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에게 철학은 대체 무엇이었나, 철학에게 라캉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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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에게 철학은 대체 무엇이었나, 철학에게 라캉은 무엇이었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8.13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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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캉과 철학자들 | 구도 겐타 지음 | 이정민 옮김 | 에디투스 | 272쪽

 

우리가 ‘프랑스 현대철학’이라 부르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무엇보다 플라톤 이래의 진리의 담지자를 자임해온 전통적 철학에 도전하여 그것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려는 시도라는 것으로 이는 ‘반反철학의 군주’라 불린 니체의 전복적인 시도와 맥이 닿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의 특징은, 1960년대 이후의 프랑스 현대철학이란 무엇보다도 프로이트 이후의 철학, 혹은 정신분석과 함께하는 철학이라는 것이다. 

푸코든 들뢰즈든 데리다든, 이 시대의 창조적인 작업을 했던 철학자들은 모두 프로이트의 우수한 독자들이었다. 그런데 방금 말한 두 가지 특징은 언뜻 생각하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철학(혹은 반철학)은 정신분석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 이 질문과 가장 치열하게 대결한 사람이 있는데, 그가 바로 정신분석가 자크 라캉이다. 알랭 바디우가 ‘최후의 반철학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자’라 부른 라캉은, 철학을 과학에 대비시킴으로써 철학의 주장을 추상적 허구라고 몰아붙이는 데 그쳤던 프로이트와 달리 철학 속으로 뛰어들어 전면적인 대결을 펼친다. 심지어 라캉은 철학이라는 행위에 감추어진 본성과 그 한계를 비판하고 무너뜨리는 것을 정신분석(가)의 책무로까지 여겼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구도 겐타의 이 책은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시작으로 그러한 라캉의 철학과의 대결의 기본 맥락이 무엇이며 그것이 철학의 갱신에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밝히려는 시도이다. 즉, 라캉에게 철학은 대체 무엇이었고, 거꾸로 철학에게 라캉이 무엇이었나를 해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라캉은 왜 철학 비판 = 반철학을 정신분석의 중요한,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보았던 것일까?” 다시 말해 정신분석가로서 어디까지나 철학의 타자이면서도 그가 철학의 안쪽을 파고들어가 그것의 본성과 한계를 드러내는 작업을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어떠한 예외라도 지식 체계 안으로 포섭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적 사고를 ‘편집증’으로 냉소했지만 정작 지배 질서와 철학의 내적 관계 역시 진화를 거듭한다는 사실에 거리를 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의 하나의 방법론으로 축소되는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라캉에게 프로이트 정신분석의 재개는 사람의 앎을 지배하려는 지식 체계로서의 철학과 무의식이라는 ‘지배가 불가능한 앎’을 지속적으로 대결시키는 작업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라캉에게 정신분석이란 철학에 저항하는 경험에 다름 아니다. 철학이란 그것이 급진적인 성격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지배(자)에 종사하는 앎의 체계로 전락할 수 있다. 정신분석은 또 하나의 앎에 대해 알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프로이트적인 무의식, 즉 개인이 가진 욕망의 방향을 잡고 결정하면서도 본인조차 알 수 없는 마음의 영역, 어떠한 지배자라도 통제할 수 없는 앎, 지배자 없는 앎의 영역이다. 라캉의 ‘반철학’은 이렇듯 정신분석과 철학에서 앎이 존재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에 근거하는데, 하지만 무의식과 욕망이라고 해서 정치적이고 관념적인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정신분석 실천은 이에 대한 저항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라캉에게 정신분석이 일어나는 장은 철학적으로(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흔들리는 공백에서이며, 무의식이라는 전대미문의 앎이 그때마다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어떠한 드라마를 낳는가를 끝까지 따라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라캉의 반철학은 여느 현대철학처럼 철학적 기획이 아니라 정신분석적 실천의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대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라캉에게 정신분석 실천이 일어나는 장소는 이론적 체계로 설명할 수 없는 불확실한 장소로 남아 있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것이 그의 철학 비판을 다른 어느 현대철학자의 그것보다도 날카롭고 근원적인 것이 되게 했다. 이 책의 기저에는 ‘재개再開’라는 모티브가 작동하고 있다.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모토 아래 프로이트의 혁신성을 되살리고자 했던 라캉의 시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재개’가 기원을 향해 되돌아가는 작업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라캉은 이 작업을 위해 프로이트와는 대조적으로 철학이라는 파트너를 선택했다. 

이상이 ‘라캉에게 철학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대략적인 이해일 수 있다고 한다면, 남은 하나의 질문은 역으로 ‘철학에게 라캉은 무엇이었나’일 것이다. 철학에 대한 라캉의 독해는 텍스트 속에서 딱히 중심적이지 않은 부분을 실마리로 삼아 여태껏 보이지 않았던 철학의 특징을 드러내는 식이다. 라캉은 어디까지나 정신분석가이며, 이는 그가 철학과 대결할 때에도 바뀌지 않는다.

정신분석가의 사명은 증상을 떠맡는 것, 즉 분석 주체와 함께 그 증상을 떠맡는 것이다. 이는 주체가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이야기 속에 분석가가 자신을 새로이 써넣는 것이기도 한데 저자는 라캉과 철학의 대결도 바로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라고 반문한다. 이것이 자신이 철학의 증상을 떠맡는 자가 되어 철학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이야기를 드러나게 하는 라캉의 기법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라캉의 실천은 철학에게 이른바 가장 친밀한 이물질이다. 거꾸로 말하자면 라캉에게 철학은 정신분석에 새로운 과제를 들이대고 정신분석적 사고의 심화를, 나아가 쇄신을 가져온 파트너였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발상 아래 철학을 통해 라캉을, 라캉을 통해 철학을 읽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속이는 신’에게서 ‘타자’의 욕망을 발견했을 때, 혹은 칸트의 정언 명령을 주이상스로 나아가려는 욕망으로서 다루었을 때, 그리고 통상성을 뛰어넘은 소크라테스의 행동을 정신분석가의 욕망과 겹쳐 보았을 때, 라캉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제1부에서는 정신분석학회의 최고 권위인 국제정신분석 협회로부터 ‘파문’된 라캉이 자신의 조직을 새로 세우고 다시 출발했던 1964년 전후의 논의를 다룬다. 이때 라캉은 근대 철학의 기원이라 불리는 데카르트의 철학을 프로이트와 대결시키는 작업에 매진했다. 제1부의 목표는 이 작업의 의미를 정면에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제2부에서는 칸트와 헤겔이라는 철학사의 주류 철학자들에 대한 라캉의 언급을 다룬다. 여기에서는 사랑과 성적 욕망, 꿈, 환상, 트라우마라는 정신분석의 중심 테마를 다루면 서 라캉과 함께 각각의 철학자가 펼쳤던 논의의 이면을 파헤친다. 제3부에서는 라캉의 족적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1960년 전후에 전개되었던 소크라테스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철학의 기원으로 돌아가면서 라캉은 ‘정신분석가란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했다. 이후 라캉의 작업을 결정했다고 해도 좋을 이 질문이 어떠한 방식으로 철학의 ‘재개’를 준비했을까. 이것이 제3부의 테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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