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맛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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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맛의 세계
  •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 승인 2024.04.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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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환규 교수의 〈과학에세이〉

 

현대인의 혀는 이른 아침 커피를 마실 때부터 저녁 식사 후 양치할 때의 치약에서 풍기는 민트향에 이르기까지 음식으로부터 유래한 수많은 미각 분자의 폭격을 받고 있다. 인류를 포함한 동물은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한다. 동물은 목재나 진흙도 먹을 수 있으나 이런 물질은 어떤 영양분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음식이 아니다. 동물은 어떤 것을 먹고 어떤 것을 먹지 않아야 하는가? 답은 미각에 달려있다. 동물은 먹이, 독성물질과 교미할 짝의 존재를 알려주는 광범위한 종류의 화학물질 속에서 생존·진화해 왔다. 동물은 화학 감각으로 꿀의 단맛과 쓴맛을 내는 식물의 독소를 구별할 수 있다. 미각은 주위 환경에 존재하는 화학물질의 감지로 인류의 생리적 욕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인류는 약 7~8백만 년 전까지 다른 유인원과 공통 조상을 가졌다. 현존하는 유인원의 야생 섭식 패턴이 인류 마지막 공통 조상의 섭식 패턴을 반영한다고 가정하면, 그 당시의 조상 종들은 식물의 잎, 열대 과일과 곤충을 주식으로 하는 잡식종이였을 것이다. 인류의 가까운 친척인 침팬지는 주로 과일을 섭취하여 열량을 얻는다. 초기 원인(猿人)의 섭식 패턴은 유인원의 숲-특이적 패턴으로부터 개방된 환경의 패턴으로 변화되었으며, 440만 년~230만 년 전 원인의 섭식 패턴과 영양적 다능성은 극적으로 확장되었다. 초기 원인은 현생 인류처럼 고기 같이 소화가 잘되는 단백질을 섭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공하지 않은 고기에서는 우마미맛이 미미하나 숙성시키거나 불로 요리하면 강한 우마미맛을 갖게 된다. 가수분해된 단백질은 주로 글루타메이트와 리보뉴클레오타이드에 의해 우마미맛을 나타낸다. 진화 차원에서, 침팬지는 글루타메이트나 리보뉴클레오타이드 맛을 느끼는 미각의 하위 영역을 출현시키지 못했다. 화석 증거에 의하면 현생 인류의 출현 이전에도 불을 이용한 요리 방법이 존재하였다. 또한 인류는 다양한 발효된 동식물 먹거리를 즐긴다. 발효 식품은 즉각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다량 또는 미량 영양소를 공급할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영양 건강을 유지하고 질병을 차단하며 위장 감염에 대항하는 프로바이오틱 세균을 제공한다.

