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도 다른 한일 양국의 문화와 사상에 대한 미적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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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면서도 다른 한일 양국의 문화와 사상에 대한 미적 탐색
  • 박규태 한양대 명예교수·종교학
  • 승인 2024.04.2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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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과 모노노아와레: 한일 미의식 산책』 (박규태 지음, 이학사, 786쪽, 2024.03)

 

한국인과 일본인은 인종적・언어적・문화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까운 민족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 모두를 잘 아는 이들은 종종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사실 존경받는 인물이나 높이 평가받는 가치 등에서 양국이 서로 반대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종종 일본인은 한국문화가 중국문화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폄하하며, 한국인은 일본문화가 한국문화의 아류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린다. 물론 이런 태도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범벅된 콤플렉스로 인한 독선적인 편견에 불과한 것이리라. 그렇다고 언제나 서로를 비방만 하는 것은 아니다. 양국민의 의식 속에는 서로에 대한 원심적인 반발 감정과 구심적인 친화 감정이 복잡하게 착종되어 있다. 

한일간의 해묵은 갈등은 지정학적・역사적 경험의 차이에서 초래된 부분이 크다. 하지만 상대방의 문화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된 부분도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서로 상대를 잘 알고 있다는 착각은 그런 오해를 증폭시킨다. 양국 사이에는 외견상 비슷해 보이는 문화적 유사성이나 공통점이 많다. 이로 인해 오히려 한일 간의 오해나 갈등이 심화되는 경우도 많다.

양국은 인종적・언어적 유사성뿐만 아니라, 동일한 한자・대승불교・유교 문화권에 속한다는 점에서 많은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고대로 갈수록 한일의 공통점이 많이 나타난다. 한편 현대 한국문화의 원형이 주로 조선시대에 있듯이, 현대 일본문화의 핵심적인 요인들도 대부분 에도시대에 그 원형이 형성되었다. 조선시대와 에도시대는 모두 쇄국시대였고 주자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았다는 점에서 두드러진 일치를 보여준다. 또한 양국 모두 서구와 같은 종교전쟁은 없었다. 양국은 현재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종교다원주의의 나라로 종종 ‘종교의 백화점’이라 칭해진다. 나아가 서구인이 볼 때 한국과 일본은 모두 집단주의적이며 조화를 중시하는 문화로 비쳐지곤 한다. 

양국은 부정적인 문화적 특징을 공유하는 측면도 많다. 예컨대 한일 모두 논리보다 직관적 사고방식이 발달되어 있고 대화에 서투르다. 한국인은 종종 자신의 이념적 옳음에 집착하여 대화가 아닌 일방통행적 독백이나 공격적인 논쟁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흔히 대화적인 의사전달보다 상대방의 심중을 직관적으로 읽어내는 능력이 더 중요시되곤 한다. 확실히 일본은 남의 시선에 지극히 민감한 ‘세켄(世間)’이라든가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분위기를 재빨리 파악하여 거기에 순응하는 ‘공기(空氣)’의 문화에 익숙한 종적인 ‘다테(縱)사회’이다. 한국인도 타인의 시선에 대단히 민감한 체면의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아울러 한국인도 일본인도 모두 지나치게 감상적인 경향이 있고, 자국문화의 고유성이나 특수성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심리적 성향이 강하다. 게다가 ‘국화와 칼’로 표상되는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심성도 극과 극을 달린다. 심지어 이른바 ‘냄비근성’까지 비슷하다. 

