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전쟁과 첨단 과학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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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전쟁과 첨단 과학기술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4.04.20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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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오늘의 세계〉 제36강_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의 「현대 전쟁과 첨단 과학기술」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열 번째 시리즈 ‘오늘의 세계’ 강연이 매주 토요일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섯 섹션 총 54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인류 공동체에서부터 개인의 실존에 이르기까지 지금 여기의 어젠다를 새로운 시선으로 담론의 장을 펼친다. 오늘날 과학과 기술의 영역에서 관찰되는 새로운 흐름을 정리해 보는 다섯 번째 섹션 ‘오늘의 과학 기술’ 제36강 최형섭 교수(서울과학기술대 융합교양학부)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현대 전쟁과 첨단 과학기술


최형섭 교수는 기술과 전쟁에 대한 “통념을 보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보면서 “첫째, 전쟁과 기술의 관계를 사회와 기술의 관계라는 그동안의 분석 틀 안에서 검토하고, 전쟁이라는 사회적 활동이 가진 독특함을 지적”한다. 둘째, “1900년 전후로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방법의 변화가 전쟁 기술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이기 위해 “과학과 기술의 관계”가 그 시기에 “어떻게 달라졌는지” 들여다본 결과, “과학적 기술의 등장에 따라” 인류가 “필요할 때 원하는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일부) 갖추게” 되었고 그 같은 능력이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에 변화”를 일으켰음을 말한다. 그다음 셋째로 “한국 현대사에서 군사 기술이 갖는 의미에 대해 개략적으로” 다루며 한국에서 군사 기술이 “군용을 넘어, 또한 민간 “겸용”으로 활용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산업화 과정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마지막으로 “21세기 들어 최첨단 기술을 적용한 군사 기술이 등장하면서 생기는 몇 가지 문제”를 검토한다. 

 

지난 3월 30일, 최형섭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오늘의 세계>의 36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들어가는 말

19세기 프로이센 왕국의 군사 사상가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Carl von Clausewitz, 1780-1831)는 사후에 출간된 『전쟁론(Vom Kriege)』에서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책의 연장이다.(War is...the continuation of policy with other means.)”라고 썼다. 전쟁에 필요한 무력을 제공하는 핵심 가용 자원으로 기술이 활용되었고, 그 중요성은 근대 이후 과학적 지식이 기술과 결합하면서 더욱 증대되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국가는 생존을 위해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기 마련이고, 여러 가용 자원 중에서도 기술은 적을 상대로 전략적ㆍ전술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효과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쟁이라는 극단적 위기가 기술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동력이라는 주장까지 받아들이고 있고, 나아가 무기를 만들기 위한 기술을 민간용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이른바 “겸용 기술(dual-use technology)”을 둘러싼 여러 논의로 이어진다. 오늘 발표에서는 기술과 전쟁에 대한 이러한 통념을 보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살펴볼 것이다. 


전쟁과 기술의 관계

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서는 (인간) 사회가 기술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입장과 기술이 (인간) 사회의 변화를 추동한다는 입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전자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사회 결정론”이 되고, 후자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기술 결정론”이 된다. 

그동안 전쟁사에서 기술을 다루는 방식은 주로 기술 결정론의 입장에 가까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전쟁사학자의 관심은 대개 기술이 발생하게 된 구체적인 맥락보다는, 어떤 경위에서든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 그것이 전쟁 수행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있기 때문이다. 

기술 결정론에 가까운 전쟁사 서술은 기술의 변화에 따라 시대 구분을 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쟁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대 구분은 화약 무기의 본격적인 등장이 계기가 되었다. 16-17세기의 “군사 혁명(military revolution)”으로 알려진 이러한 변화는 전쟁 수행 방식에 있어서 여러모로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첫째, 파괴력의 상한이 없어졌다. 둘째, 부딪히는(shock) 무기에 비해 던지는(missile) 무기의 중요성이 결정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실질적인 전쟁 수행 방식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넘어, 중세를 풍미했던 기사 계급이 몰락하면서 전쟁과 전투가 갖는 의미가 탈각되는 등 군사 문화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즉, 화약 기술이 유럽 사회에서 널리 활용되면서 전투의 양상과 전쟁의 사회문화적 의미가 달라졌고, 그에 따라 광범위한 사회 변화로 이어졌다.

근대 이전까지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기술을 인간 사회 바깥에 존재하는 외생(exogenous) 변수로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기술의 등장은 계획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인류가 기술을, 그리고 기술과 연관된 과학적 지식을 다루는 역량에 큰 변화가 있었고, 이는 20세기 이후 전쟁 수행에 있어 결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20세기 전쟁-기술 관계의 변화

인류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근본적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불과 150년 전인 19세기 후반 이후의 일이었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을 우연성의 산물로 보지 않고 계획적으로 자원을 투입해 체계적으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전쟁과 기술의 관계에 있어 19세기 후반 “발명하는 방법의 발명”은 결정적인 분기점이 된다. 그 이전까지 전쟁이란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간접적 배경이라면 몰라도 직접적 동인이 되지 않았다. 반면, “제2차 산업혁명”을 통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해내는 지식, 경험, 제도가 축적되면서 전쟁은 체계적으로 기술 혁신을 계획해 실행에 옮기는 직접적 동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시험대가 된 것이 1914년에 시작된 제1차 세계 대전이었다. 독일에서는 화학 분야를 중심으로 한 과학자들이 새로운 전쟁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그로부터 약 20여 년 후 시작된 제2차 세계 대전은 전쟁을 마주한 국가가 새로운 무기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미국은 유럽 전장에 참전이 임박하자 과학연구개발국(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을 설치하고 전국의 과학자와 엔지니어에 대한 총동원령을 내렸다. OSRD의 임무는 군사 목적의 과학 연구를 계획하고 조정하는 것이었는데, 여러 프로젝트 중에서도 원자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가 잘 알려져 있다. 