혀에 존재하는 미각세포 내에서 화학 자극 정보는 전기신호로 변환되어 미각신경을 통해 미각 가공이 일어나는 뇌간으로 중계된 다음, 맛의 의식적 지각과 감정 및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뇌 부위로 중계된다. 뇌로 맛 메시지를 중계하는 또 다른 신경인 삼차신경은 캡사이신 등에 의한 열감 정보를 전달한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단맛, 신맛, 짠맛과 쓴맛의 4가지 미각이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으나, 2002년도에 우마미맛 수용체가 확인되었으며, 그 이후 칼슘, 전분, 지방, 심지어 물 같은 미각에 대한 20종류의 수용체가 발견되었다. 5가지 기본 미각은 문화나 풍습과 무관하게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이다. 인류는 청량음료와 맥주같이 탄산이 포함된 음료도 좋아한다. 탄산수는 물에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용해하여 제조하는데, 탄산수를 마실 때 나오는 거품이 입과 혀의 표면을 자극한다. 단맛을 내는 물질로는 과일에 함유된 과당, 꿀이나 설탕 같은 당류는 물론 모넬린 같은 단백질, 인공감미료인 사카린과 아스파탐 등이 있다. 인류는 본능적으로 단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신생아는 모유를 맛있게 섭취한다. 쓴맛은 본능적으로 거부하는데, 많은 종류의 식물 독소가 쓴맛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각에 대한 인류의 본성은 경험과 학습에 의해 변화될 수 있어 녹차나 커피의 쓴맛을 즐기기도 한다. 한편, 인체는 특정 영양소가 결핍되면 이를 감지하여 해당 영양소에 대한 식욕을 높이는데 체내 염분이 부족할 경우 짠 음식을 갈구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혀에 존재하는 단맛과 우마미맛 수용체는 2종류의 단백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류는 쓴맛에 민감한 25종류의 단백질을 보유하지만, 쥐는 37종류, 개는 16종류의 단백질을 갖고 있다. 쓴맛 수용체와 달리 단맛과 우마미맛 수용체는 유사한데, 이들 단백질의 수와 아미노산 서열은 진화 시간을 통틀어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가 단맛을 느낄 때 뇌는 도파민을 방출하여 희열을 느끼게 된다. 인류는 지방의 맛을 감지할 수 있는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생쥐는 지방산이 혼합된 물을 선호하며, 지방산 수용체로 추정되는 단백질을 발현하는 미각세포를 갖고 있다. 유사한 단백질이 인류의 미각세포에도 존재하는데 지방산 수용체로 여겨진다. 지방은 열량이 많은 영양소이다. 지방의 한 유형인 중성지방은 입안에서 기름기 있고 크림 같은 질감으로 느껴지는데, 이것은 미각 수용체가 아닌 체성감각 신경에 의해 감지된다. 지방에는 많은 휘발성 화학물질도 포함되어 있는데, 이들은 후각 시스템을 통해 좋거나 나쁜 냄새로 인지된다.

인류의 맛 선호는 출생 전의 발생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생물심리학자인 메넬라(Julie Mennella) 박사는, 임신 3개월부터 당근 주스를 섭취한 여성의 모유를 먹고 자란 어린이는 당근 주스를 섭취하지 않은 엄마의 아이보다 당근 맛이 나는 시리얼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미각 수용체가 존재하는 미뢰는 태아 12주부터 발달한다. 메넬라의 연구에 의하면, 태아는 엄마 자궁의 양막 내에서 양수를 통해 최초의 미각을 경험한다. 발생 과정 중 태아는 모친이 섭취하는 음식에 반응하는데, 출생 후의 미각 선호에도 영향을 미친다. 임신 중의 여성은 비임신 여성보다 다양한 종류의 해로운 미각 분자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임신 기간 동안 구역질이 나는 여성은 쓴맛 자극에 더 민감하다. 어린이는 독성물질을 회피하는 엄마-태아의 영양학적 행동 전략을 유지하면서 성장한다. 또한 미각은 유전적 영향이 큰데, 일부 인류는 평균 이상의 미뢰를 갖고 태어나 일부 맛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유전적 변이는 쓴맛 같은 일부 화합물에 대한 미각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인류의 심리, 기대, 경험, 문화적 배경 역시 미각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인류의 단맛 선호는 본능이다. 출생 전에 단맛을 감지하는 능력은 수유에 영향을 미쳐, 유아는 본능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단맛을 선호한다. 유아는 희미한 단맛에도 반응하고 다양한 범위의 단맛 농도를 구분할 수 있다. 단맛 용액이 입안에 있을 때 유아의 얼굴은 이완되어 만족한 표정과 미소를 짓는다. 생후 2~3일 지난 영아조차 자당 투여에 반응하여 희열 반응과 연관된 뇌 부위가 활성화된다. 또한 단맛 미각 분자는 영아와 어린이에서 진통제로 작용한다. 우는 아이에게 단맛 용액을 소량 투여하면 신속하게 조용해지는 효과가 수 분간 지속되는데, 이것은 대사나 위에서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입으로부터 유도되는 신호로 단맛에 의한다.