이처럼 공통분모를 구성하는 한일문화 간의 유사성은 대개 차이를 수반한다. 가령 같은 한자문화권이라 해도 한국은 한자를 통상 한 가지로 읽는 반면 일본은 복수의 음독과 훈독으로 읽는다. 동일한 대승불교권이라 해도 양국 불교의 차이는 매우 현저하다. 한국이 통(通)불교적이라면 일본은 오랜 기간 신불습합(神佛習合)의 역사 속에서 조사(祖師)중심의 장례불교로 귀착되었다. 선불교의 경우도 한국이 공안(公案) 중심이라면 일본은 좌선 중심이다. 무엇보다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승려들이 결혼을 하고 자식에게 절을 물려주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또한 조선시대도 에도시대도 모두 주자학을 관학으로 삼았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까지도 주로 리(理)와 효(孝)를 강조하는 성리학이 지배적이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전통적으로 충(忠)을 더 중시했으며, 신유습합(神儒習合)의 전통 속에서 리를 부정하는 일본 특유의 고학(古學)을 낳았다. 또한 특히 근대 이후에는 오히려 양명학이 사상적으로 큰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뿐만 아니라 샤머니즘은 한국에서 기층신앙화되어 기독교 교회의 대성장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나 교단화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샤머니즘이 일찍부터 도교와 결합하여 신도(神道)라는 민족종교로 발전되어 왔다. 오늘날 양국은 종교다원주의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때 일본의 종교다원주의는 천수백여 년에 걸쳐 이루어진 습합적 중층성의 구조를 보여준다, 이에 비해 한국은 대체로 원형적 순수성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한국의 불교도 유교도 기독교도 모두 그 원천인 중국이나 서구보다 더 순일한 이념적 원리주의를 추구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조선시대도 에도시대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여기서 ‘사’는 한국에서 선비를 뜻하지만 일본에서는 사무라이를 가리킨다. ‘공’과 ‘상’의 경우,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노동 윤리가 일찍부터 잘 발달되어 일본자본주의 정신의 토대로 작용했다. 양국의 쇄국체제 또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나가사키의 데지마(手島)가 상징하듯이 서구에 대해 일부 열려진 쇄국이었다. 나아가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율령제와 유교를 수용하면서도 과거제도는 채택하지 않았다. 과거제도의 채택 유무는 한일 양국의 문화적 차이에 결정적인 요인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한편 한국 역사에는 ‘천황제(문화)와 막부(정치)’이라는 이원적 구조가 부재한다. 죽음을 미화한 ‘할복’의 일본전통도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이런 유사성 속의 차이를 간과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양국 간의 오해와 오인이 증폭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를테면 지난 88올림픽 이후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의 고조와 함께 ‘한의 문화’가 일본에 널리 소개되었을 때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문화의 본질이 ‘원한’에 있다고 오해했다. 동일한 한자의 ‘한(恨)’을 일본인들은 ‘우라미’라고 읽는데, 그 말은 전적으로 ‘원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이 말하는 ‘한’은 단지 원한뿐만 아니라 회한과 비애, 그리고 그리움으로서의 정한(情恨), 소망으로서의 원한(願恨), 혁명적 에너지로서의 해한(解恨)과 신명으로서의 승한(昇恨) 등이 뒤섞인 복합적 감정이다.   

‘한’의 한 요소로 복수라는 관념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한국고전문학에는 복수를 주제로 한 작품이 거의 없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는 <주신구라(忠臣藏)>가 상징적으로 보여 주듯이 복수의 정당성을 문화적으로 승인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에 늘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싫더라도 억지로 참고 해야만 하는 일종의 의무 감각”을 뜻하는 ‘기리(義理)’의 관념이 이런 성향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자기 ‘이름에 대한 기리’가 손상받았다고 여기거나 타인의 비난을 받을 때 예민하게 과잉 반응하는 ‘하지(恥, 수치)’의 관념도 복수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이때 ‘한(恨)’, ‘의리(義理)’, ‘치(恥)’는 동일한 한자로 표기되면서도 양국의 함의가 매우 다르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우라미’와 ‘한’, ‘기리’와 ‘의리’, ‘하지’와 ‘부끄러움’은 그 의미와 맥락에서 많은 편차가 있다. 그럼에도 동일한 한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오해를 초래할 소지도 그만큼 더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하나만 더 들어보자. 한일 양국은 집단주의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지만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가령 일본은 ‘세켄(世間)’에 토대를 둔 의사혈연주의에 입각한 ‘무사(無私)의 집단주의’로 규정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혈연(지연)중심주의에 입각한 ‘이념의 집단주의’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조화’라는 공유가치 속에 내재된 근본적인 차이는 양국 집단주의의 결정적 차이를 만들어낸 일요인이다. 