2차 대전의 경험은 국가와 과학기술 전문가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재정립하는 효과를 낳았다. 1900년 무렵에 시작된 “발명하는 방법의 발명” 이래 두 차례 세계 대전은 국가가 과학을 경제성장, 국가 방위, 공중 보건 등 통치의 도구로 활용하는 방법을 정교화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세계 대전은 세계사의 향배를 바꿔놓기도 했지만, 전쟁과 기술의 관계를 결정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차 대전, 특히 맨해튼 프로젝트의 경험은 충분한 자원을 동원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가능한 일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세계 각국에서는 과학기술의 힘에 대한 강력한 믿음과 함께, 그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을 갖추는 데 힘을 쏟게 되었다. 만약에 전쟁이 기술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동력이라면, 그것은 지극히 20세기적 현상, 심지어는 20세기 후반의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 현대사와 국방 기술

한국의 경제 발전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과학과 기술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리라 생각한다. 20세기 전쟁의 세계사적 경험은 과학기술이 새로운 국가 건설에 필수적인 경제, 국방, 보건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했다. 문제는 해방 이후 한국에서 선진국과 같은 과학기술을 발전시킬 만한 기반이 부재했다는 데 있었다. 한국 현대 과학기술사 분야에서 그동안 축적된 연구 성과는 이러한 기반이 어떻게 마련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1966년의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설립, 1967년의 과학기술처 창설, 1977년의 한국과학재단 설립 등이 중요한 이정표로 알려져 있다. 

기존의 한국 현대 과학기술사에서 국방 기술 부문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다. 특히 1960년대 후반 이후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서 독자적인 군사 기술의 확보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강조하면서 국내 기술력으로 군사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1970년에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설립했다. ADD는 기본 병기의 국산 시제품을 만드는 “번개 사업”으로 시작해, 이후 지대지 미사일 시스템을 제작하는 “백곰 사업”과 핵무기를 개발하는 비밀 프로젝트에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ADD가 한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이라는 주류 서사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명쾌하게 해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재미 한국사학자인 권반석(Peter Banseok Kwon)은 ADD의 활동이 군사 영역에서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관련 방위 산업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쳐 1970년대 이후 한국의 기술과 산업 발전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음을 주장한다. 그는 박정희 시대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군사(화된) 자본주의(militarized capitalism)”라고 부른다. 새로운 국방 기술에 바탕을 둔 군사 무기를 군 내에서 모두 자체 제작할 수는 없었을 테니, 민간 산업과의 연계가 필수적이었을 것이다. 결국 1970년대 이후 한국의 산업화와 기술 발전의 상당 부분이 국방을 목적으로 한 연구개발 활동의 직간접적인 영향력하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이후 한국의 방위 산업은 꾸준히 성장해 오늘날 유망한 수출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방 기술은 “겸용 기술”로서의 성격을 매우 잘 보여준다. “겸용 기술”이라는 개념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20세기 이후 인류가 새로운 기술을 계획적으로 만들어내거나 도입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197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동아시아 냉전 구도 속 미국에 대한 군사 의존도를 낮추고 독자적인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는 “자주국방”이 중요한 국정 목표로 떠올랐고, 그 직후 “중화학공업화”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산업 구조의 변동으로 이어졌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이해함에 있어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의 이행을 기술 및 산업 역량의 증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로 볼 것인지, 또는 “자주국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업 구조를 (부자연스럽게) 개편한 것으로 볼지는 역사적 해석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한국의 산업화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국방 기술의 역할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첨단 기술과 현대 전쟁의 양상

21세기 이후 드론을 비롯한 무인 로봇 기술, 인공지능과 가상현실ㆍ증강현실, 정보 보안 등 정보 기술의 발달에 따라 군사 기술의 양상 역시 급변하고 있다. 이상 언급한 기술들은 민간 영역에서도 중대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21세기 들어 군사 기술과 민간 기술의 경계가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첨단 기술이 군사용으로 활용되면서 다양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라 전장에서 인간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인기를 원격으로 조종해 목표물을 타격하는 기술이 이미 일반화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전쟁을 컴퓨터 게임쯤으로 여기게 되는 윤리 불감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문제는 이미 많은 사람이 제기했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전술적인 판단을 기계에 맡기는 데에까지 나아가고 있다. 물론, 이른바 “K-방산”을 유망 수출 산업으로 장려하고 있는 한국도 최첨단 군사 기술의 윤리적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인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기술적 성취 중 어느 정도가 군사적인 목적에서 개발된 기술의 “겸용”인지 검토가 필요한 때이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현대 전쟁과 첨단 과학기술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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