                                                     이미지 출처: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쓴맛은 독성이 있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나, 작용 기작은 단맛과 유사하다. 쓴맛과 단맛 화합물 모두 G-단백질 연관 미각 수용체와 결합한다. 쓴맛은 커피와 블랙 초콜릿 같은 식품과 독성물질에 의해 감지된다. 일반적으로 동물이 쓴맛을 느낄 때 그것은 그 식품을 회피하라는 신호이다. 성인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 결과, 쓴맛은 소금과 설탕 사이의 차이를 반영한다. 소금은 말초 신경계에서의 쓴맛을 억제하나, 단맛은 중추 미각 경로를 따라 작용하여 성인에서 다양한 범주의 쓴맛을 억제한다. 신맛은 산성과 연관된 미각이다. 신맛은 감귤류와 식초, 요구르트 같은 발효 식품에서 느낄 수 있다. 신맛을 느낄 때 뇌는 보다 많은 침을 생성하도록 신호를 보내 음식의 산성을 중화시킨다. 짠맛은 소듐과 연관되어 있으며, 칩과 비스킷 같은 짠 스낵과 많은 가공식품에서 느낄 수 있다. 짠맛을 느낄 때 뇌는 수분을 섭취하도록 신호를 보내 염의 균형을 맞추도록 한다.

우리는 특정 음식을 섭취한 뒤 토하고 고열이 발생하는 등 고생을 한 경우가 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면 그 후로 같은 음식에 대해 생각하기도 싫게 되나 이런 거부감은 다른 음식의 섭취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생쥐 집단을 이용한 연구 결과, 생쥐에 단맛 액체를 먹이면서 일부 생쥐에게는 잠깐 동안 통증을 유발하는 약물을 단맛 액체와 혼합하여 투여하였다. 통증 유발 약물이 포함된 액체를 단 한 번 섭취한 생쥐조차 그 후 단맛 액체를 회피하였다. 맛 거부학습은 강한 연합기억을 유도한다. 이런 현상은 음식의 맛과 냄새 자극에 대해 나타나며 평생 지속되기도 한다. 낯선 먹거리가 독성을 띨지 모르는 상황에서 동물의 맛 거부 현상은 유용한 학습 형태이다. 인류의 맛 거부학습은 상하지 않은 멀쩡한 음식마저 거부하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음식 거부는 방사선치료나 화학요법을 행하는 암 환자에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치료로 인한 구역질이 다른 음식까지 거부하게 한다. 맛 거부학습은 사육 중인 코요테가 먹이를 훔쳐 가지 못하게 하거나, 인류가 술과 담배를 끊고자 할 때 도움이 된다.

미각은 인류 삶의 본질적인 면을 차지하고 있다. 미각은 좋아하는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하거나 불쾌한 음식을 회피하도록 만든다. 미각은 인류의 음식 선택, 사회적 삶과 건강 유지에도 필수적이다. 인류의 미각 선호는 유전적 기질, 문화, 양육과 개인적 경험으로부터 유도되는데, 매운맛을 즐기는 집단에서 자란 사람은 매운맛을 즐기게 된다. 이런 탓에 내륙 산골 출신들은 일반적으로 회를 즐겨 하지 않는다. 미각은 인류의 사회적 삶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우리는 가족이나 친구와 좋은 음식을 즐기려 모인다. 인류가 즐기는 음식은 사회적 유대관계를 증가시키는 동시에 집단의 정체성과 문화유산의 표현 양식이다.

 

김환규 편집기획위원/전북대·생리학

전북대 생명과학과 교수. 전북대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University of California, Davis 교환교수, 전북대 자연과학대 학장과 교양교육원장, 자연사박물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생물학 오디세이』, 『생명과학의 연금술』, 『산업미생물학』(공저), 『Starr 생명과학: 생명의 통일성과 다양성』(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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