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의 희망
상태바
새 학기의 희망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1.02.28 21: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홍 칼럼]_ 대학직설

새봄에 맞춰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계절의 흐름은 어김이 없다. 풋풋한 젊음으로 활기 넘치는 교정은, 그렇지만 상상 속에나 있다. 학생과 만나지 못하는 선생이 선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걱정과 우울함이 새 학기의 기대와 희망을 대신하는 것이 벌써 3학기째다. ‘미네르바학교’ 어쩌고 하면서, 온라인 교육이 대학교육의 미래이니, 심지어 대세이니 적응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연식이 오래된 탓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고 습득하는 일이라면, 학교라는 제도는 이제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절정의 인기와 지배력을 자랑하는 동영상 사이트에 연결하면, 내가 수업에서 가르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게 새롭고 잘 짜인 지식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대학교육을 각 학문 분야에서 최고의 수준에 있는 소수의 학자들이 독점할 것이라는 예측을 마냥 터무니없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을 수도 있겠다. 공간적 거리와 시간적 간격을 가로지르는 의사소통의 편리함을 지금 실감하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정보통신기술은 언어적 장벽도 하루가 다르게 허물고 있다.

그럼에도 당장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미래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컴퓨터 화면의 작은 격자들로 분리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이다. 총장이 대면 수업을 허용한다기에 신청했더니, 수강 학생 숫자가 기준을 넘어서 허용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그나마 기준을 충족하는 수업이 있었지만, ‘당신 수업 때문에 기숙사에 입사하거나 숙소를 구해야 한다’는 학생들의 불편을 한사코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화면의 작은 얼굴과의 거리보다 훨씬 더 멀리 흩어져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수업에 집중시키고 그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것인가.
 
어떤 선배는 교육을 ‘자전거 타는 법 익히기’에 비유했는데, 학생이 자전거에 올라서 페달을 밟는지 주시하면서 자전거가 기우뚱거릴 때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때때로 붙잡기도 하며 배우는 학생들을 돕는, 그리고 돕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선생 노릇은 이제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학생의 입장에서도, 선생이 넘어지지 않도록 돕고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마음 놓고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 타기를 익힐 수 있을 것인가.

총장이 대학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 것인가를 더 고민했다면, 세 번째 학기의 비대면 수업도 이전 학기와 다름없이 운영하겠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강 학생 숫자를 기준으로 대면 수업을 허용할 짝이었으면, 수강인원을 그 기준 이하로 제한하고 개설하는 강의의 숫자를 늘렸으면 될 일인데, 기존의 수업 관리 방식을 변경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참, 비대면 수업이 부실할 것을 걱정하여 총장이 취한 조치가 있기는 하다. 온라인 수업을 종료한 후에도 30분 동안 연결을 끊지 말고 학생들과 면담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수업 시간에조차 집중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수업 외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지는 불문가지이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지금 대학의 ‘수업 환경’은 형편이 없다. 간단한 예로, 초중고등학교 수업은 20여 명의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대학의 수업 규모는 대부분 그것의 2배쯤 된다. ‘경비 절감’을 이유로 강의 개설 숫자를 줄이고, 수강 학생 숫자가 기준에 미달하는 강의는 폐강한 탓이다. 아마 근래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대학의 수업은 50~60명씩 수강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정부나 기업이나 언론을 가리지 않고 ‘지식경제’, ‘창조경제’를 외치지만, 학생들이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지 않더라도 상황에 부딪히면 지식을 생산하는 자전거를 능숙하게 내달려서 경제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지 않고서는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평가지표에 ‘융복합’이니 ‘혁신’이니 ‘창업’이니 하는 거창한 항목을 넣기에 앞서, 소규모 강의의 숫자 같은 항목을 넣는 것이 대학교육을 정상화하는 첫걸음이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