 로마가 상징하는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시민은 대관절 누구이며 어떤 특권을 지녔기에 이 한마디 말이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을까? 이 책은 최초의 시민 문화를 관통하는 8개의 문화적 코드, 즉 축제, 비극, 자유, 민주주의, 시민권, 연설, 법, 건축을 중심으로 그 마법의 비밀을 파헤쳐본다. 궁극적인 물음은 이렇다. 오늘날의 시민인 우리는 과연 시민이라는 지위에 걸맞은 시민다운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는 걸까?

1부는 그리스. 그중에서도 그리스를 대표하는 도시국가 아테네의 축제, 비극, 자유, 민주주의를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에서 축제는 도시국가의 활기를 유지하는 시민들의 일상 자체였고, 시민들은 비극이 그려내는 고통스러운 장면을 마주하며 자신들을 성찰했다. 누구나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기는 시민들이 번갈아 지배하고 지배받는 정치를 낳았으며, 아테네를 영원한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아로새겼다.

1장 〈축제_아테네의 축제와 시민으로서의 삶〉에서 김헌은 일 년 열두 달 내내 시민들의 삶을 가득 채웠던 아테네 축제에 얽힌 흥미로운 사연들을 조목조목 짚어본다. 신화와 종교 그리고 역사의 맥락에서 생겨난 무수하고 다채로운 이 축제들은 물론 놀이였지만, 단지 놀이에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일상 구석구석을 흥겹고도 경건하게 물들였다. 놀지 못하는 자여, 그대는 시민이 아니다!

2장 〈비극_그리스 비극과 시민 교육〉에서 김기영은 1장을 이어받아 축제의 꽃 대-디오뉘소스 제전에서 화려한 무대를 장식했던 세 편의 비극 작품 『자비로운 여신들』 『안티고네』 『힙폴뤼토스』의 의미를 새겨본다. 비극 공연은 예술이자 오락이면서 동시에 교육이었고, 작품의 주인공이 처한 끔찍한 현실은 시민들에게 자기 자신을 정화하는 배움의 순간을 마련해주었다. 시민은 고통을 통해서 배운다!

3장 〈자유_파레시아, 모두가 말할 권리〉에서 이윤철은 그리스 시민의 권리들에 대한 풍부한 설명을 제공하는데, 그 권리들을 비로소 가능하게 하는 권리들의 권리가 있다. 정치적 권리인 파레시아, 즉 누구나 모든 것을 말할 권리가 바로 그 권리들의 권리이다.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가 자유로운 인간의 미덕으로서 그토록 중시했던 이 파레시아의 실체는 무엇일까? 떠들썩할 용기를 지녀야 시민이다!

4장 〈민주주의_누가 결정하는가?〉에서 최자영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여섯 가지 오해를 지적한다. 이 오해들이 오늘날 직접민주주의냐 간접(대의제)민주주의냐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초래했다. 하지만 진실을 그런 이분법적 대립 너머에 있다. 아테네에도 부분적으로 대의제가 있었다. 진실은 시민들의, 특히 다수를 차지하는 민중의 손에 결정권이 주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은 결정하는 자이다!

2부는 로마의 시민권, 연설, 법, 건축을 살펴본다. 공화정과 황제정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로마는 지중해의 제국으로 군림했다. 팍스 로마나의 이상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누구에게나 시민권을 나누어줌으로써 완성되었다. 연설은 시민들이 그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는 강력한 무기였다. 공권력의 개입보다 시민의 자율성을 소중히 여기는 로마법은 인류의 소중한 유산이며, 사적, 공적 생활이 어우러진 주택 건축에는 시민 문화의 진면목이 담겨 있다.

5장 〈시민권_나는 로마 시민이다〉에서 김경현은 로마 시민권의 확장을 로마의 역사를 조망하는 가운데 웅장하게 펼쳐 보인다. 로마는 애당초 이탈리아반도로 이주해온 이방인들이 부랑자나 도적 떼 따위를 그러모아 세운 이른바 잡종의 도시였다. 그 혼종성과 다양성의 정신이 로마가 제국으로 발돋움하면서 세계시민주의의 이상과 시민권의 확장으로 실현되었다. 로마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시민이다!

6장 〈연설_설득의 정치가, 키케로〉에서 김남우는 5장에서 세계시민주의 이념의 주창자로 언급된 로마의 대표적인 정치가 키케로의 연설문 네 편을 소개하며, 키케로 나아가 로마 공화정의 근본정신을 밝힌다. 그 정신은 ‘후마니타스humanitas’, 즉 동료 시민들에게 우리가 동료 시민으로서 갖는 인간적 의무이다. 후마니타스는 또 철학자 키케로의 사상을 대변한다. 시민은 시민에게 설득할 의무를 지닌다!

7장 〈법_로마법, 국가 아닌 시민의 법〉에서 성중모는 로마법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유산의 이모저모를 따져본다. 로마인들이 법을 발명했다고까지 칭송받는 이유는 로마법이 시민의 권리에 기반을 둔 법이기 때문이다. 개인들 간의 재산이나 계약, 상속 문제에 대한 로마법의 성취 덕분에 비로소 국가의 간섭 없는 자율적인 시민사회도 비로소 가능해졌다. 소송하는 자, 그대가 시민이다!

8장 〈건축_도무스, 빌라, 인술라〉에서 박믿음은 도무스, 빌라, 인술라라는 로마의 세 가지 주거 형태에 대한 흔치 않은 스케치를 그려낸다. 도무스는 상류층이 거주하는 도시 주택, 인술라는 도시에 있는 공동주택 즉 아파트에 가까우며 임대형으로서 상류층 외 주민이 거주한다. 그렇다면 빌라는? 오늘날과 달리 상류층의 전원주택이다. 각각의 집은 각자의 삶을 품고 있다. 그대가 사는 집이 곧 그대이다, 시민이여!

기원론적으로 보면, 시민이라는 개념과 그에 기초한 공동체는 이미 그리스-로마적 고대에 그 원형이 있었다. 특히 고전기의 그리스와 로마 공화정기의 정치체(polis 혹은 civitas)가 그것으로, 권리와 의무, 곧 참정권과 전사로서의 의무를 공유하는 시민들의 공동체였다.

서양의 국가와 시민으로서의 삶의 뿌리이자 원형인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민이 과연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펴봄으로써, 공동체의 시민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공동체는 시민에게 어떤 문화를 제공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하는 바람에서 이 책은 써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