본서는 이처럼 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일 양국의 문화와 사상을 미적 측면에서 되짚어 보려는 시도이다. 가령 한국의 정원미는 창덕궁 후원이나 담양 소쇄원(瀟灑園)에서 잘 엿볼 수 있듯이 인공적 요소를 최소화한 자연미를 추구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교토 용안사(龍安寺)로 대표되는 가레산스이(枯山水)식 돌정원은 인공적 요소의 극대화를 보여준다. 본서는 특히 이와 같은 ‘자연’과 ‘작위’의 관계에 주목한다. 아름다움에는 양면성이 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작위적인 아름다움도 있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늘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돌과 모래로 물을 표현하는 돌정원에서 대자연을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일본 다인들은 다기의 손잡이 하나를 일부러 떼어내고 거기서 와비의 아름다움을 감상한다. 일본 도공들은 오리베야키 같은 일본적 도자기를 창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릇을 왜곡된 형태로 빚어낸다. 그런 인공적인 노력은 강박적으로 매우 섬세하게 이루어진다. 손을 대서 꾸미고 다듬고 조작한 것을 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것이 본서의 가장 핵심적인 물음 중 하나이다. 무엇을 자연이라고 여기는가의 차이는 곧 한일 미의식의 가장 큰 차이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위의 미에 민감한 일본적 미감의 사상적 배경을 천착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가장 주목해야 할 사상가가 바로 국학의 대성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이다. 그가 체계화한 모노노아와레(物哀) 사상의 단서는 “자연과 작위의 범주로 세계를 파악하는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리나가는 “작위야말로 자연을 성취한다.”고 여긴 것이다. 도대체 일본인은 왜 작위의 미를 자연보다 더 자연스럽다고 여기는가? 이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본서는 텐넨, 시젠, 오노즈카라, 지넨이라는 일본적 자연 개념을 살피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본서는 가장 일본적인 철학자라 일컬어지는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1870-1945)의 ‘절대모순적 자기동일’ 사상에 주목한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미적 감수성은 공통적으로 불완전한 ‘홀수의 미학’ 혹은 ‘체념의 미학’이 중요한 부분을 구성한다. 일본에서 그것은 ‘와비(侘び)’나 ‘모노노아와레(物哀)’라는 미의식으로 나타난다. 이에 비해 한국에서는 그것이 주로 ‘고졸미(古拙美)’ 또는 ‘한(恨)’의 미의식으로 표상된다. 이 가운데 특히 ‘한’과 ‘모노노아와레’는 각각 한국인과 일본인의 ‘슬픔의 미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면서도 그 내실은 매우 많은 차이를 노정한다. 본서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 점을 살펴보고 있다. 

본서는 한국인의 미의식을 ‘한의 변주곡’이자 ‘승한(昇恨)의 변주곡’으로 이해한다. 그러면서 그 전형적인 사상적 배경을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의 ‘불연기연(不然其然)’ 개념에서 찾고 있다. 불연기연이라는 한국형 ‘반대의 일치’ 사상의 궁극적 지향점은 ‘모순의 승화’에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인의 미의식은 ‘모노노아와레의 변주곡’이라 할 만하다. 그 사상적 밑그림으로서 일본형 ‘반대의 일치’ 모델이라 할 만한 니시다의 ‘절대모순의 자기동일’ 개념은 모순의 무화로 귀결된다. ‘모순의 승화’와 ‘모순의 무화’는 외면상 유사해 보인다. 두 경우 모두 모순을 넘어서서 조화와 ‘정신적 균형’에 이르고자 하는 하나의 해법이다. 

그럼에도 모순은 언제나 그대로 남아있기 마련이다. 안쪽을 잘 들여다보면 양자가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모순의 승화’는 흥과 신명이라는 ‘한의 미학’과 결부되어 나타나는 경향이 많다. 이에 비해 ‘모순의 무화’는 무상과 체념이라는 ‘모노노아와레의 미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요컨대 한국인은 맺힌 한을 풀어냄으로써 조화에 이르고 거기서 ‘모순의 승화’를 추구한다. 이에 비해 일본인은 응축된 모노노아와레 공동성 안에서 형성된 조화를 통해 ‘모순의 무화’를 지향한다.

당연히 “지금 왜 한(恨)인가?”라는 의문이 들 만하다. 어쩌면 필자는 이념적 양극화가 심각한 한국사회에서 무한 반복되는 한풀이를 바라보며 전통적인 한국적 미의식에 기대어 모순의 승화 가능성을 환기시키고 싶어 한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모순의 승화라는 발상 자체도 좀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모순의 무화와 만날 때 그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모순의 무화라는 모노노아와레의 미학적 구멍은 승화되지 못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쓰면서 모든 의미에서 일본이 우리에게 항상 양날의 칼이라는 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어쨌든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일문화 사이의 공통분모와 유사성 속의 차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그것이야말로 양국간의 참된 유대와 대화의 계기를 만들어내기 위한 인식론적 전제가 아닐까 싶다. 

 

박규태 한양대 명예교수·종교학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일본재발견: 일본인의 성지(聖地)를 걷다』, 『현대일본의 순례문화』, 『일본정신분석』, 『신도와 일본인』, 『일본 신사(神社)의 역사와 신앙』, 『포스트-옴 시대 일본 사회의 향방과 ‘스피리추얼리티’』, 『라프카디오 헌의 일본론』, 『일본정신의 풍경』, 『상대와 절대로서의 일본』, 『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히메까지』 외 다수가 있으며, 주요 역서로 『일본문화사』(폴 발리), 『신도, 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이노우에 노부타카), 『국화와 칼』(루스 베네딕트)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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