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의 본질, 기제, 존속에 관한 모든 것
상태바
여성혐오의 본질, 기제, 존속에 관한 모든 것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8.13 18: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다운 걸: 여성혐오의 논리 | 케이트 맨 지음 | 서정아 옮김 | 글항아리 | 528쪽

 

여성혐오란 무엇이고, 누가 여성혐오자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기원하여 어떤 위력을 전파하며 어떻게 존속하는가? 이 책은 페미니스트 도덕철학자 케이트 맨이 본격적으로 ‘여성혐오misogyny’를 분석한 철학서다. 이 책은 논쟁이 되어왔지만 그럼에도 진정 논리적으로 탐구된 적은 없었던 여성혐오라는 사회적 주제를 분석철학의 논증법으로 집요하게 파고든다. 여성혐오는 남성이 대부분의 여성에 대해 느끼는 증오나 적개심을 일컫는가? 여성혐오는 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인가?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는 어떻게 다르기에, 성차별주의가 완화될 때에도 여성혐오는 계속될 뿐 아니라 심화되는가?

이 책에서 밝혀내는 여성혐오의 본질과 기제는 여성혐오자들의 허위를 까발릴 뿐 아니라, 여성혐오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문제의식과 해석에도 통찰적 반론을 제기한다. 여성혐오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성을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것이라는 ‘순진한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도, 여성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해서 발생하는 것이라는 휴머니즘적 관점에서 비판되어서도, 남성 지배나 가부장제, 유해한 남성성에 국한된 초점으로 해석되어서도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것은 남성을 양육하고 위안하고 돌보면서 그들에게 성노동·감정노동·재생산노동을 제공해야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여성들, 남성을 도덕적 몰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남성의 도덕적 기준에 근거해 도덕적으로 과실이 있는 존재로 비난받는 여성들을 통제하고 징계하고 축출하려는 법 집행의 일환이다. 요컨대 “여성혐오는, 여성의 종속성을 강요하고 단속하는 한편, 남성의 지배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케이트 맨의 논증은 철학 이론과 추상적 개념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이 책은 여성혐오 살인 사건, 여성 대상 범죄의 판결, 여성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비난과 징계, 강력한 여성 정치인을 향해 표출되는 혐오표현 등 현실의 사건 사고뿐 아니라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다양한 문학작품과 영화 등 문화 콘텐츠까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실제 세계에서 발생하는 여성혐오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철학의 방법과 도구를 제공한다.

여성혐오의 본질은 “남성이 여성보다 더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고 여성에게 비대칭적인 도덕적 지원자 역할을 부여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게 저자의 귀띔이다. 즉, 여성의 종속과 노동, 여성의 관심과 돌봄, 여성의 인정과 사랑이 그 위치를 다지고 유지하는 데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특정한 사회 역할을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는 여성을 단속하며, 여성에게서 도덕적 재화와 자원을 뽑아내는 동시에 여성의 부재와 태만과 배반을 빌미로 불만을 표시하는 적대적 권력 체계가 바로 여성혐오인 것이다. 

