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담론의 새로운 장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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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담론의 새로운 장을 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4.04.20 2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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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항쟁과 탈식민화의 문학 | 김재용·김동윤 지음 | 소명출판 | 374쪽

 

제주 4·3사건 제76주년, 2024년 현재 4·3사건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떠한 성격 규정도, 역사적 평가도 없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2조)으로 정의되는 ‘제주4·3’의 정명(正名)에 첫걸음을 내딛다.

국가의 억압 속에서 4·3을 연구하기 시작했던 1980년대에는 4·3을 항쟁으로 보고 접근하려는 노력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6월항쟁 이후 4·3특별법이 제정되고 국가의 사과가 이루어지면서 국가폭력 문제가 전경화되자 항쟁으로서의 4·3은 물밑으로 가라앉아 가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이행기 정의의 한 양상으로 존중되어 마땅하지만, 거기에만 만족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4·3을 더 이상 수난과 희생에만 가두어 둘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역사의 흐름을 되돌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하고 항쟁의 측면에 집중하여 담론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했다.

4·3을 항쟁의 관점에서 연구하는 작업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냉전 반공주의 고착 이후 4·3항쟁의 주체를 남로당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류화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필자들은 해방 직후 당시의 자료를 새로운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을 시작으로,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국을 염두에 두면서 남북 좌우의 모든 방면을 고찰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
『제주신보』 이외에 새로 발굴된 다양한 자료와 4·3항쟁을 재현한 작품을 다시 고찰하면서 항쟁의 주체들이 내세웠던 단선 반대의 음직임이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 독립운동의 큰 흐름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바로 미국과 소련을 등에 업은 세력을 반대하고 일본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진정한 자주 독립국가를 만들려고 하였던 노력이었다. 더불어 그동안 항쟁의 주체로 널리 받아들여졌던 남로당은 그 저항의 흐름에 편승한 일부 세력에 지나지 않음을 확인했다. 그러한 관점은 5·10 단독선거 이후 상층부에서 자리잡기 시작하여 10월부터 전개된 제주도 초토화 작전 이후 굳어진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통일 독립운동으로서의 4·3항쟁은 비단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다. 1870년대 이후 전 지구가 제국주의 억압으로부터 심한 고통을 받았는데 그중에서도 한국은 가장 저항이 강했던 지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새로 등장한 미국과 소련이라는 제국 국가들의 탐욕 아래, 가장 선도적으로 통일 독립국가의 열망을 갖고 저항에 나섰던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그런 점에서 4·3항쟁은 탈식민화운동의 최전선에 선 세계사적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오키나와, 타이완, 베트남 등등 여러 지역과 나라들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면서 시론적 성격의 글을 발표하였던 것 또한 4·3항쟁의 세계사적 의의를 밝히는 문학 연구 작업의 일환이다. 필자들이 접한 많은 국내외의 문학 작품들은 수난에서 항쟁으로 4·3 인식의 전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른 회고들과 함께, 많은 상상력을 제공했다. 항쟁의 시각을 견지한 김석범, 김시종, 현기영의 문학이 주된 연구 대상이었음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밀항자들을 정치적 난민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연구도 동일한 차원의 작업이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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