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사멸을 멍하니 쳐다보는 미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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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사멸을 멍하니 쳐다보는 미개사회
  •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 승인 2020.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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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남 칼럼_대학직설]

벚꽃 지는 순서대로 대학의 문이 닫힌다던 어느 냉소가 새삼 현실로 다가오면서 소름을 돋게 한다. 2021년도 수시전형 모집을 마쳤다. 예년과 달리 확연히 내려간 입시경쟁률을 확인하고는 겨울에 예정된 정시전형 모집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우려해야 하는 사안의 그 가벼움 때문에 지방사립대 교수들은 흔적 없는 홍역처럼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몸살을 앓는다. 여느 생활인의 일자리를 지키려는 몸부림으로 받아들여지고는 있으나, 실은 사라져가는 대학과 지역을 한 번이라도 눈여겨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후와 에너지 등 외부의 요소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기존의 틀로 보자면 분명 사람의 단위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그게 아니다. 넘쳤던 자원과 인구가 이제야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셈이다. 미시적으로는 수축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 것이지만, 길게 보면 정상사회로 향하는 중인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이유 없이 부풀었던 거품들이 사라지면서 정상의 함수가 정립되어가는 과정에 있다. 사회의 온갖 구조와 요소들이 골고루 줄어드는 재구조화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왜곡되어 나타난다. 만일 태풍이 연이어 한 지역을 강타했다면 손을 쓸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그럼에도 수축사회로의 능동적 적응만큼은 이성적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대학과 학생의 수를 감축하려는 구조조정의 방식은, 예쁘게 포장된 ‘진단평가’라는 그 명칭에 모순되는 어떤 폭력성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교육 운동의 성찰을 거치면서 꿈꾸던 희망, 즉 고등교육에서의 공공성이 다른 어떤 가치보다 옹호되며, 궁극적으로는 현실과 제도에서 적절하게 구현될 것이라는 그 상상이 점차 절망으로 뒤바뀌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시민 모두가 고등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누리고, 사회의 자원과 재정에 공평하게 의존하여 높은 수준의 고등교육에서의 배움을 경험함으로써 사회와 인류문화의 지속 가능한 생존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공공성이 요구하는 가치이다. 더욱이 대학은 인력양성소이거나 자신의 권력서열을 확인하는 서류발급기관이 결코 아니다. 대학이란, 자신의 지역에서 공공성의 진지를 구축하고 시민들의 공유지로서 역할을 지속하는 질 높은 고등교육의 담지자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은 지성과 문화의 이기적 주체에 머물지 않으며, 인간과 세계의 이성을 기획하고 함께 구현하는 새로운 인격이자 공동체의 공간이어야 한다.

단지 ‘공영형 사립대학 육성사업’이 사실상 좌초되고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데 분을 표하는 것이 아니다. 이 그럴듯한 쇼를 기획하는 정치 세력들의 기만, 그리고 이를 보고도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는 사회의 평안에 그저 놀랄 뿐이다. 하지만 수축사회는 결코 인구의 수축만 의미하지 않음에 두렵다. 오히려 이를 정치적으로 왜곡하면 지역과 그 문화의 수축과 사멸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고통이 심한,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교육 공공성의 가치를 구현하려는 정치적 기획을 실천하지 않은 채 비교육적 측량으로 구조조정만을 강요한다면 결국 한 폭의 그림을 채워주던 주변은 사라지고 또 다른 주변이 재생되는 미개사회의 역사만 반복될 것이다. 대학은 그저 지식의 창고가 아닌, 시민들이 지역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인류문화의 이성적 공간이다. 그러므로 대학으로서의 실체를 갖추었다면 그 어떤 기획보다도 이를 보듬고 지켜야 하는 공유지라고 본다. 그런데도 사회와 국가가 교육의 책무를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거나 왜곡된 수치로써 여전히 대학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차단한다면 ‘냉소’는 체념을 넘어 스스로 존재를 부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영남 논설위원/인제대·법학

인제대학교 공공인재학부 교수로 <교수평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민주법학> 편집위원이며, 전공은 계약법으로 교육법, 인권법, 주택법, 법여성학 등에도 관심이 많다. 저서로 『여성과 몸』(공저, 2019), 『대학정책, 어떻게 바꿀 것인가』(공저, 2017), 『민법사례연습』(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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