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원주의 시대
상태바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다원주의 시대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7.03 08: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예술과 탈역사: 예술의 종말에 관한 단토와의 대화 | 아서 C. 단토·데메트리오 파파로니 지음 | 박준영 옮김 | 미술문화 | 232쪽

 

예술의 종말을 고해 미술계와 철학계 모두에 일대 파란을 몰고 온 철학자, 아서 C. 단토와 이탈리아의 미술 비평가인 데메트리오 파파로니는 개인적·학문적으로 깊은 우애를 나누었고, 1990년대부터 단토 타계 직전까지 장기간에 걸쳐 동시대 예술에 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단토와 파파로니는 미국의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에서 추상과 차용, 그린버그의 모더니즘 이론과 중국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범위의 주제를 논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단토의 사유에서 핵심이 되는, 지금도 여전히 동시대 예술의 의미와 미래에 관한 질문들을 낳는 도발적 개념인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로 재차 되돌아간다.

이 책은 두 사람이 풍성한 주제를 아우르며 주고받은 진지한 대화와 서신을 소개하면서 단토의 사유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함을 입증한다. 때로는 미술가 밈모 팔라디노와 철학자 마리오 페르니올라가 대화에 참여해 토론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서론에 해당하는 파파로니의 에세이는 단순히 보론이라기보다는 1~4장의 대담과 별개로 그 자체로도 탁월한 통찰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에세이로, 단토의 사유를 명료하게 분석해 소개하는 동시에 단토와 파파로니가 서로에게 배운 것은 무엇이고 또 두 사람의 의견이 갈리는 지점은 어디인지를 잘 드러내 보여 준다.

1964년, 단토는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를 보고 깊은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은 단토의 미학에서 일종의 신호탄 역할을 했다. 왜 어떤 인공품은 예술이 되고, 또 어떤 인공품은 예술이 될 수 없는가? 앤디 워홀은 하고많은 상품 중 왜 브릴로 상자를 택했는가? 이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면, 이제 예술을 뭐라 정의내릴 수 있는가? 예술에서 철학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 그리고 통찰의 끝에, 그는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이 테제는 단토의 많은 저서들에서 여러 번 논의된 바 있지만, 그만큼 대중으로부터 여러 번 비틀리고 왜곡되고 오인되어 왔다. 이 책은 그가 거듭 주장한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 개념을 재확인하고 오해를 바로잡으며, 더 나아가 워홀 말고도 다양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을 그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소중한 기록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단토의 예술 철학을 비판적으로 개관하는 서문이고, 나머지는 파파로니와 단토가 주고받은 대화록이다. 특히 주된 부분을 차지하는 대화록은 그 형식의 특성상 딱딱한 논문에서는 포착하기 어려운 단토의 미묘한 생각과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다. ‘예술의 종말’이라는 단토의 유명한 테제는 그토록 잘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해를 낳고 파악하기 힘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토의 예술 철학을 대담의 형식으로, 일상의 언어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사유를 입체적으로 헤아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역사의 종말이지 예술의 죽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로 구축된 세상에 얼마간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탈역사’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남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야기를 단념하지 못하는데 인간의 마음이 늘 사태를 서사적 관점에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조만간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사태를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94)

단토가 이 시대에 던진 두 가지 화두인 ‘탈역사’와 ‘예술의 종말’이 가리키는 방향은 곧 다원주의 시대다. 이런 점에서 단토의 사유가 가닿는 영역은 비단 예술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 책의 담화가 예술과 철학, 미학의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 내용은 우리가 지금 발 디디고 살아가는 이 세상과 시대, 사회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되돌아보고 가늠해 볼 수 있는 비전을 제공한다.

대서사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무엇이라도 가능한 시대, 소서사들의 시대가 열렸다. 거실에서는 TV가 사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유튜브 채널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책에서 예술계의 오늘과 어제와 미래를 조망한다. 예술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의 특수한 구역이 아니라 바로 이 세상을 축소한 모델―어느 영역보다 세계의 흐름에 예민하고 민첩하게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다. 단토가 제기한 두 가지 화두, 탈역사 개념과 다원주의 비전은 우리가 현시대를 진단하고 각자의 지난날과 앞날을 조망하는 데도 유용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