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대국이자 새로운 중화(中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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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은 동아시아 문화대국이자 새로운 중화(中華)이다
  • 고성빈 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2.02.13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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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북경 올림픽 개회식 뉴스를 보고 정말 놀랐다. 중국이 이렇게 한류의 확산을 경계하면서 쪼잔한 문화 훔치기를 자행하고 있는 게 사실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주장하는 것은 반드시 이 때문만은 아니다. 근래 한국이 한류의 세계적 공감을 근거로 동아시아의 새로운 문화대국의 영예인 ‘중화’로 등극했다는 것을 선언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우리가 인식하는 중국은 보통 고전시대의 중국이다. 공맹 유교사상, 삼국지와 수호지, 왕희지, 이태백과 두보, 주자학, 홍루몽 같은 위대한 동양 고전문화의 중심지라는 시각에서 우리는 중국을 인식했다. 특히 오늘날도 청소년보다 중장노년층이 더 그렇다. 

21세기에도 중국인이 한국을 과거의 속국으로 취급하는 것은 대폿집 수준의 정서로서 논리적으로는 착각이다. 고전시대 한국은 한자와 유교 등의 선진적 중국 고전문화의 수입이 필요했다. 한국의 조공은 문화적 존숭의 의미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주적이었지만 중국의 국력을 고려하면 굳이 갈등하고 전쟁을 벌일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중국도 역사상 한반도와 전쟁(수와 당대의 고구려 침략을 상기하자)을 벌여 기분 좋게 승리한 적도 없었다. 임진왜란에서 명나라의 후원도 한국인에게는 왜군 못지않게 신뢰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문화적으로 한국은 중국의 선진 자료를 수입하고, 대국이라는 권위를 인정해 주게 되면 양국이 적대할 필요가 없었다는 게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조공무역은 경제적으로 중국이 ‘엄청난’ 손해를 감수하여야 했다. 역사적으로 지대박물의 자기충족적 대국인 중국은 외부세계와 교역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중국은 외부세계가 스스로 찾아와서 조공을 바치길 원했고 그 대신 경제적 시혜를 베푸는 ‘정신승리’를 더 좋아했다. 따라서, 한반도 왕조들은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도 조공사절을 자주 보내는 게 손해 볼 게 없었다. 선진문화의 수입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조공무역은 필요했고, 정치적으로 중국의 권위를 인정만 하면 서로가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게 동아시아 역사이다. 소위 ‘속국’이라는 것은 비공식적인 정서적 언어에 불과하다. 

그런데 19세기 상황은 돌변한다. 중국의 고전문화는 서양 근대에 참패당했고, 일본이 재빨리(주체성도 버리고) 서구화하면서 중국과 한국의 우수한 고전문화를 침략하여 파괴하고, “동아시아의 새로운 중화”임을 선언하였다. 중국 중심의 중화체제는 무너졌고, 한국은 식민화되었다. 

20세기 혁명 이래 중국의 근대화와 문화 수준은 정치체제의 폐쇄성으로 인해 여전히 후진 상태에 머물러 있고, 일본은 패전에서 일어나 뻔뻔스럽게도 여전히 동아시아의 중화 노릇을 하려고 했으나, 독일 수준의 사과와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동아시아와 세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1세기, 중국은 경제적 부상을 근거로 동아시아 문화대국인 중화의 지위를 재탈환하고 싶지만, 전제정치의 전통을 못 벗어난 공산당 독재의 반문명적 후진성과 비판의 자유마저 부재한 상태에서 이웃인 동아시아와 서양에서마저 반중국 정서만을 증폭시키고 있다. 더구나, 국가주의적 문화정책으로 글로벌 디지털 시대에 역행하는 중국문화의 배타적 ‘갈라파고스화’가 진행 중이다. 세계인의 공감이 아닌 반감만을 잔뜩 얻는 중이다.

한국인이 흠모하던 고전시대 중국의 고전적인 중화문화의 영예는 이제 사라졌다. 더구나, 중국은 위대했던 고전문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근대문화를 창출하고 세계에 공감을 창출하지도 못하고 있다. 21세기 중국의 신문화를 창도하기는커녕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한국의 고전문화를 중국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조선족 문화 정도로 평가절하하려는 할리우드 액션을 발휘하는 꼼수를 쓰기에 이르렀다. 이는 한국문화의 원류가 중국문화의 아류이자 주변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하려는 편협한 음모이다. 

그러나 중국의 의도와는 달리, 우리는 위대했던 고전문화의 중국이 이제는 근대문화의 열등생으로 몰락한 것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인이 ‘한국은 속국이었다’라고 정신승리 하는 동안, 중국을 다녀온 한국인은 ‘중국은 후진국’이라는 취중진담을 내뱉어도 이상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세기 일본은 급격히 서구화와 제국주의를 추수하고 동아시아를 침략하면서 “중화로 등극했다”라고 선언했으나, 침략으로 쌓은 작위적 모방문화는 이제 그 한계에 도달했다. 21세기 일본 문화도 중국처럼 ‘갈라파고스화’가 진행되면서 세계인의 공감에서 멀어지고 있고, 심지어는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도 한국에게 선진의 자리를 내주고 있다. 일본 근대사의 반문명적 폭력성과 현대정치의 보수성을 여기서 진부하게 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누구도 예상 못 했지만, 한류는 ‘동서양 혼성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세계인의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특히 한국은 중국의 오만무례한 대국주의적 중화, 일본의 침략주의적 중화가 모방할 수 없는 평화정신과 다양성의 매력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동아시아의 ‘문화대국’(백범 김구의 표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제 한국은 21세기 동아시아의 새로운 ‘중화’임을 선언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고성빈 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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