여성혐오자에게 여성의 역량과 서비스는 남성들에게 진 빚으로 여겨지며, 이를 제공하지 않는 여성은 응당 갚아야 할 빚을 갚지 않는─약자를 보살피고 배려해야 할 책무를 다하지 않는─사람으로 간주된다. 역사적으로 남성이 누려온 지위를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차지하려 드는 여성은 제 몫이 아닌 권력을 부당하게 탐하는 사람이 된다. 이러한 역할 위반을 들어 여성의 도덕성은 깎아내려진다. 맨은 여기에 여성을 권력에 굶주린 무정하고 지배적인 존재가 아니라, 한없이 베풀고 보살피고 사랑하고 배려하는 존재로 간주하는 심리에서 오는 일종의 박탈감이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논의는 여성혐오의 의미와 작동 방식을 짚어보는 데서 시작된다. 여성혐오는 때로 순진한 개념naive conception으로 판가름되어왔다. 이 개념으로 볼 때 여성혐오란 여성을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는 개인 행위자들의 속성이다. 순진한 개념으로 볼 때 어떤 사안이나 누군가의 태도가 여성혐오인지, 여성혐오자스러운지를 판단하려면 행위자의 태도에 관한 깊이 있고 완결성 있는 심리학적 설명이 필요하다. 이렇게 따지자면 여성혐오의 피해자 입장에서는 특정인이나 특정 사안이 여성혐오적이라는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려워지는 반면, 여성혐오의 혐의를 받는 행위자 입장에서는 혐의를 벗기 위해 굳이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맨은 순진한 개념이 “여성혐오를 불가해할뿐더러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정치적으로 그리 중요하지 않은 현상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사실부터 짚고 넘어간다. “난 여자 안 싫어하는데? 나 우리 엄마도 사랑하고, 여자 좋아해” 따위의 해명으로 여성혐오의 혐의를 벗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여성혐오자도 어머니를 사랑할 순 있다. 그리고 당연히 누이나 딸, 아내, 여자친구, 여비서를 사랑할 수도 있다. 여성혐오자라고 해서 모든 여성을 증오할 필요는 없단 얘기다. 심지어 거의 모든 여성을 증오할 필요도 없다. 그들이 특히 증오하는 대상은 거침없이 말하는 여성이다.”

이렇듯 현실적으로 여성혐오는 여성 전체보다는 오히려 특정 여성을 표적으로 삼는다(지위 유지를 위해 이들을 뺀 나머지 여성─가부장제의 법과 규범에 충실한 여성─은 오히려 칭송받아야 한다). 관심과 섹스와 사랑을 주지 않는 여자들, 집안을 돌보지 않고 남자를 공경하지 않는 여자들, 못마땅할 정도로 잘나가는 여자들, 남자가 독점하던 권력을 차지하려는 여자들…… 끝없이 나열할 수 있는 이 목록은 여성혐오가 매우 다양한 조건하에 여러 형태의 편견이 얽히며 표출되는 사회적 감정임을 말해준다. 결국 여성혐오는 가부장제의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내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여성들이, 남성의 세계에 존재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갖은 형태의 적개심을 맞닥뜨려야 하는 사회체제 전반의 속성인 것이다. 또한 그 메커니즘과 방식은 대단히 우발적이고 다양하다. 『다운 걸』의 분석은 이러한 여성혐오의 논리를 도덕적으로 이해하는 데 있어 다음과 같은 이점을 제공한다.

· 여성혐오를 인식론적 접근이 가능한 분명한 현상으로 이해하게 한다. 이에 비해 순진한 개념은 여성혐오를 자칫 신비화할 위험성이 크다.
· 여성혐오를 정치적인 본질과 동떨어진 다분히 주변적인 현상이 아니라,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당연하고도 중심적인 징후로 이해하게 한다.
· 여성들의 교차적 정체성을 고려하여, 여성혐오가 여성들에게 작동하는 방식을 다방면에서 들여다볼 여지를 제공한다. 적개심을 전달하는 행위자들과 사회적 메커니즘뿐 아니라 그 같은 적개심의 성질과 분량, 강도, 경험, 영향까지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 사회라는 바다를 항해하며 여성이 맞닥뜨리는 적대적 반응을 결정적으로 설명할 심리학적 근거를 찾기보다는 적대적 반응 자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여성혐오를 사회체제적 현상으로 이해하게 한다. 그러한 적개심은 개인 행위자들의 심리 상태에 직접적으로 근거할 필요가 없다. 각종 제도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 또한 여성들에게 유독 험악하거나 ‘냉담하거나’ 적대적일 수 있다.
· ‘여성혐오’라는 용어의 의미를 폭넓게 확장시켜 시민사회의 활동과 보조를 맞추는 한편, 어느 정도는 여성혐오의 사전적 의미와도 더 유망한 방향으로 조화를 이룬다. 겉보기에 이질적인 사례들 사이의 공통적 특징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 사회적 논란을 빚은 여성혐오 사안에 관한 여러 질문에 합당한 답변을 제시한다.
·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의 명확한 대조를 가능케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