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막’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호막’을 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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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막’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보호막’을 치자
  • 배현자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 승인 2022.02.06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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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근대 한국학 연구자로서, 자료를 탐색하다 보면 놀랄 때가 많다. 당시 사회 문화 담론을 이끌면서 활발하게 문필·사회 활동을 했던 이들 중에는 생각보다 적은 나이에 활동을 시작했던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기미선언독립선언서를 기초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최남선은 1890년생이다. 그는 유학 시절 잡지 『대한흥학보』의 편집 일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때 만 16세였다. 귀국 후 ‘신문관’이라는 출판사를 설립하고 『소년』이라는 잡지를 창간한 것은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일본 유학 시절 출판업을 접하고 그 사회적 역할을 경험한 최남선은 당시 조선에 가장 필요하고 시급한 일이 계몽이고 그 수단이 출판업이라는 판단 아래 스스로 출판사를 차려 잡지를 발간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로 회자되던 「해에게서 소년에게」도 이 잡지에 실린 시이다. 최남선은 『소년』 잡지 폐간 후에도 20대에 『붉은 저고리』, 『아이들보이』, 『새별』, 『청춘』 등의 잡지를 발간하여 당시 문화 담론을 이끌면서 계몽에 앞장섰다. 일찍이 조선학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자료 정리를 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데 힘썼다. 그가 10대 때 창립한 출판사 ‘신문관’은 잡지 발간 외에도 근대 한국학 관련 중요 서적들을 다수 출판하여 그 업적이 뚜렷하다.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기도 했고, 한국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광수는 1892년생이다. 그가 첫 작품 「사랑인가」를 발표한 것이 17세 때였다. 이후로 수많은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광수의 이름을 널리 알린 『무정』을 발표한 것은 그의 나이 25세 때였다. 이 작품은 당시에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현재까지도 문체나 내용 등에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외에도 현진건, 이상화, 강경애, 임화, 이상, 윤동주 등 10대에 문필·사회 활동을 시작하여 20대 초중반에 역작을 남긴 이들이 근대에 수없이 많다. 그들의 업적이 오늘날 한국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비교적 이른 나이에 업적을 남긴 근대 청년들이 모두 평탄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살아서 그런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최남선은 유학생활 중 불온한 사회 활동 참여자로 낙인찍혀 제적당했다가 복학하기도 하고, 결국 와세다 대학에서 퇴학당하는 등 학업 과정이 평탄하지 않았다. 잡지를 발간할 때에도 일제에 의해 폐간당하기 일쑤였다. 이광수는 집안이 지독하게 가난했다고 한다. 게다가 열 살 무렵에 부모를 전염병으로 모두 잃었다. 친척집을 전전하다 10대 초반에 혼자 상경하여 육체노동을 하기도 하면서 간신히 연명했다. 일본에 유학할 때도 학비조달이 어려워 중도에 귀국하여 학비를 모아 재유학길에 올라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다. 그들이 이런 지난한 역경 속에서 한발 한발 내딛고 나아갔기에 그들의 업적이 더 의미 있다. 

근대 청년들이 사회 문화적으로 활약할 때 반향이 있었던 것은,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창안해내는 도전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기성 문화에 노출되어 그 틀에 익숙해지고 고정관념이 생기면 창의성을 발현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게다가 기존의 틀은, 그 틀 속에서 편리함을 누리는 기득권이 존재하기에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틀을 깨는 새로움은 기득권과의 마찰과 갈등을 전제한다. 그렇기에 도전 정신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그런 도전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회에 미래가 있다. 상식적이다 못해 상투적이지만,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면 다시 상기해야 할 지점이다.

현재 한국의 청년들이 일찍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분야는 연예계와 스포츠계이다. 청년들이 이 분야에 일찍 뛰어들어 업적을 내는 것은 그들의 향유문화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연예와 스포츠는 일찍부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다. 현대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보면 연예와 스포츠 분야가 다른 분야보다 활성화되어 있다. 청년들이 주로 공유하고 활동하는 커뮤니티를 보아도 이 분야의 사이트가 이용자 수나 활성도 면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연예와 스포츠 분야에 도전하고 업적을 내는 청년들이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연예와 스포츠 분야를 제외하면 청년들이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청년들의 사회적 목소리는 근대보다 퇴보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시기도 점차 늦어지고 있다. 2020년 한국의 성인 가운데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성인, 이른바 ‘캥거루족’이 314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 30, 40대도 65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캥거루족의 증가는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주거비가 높아진 경제 선진국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기도 하다. 쟁점은 이런 현상을 문제로 인식하고 해법을 찾을 것인가, 아니면 방치하고 가속화하도록 부추길 것인가이다. 

현재 한국의 기성세대에게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별반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극대화된 사회에서 기성세대가 설정해 놓은 사회적 ‘성공’과 ‘실패’의 프레임은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한다. 그 틀에 철저히 복무하는 교육 체제 안에서 입시와 취업 스펙에 전심전력하는 청소년들이 삶에 대해 돌아보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며, 세계의 미래, 우주적 시간과 공간에 대해 사색하기란 쉽지 않다. 청년들에게 창의성을 발휘하라고 종용하지만, 정작 한창 호기심을 가지고 견문을 넓히고 경험해야 할 나이의 청소년들을 콘크리트 벽 안에 몰아넣고 생기 없는 지식만 머리에 가득 채우고 있다. 그것도 지적 호기심 충족 차원이라기보다 입시 또는 취업을 위해서이다. 청년들이 너도나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주식이나 코인에 매달린다. 옆도 뒤도 돌아볼 여유 없이 기존에 설정된 한 방향의 ‘성공’ 프레임을 향해 내달린다. 하지만 그럴수록 ‘성공’과 ‘실패’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실패’의 그림자는 더욱 짙게 드리워진다. 그 ‘실패’의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박차를 가한다. 악순환이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미성년’이라는 틀 속에 너무 오랫동안  가두어 두었다. ‘미성년’이라는 시각 속에 은연중 그들의 잠재력과 가능성마저 미숙한 것으로 폄하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18세 청년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것도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피선거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심지어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그들의 판단력을 믿지 못하는 부모들도 많다. 대학 수강 신청부터 휴복학 문제, 직장의 입퇴사 문제까지 부모들이 직접 관여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청소년 각자의 꿈을 키우고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보호막 역할을 해주어야 할 기성세대가 오히려 엉뚱한 데 가림막을 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문제를 심화시키는 것은, 자신은 이 문제에서 예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와 부조리에는 언제나 ‘나’도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늘 남들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 ‘가림막’ 대신에 ‘보호막’을 제대로 치는 일에 지혜를 모을 때이다. 각 분야에서 청년들이 꿈을 펼치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배현자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한국문학

연세대학교 근대한국학연구소 HK 연구교수. 근현대 한국 문학 전공. 연세대 미래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강사와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HK+사업단 지역인문학센터에서 인문학의 대중화 방안을 모색하며 근대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다. 주요 논저로 『이상 문학의 환상성-세계 통찰의 문학적 발현』, 『근대 서사 자료집-안석주의 영화소설 인간궤도』, 『한국 근대 영화소설 자료집-매일신보편』(공저), 『한국 근대 신문 최초 연작 장편소설 자료집-황원행』(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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