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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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여권
  • 설동훈 전북대학교·사회학
  • 승인 2021.01.1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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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정부는 2021년 1월 8일부터 국내로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에 대해 코로나19 바이러스 ‘중합효소 연쇄 반응’(polymerase chain reaction: PCR) 검사 결과 ‘음성확인서’ 제출을 의무화했다. PCR 음성확인서 기준 미달자 또는 미제출자는 입국이 불허된다. 해외로부터 코로나19 유입을 차단하는 조치를 강화했다.

한편, 2020년 12월 영국·미국·캐나다 등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개시했고, 곧이어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EU 회원국도 동참했다. 앞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하는 나라와 접종자가 점점 많아질 것이다. 코로나19 면역력이 생긴 사람들의 입국 제한을 완화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PCR 검사 음성확인서’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접종 사실 증명서’를 요구할 것이다. 관건은 다른 나라의 PCR 검사와 백신 접종 사실을 어떻게 신뢰 가능한 방법으로 입증하는가에 있다.

스위스 제네바를 근거지로 하는 비영리단체 ‘커먼스 프로젝트 재단’(Commons Project Foundation)은 세계경제포럼(WEF)과 함께 일종의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인 ‘커먼패스’(Common Pass) 앱을 개발하고 있다. 커먼패스는 PCR 검사와 백신 접종에 관한 표준화된 증명을 제공함으로써 개인과 각국 정부 및 항공사 등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모든 데이터는 암호화되어 ‘개인 정보 유출’이나 ‘PCR 검사 결과 위조’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개인이 출국 전 공인된 기관에서 백신 접종을 하고, PCR 검사를 받는다. 그 결과를 커먼패스 앱에 데이터로 입력한다. 또한, 개인은 앱에서 이동 목적지 국가에서 요청하는 질문에 답변한다. 방역관리 또는 입국관리 규정을 근거로, 각국 정부는 PCR 검사 결과와 백신 접종 사실 등의 인증서를 QR코드 형태로 발급한다. 항공사는 개인의 커먼패스 앱에 있는 QR코드를 스캔한 뒤 승객의 탑승을 허용한다. 개인은 도착국 입국심사대에서 입국심사관에게 커먼패스 앱의 QR코드를 제시한다. 수용국 정부는 커먼패스를 통해 외국인의 방역 정보를 입수하고 확인한 후, 문제가 없으면 입국을 허가한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에서도 백신 여권인 ‘트래블 패스’(IATA Travel Pass)를 개발하고 있다. 스마트폰 앱 형태인 트래블 패스는 여행객들이 접종해야 할 백신이 무엇인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등을 알려준다. 비영리단체 ‘리눅스 파운데이션 공중보건’(Linux Foundation Public Health: LFPH) 역시 ‘코로나19 증명서 이니셔티브’(COVID-19 Credentials Initiative)와 함께 ‘백신 여권’을 개발하고 있다. 개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백신 접종 사실 증명서를 보관하고, 공항·항공기·공연장·경기장 등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그것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IBM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여 ‘디지털 헬스 패스’(Digital Health Pass)를 개발했다. 공공시설을 이용할 때 필요한 발열 검사 용도는 물론이고, PCR 검사, 백신 접종 기록 등을 맞춤형으로 설정할 수 있다. 즉, 백신 여권은 공항·항공기에서는 물론이고 일반 건물·학교·공연장·경기장 등 공공시설, 기차·전철·버스 등 대중교통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백신 여권은 개인이 백신 접종을 받아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 준수, 출입 제한, 격리 조치 등에서 벗어나게 될 수 있다는 발상에 기초하고 있다. 사람은 백신을 맞은 지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면역력을 가지므로, 백신 여권이 효력을 발휘하는 시점을 엄격히 규정해야 한다. 백신 여권을 가진 개인은 ‘이동과 모임의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되므로, 코로나19로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하는 효과를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현재 접종하고 있는 백신의 효력이 지속해서 나타날 것인지 불확실하다며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백신을 맞아도 효능이 안 나타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므로, 그 효과를 과신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수 있다는 걱정이다. 이러한 점은 백신 여권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과정의 유의사항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앞으로 백신 여권이 있어야 해외여행 또는 공공장소 출입이 가능한 상황이 닥칠 것이다. 백신 여권은 백신 접종자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부여하지만 접종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동과 다중이용시설 출입 제한’, 즉 족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백신 미접종자는 ‘백신 여권’이 없어서 발목이 묶인 신세가 된다. 한 나라 내에서도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서 뒤처진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해외여행 기회를 박탈당한다. 예컨대, 국제학술회의 참가를 위해 외국을 방문하는 학자·전문가는 ‘백신 여권’이라는 필요조건을 충족한 사람들로 제한된다.

이러한 상황은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 간 사회적 격차를 확대하고, 두 집단 간 차별을 심화시킨다. 그것은 개인에게 ‘백신 접종’을 강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프랑스 정부가 2020년 12월 23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증명하지 않으면 대중교통 이용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을 때, 사람들은 ‘백신 접종 강제’라고 반발했다.

‘국가 간 백신 격차’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저개발·저소득 국가에서는 백신 확보와 접종이 어려운 게 현실이므로, 그 나라 사람들은 해외여행·국제이주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다. 즉, 선진국과 저개발·저소득 국가 간 백신 격차로 인한 불평등이 더욱 확대될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학교·사회학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소장과 사단법인 고용이민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국제결혼중개업, 외국인고용허가제, 이민개방, 남북통일 후 사회통합 등에 대한 정책·학술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외국인노동자와 한국사회』, 『이민정책론』(공저), 『사회조사분석』(공저), 『사회학의 이해』(공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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