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마주치고 부대끼며 변신하는 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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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마주치고 부대끼며 변신하는 몸들이 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6.18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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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 | 동아대학교 젠더·어펙트연구소, 권명아, 권두현, 강성숙, 이화진 외 8명 지음 | 산지니 | 548쪽

 

이 책에는 몸들의 유니버스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속체’, ‘배열체’, ‘회집체’ 등의 마주침과 부대낌에 주목하여 연구한 결과물 12편이 수록되었다. 복수형일 수밖에 없는 ‘몸들’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문제이며 따라서 그 사회와 역사의 권력 작용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바로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 ‘젠더·어펙트’ 연구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자율적’인 ‘나’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주체화 과정이란 ‘타자-되기’라는 변신의 과정으로 본 들뢰즈의 ‘되기’ 개념을 바탕으로 역사적이고 지리적인 맥락에 따라 끊임없이 마주치고 부대끼며 변신하는 몸들을 탐구하고자 한다.

이 책은 몸들과 마찬가지로 정동 연구 역시 유니버스라는 단일한 세계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몸 둘 바’로부터 다양하게 발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연구들은 독자들의 ‘몸 둘 바’에 닿아 뒤얽히면서 아상블라주를 이룰 것이다. 그 아상블라주에서 흐르는 정동이 독자들을 새로운 ‘되기’의 영역으로 밀어 올리기를 희망한다. 생성형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함께 되기’를 통해 정동 연구는 바로 그 정동과 함께 끊임없이 재생될 것이다.

1부 〈서사의 역사와 아상블라주: 마주침의 어펙트〉를 시작하는 권명아의 「〈오징어 게임〉 어펙트, 마주침의 윤리와 연결성의 에톨로지」는 초국가적 반페미니즘 백래시 흐름의 형성과 문화자본, 그리고 초국가적 플랫폼의 다차원적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사례로서 〈오징어 게임〉을 불러낸다. 권명아의 글은 〈오징어 게임〉 텍스트에 대한 해석뿐만 아니라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고유한 정동 정치에 대한 분석과 연결되어 전 세계인이 마주한 정동적 환경을 둘러보게 한다. 권두현의 「‘실내 우주’의 SF 에톨로지」는 사물-동물-식물이 마주치는 ‘실내’를 ‘우주’라는 연결망으로서 사유하려는 시도다. 『지구 끝의 온실』이라는 김초엽의 과학 소설(science fiction)과 반려종을 다룬 다양한 웹툰을 나란히 두고, 여기에 나타난 다종의 뒤얽힘을 실뜨기(string figures)의 관점으로 해석하면서 실내는 사적 소유의 폐쇄된 공간이 아니라, 공존-공생-공산의 조건을 함축한 잠재적 공유지이자 다중적인 공간성과 시간성이 있는 위상학적 우주 공간으로서 개방됨을 제시한다. 강성숙의 「연결성의 에톨로지로 본 ‘새끼 서 발’」은 고전 서사를 통해 ‘누적’과 ‘연쇄’의 관점에서 연결성을 논구한다. ‘새끼 서 발’ 설화의 주인공이 죽음과 다를 바 없는 퇴행적 상태에서 생명 또는 삶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를 확인하며 생동하는 삶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을 얻게 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 설화에 담긴 긍정적 정동과 에톨로지의 함의를 끌어올린다.

2부 〈귀와 눈과 피: 전체와 부분 너머의 신체적 연결성과 어펙트〉에는 특정한 신체와 감각을 ‘정상화’하면서 ‘위계화’해온 역사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시도한 글들을 모았다. 이화진의 「‘데프(Deaf)의 영화’를 찾아서」는 1960년대 신필름의 농인 소재 영화들을 검토하면서 영화사의 관점과 장애사의 관점이라는 겹눈으로 스크린 안팎에서 부대끼는 몸들의 역사를 쫓는다. 일련의 영화들이 ‘들리는 세계’를 겨냥해 제작된 상업영화였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농인의 삶을 전경화하고 농인들의 수어 대화를 비중 있게 연출하여 ‘들리는 세계’와 ‘들리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할 틈새를 만들었다는 점을 주목한다.

「신체에 각인된 전쟁」에서 소현숙은 한국전쟁기 민간인의 피해와 치유의 과정을 ‘노근리 사건’ 피해자들의 구술을 통해 살핀다. 전쟁 당시 부상으로 한쪽 눈을 상실한 한 여성의 생애는 전쟁과 장애, 젠더가 교차하는 전후의 삶을 보여준다. 김이진의 「해외입양인의 가족 찾기 표상」은 한국의 언론과 대중문화가 해외입양인을 어떻게 표상해왔는지를 추적하면서 재현의 대상인 해외입양인과 재현의 주체로서의 해외입양인을 비교한다. 한국에서 해외입양인의 재현은 해외입양인과 생모의 재회에 중점을 두고 있으면서도 재회한 이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다루지 않는 반면, 해외입양인이 제작한 영화 작품은 가족 찾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자신들의 수용국에서의 생활이나 입양 가족의 모습을 전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유의미한 차이를 짚어낸다.

3부 〈‘싸우다’의 어펙트: 전쟁, 냉전, 스포츠 속에서 부대끼는 여자들〉에서는 ‘싸우다’의 어펙트가 생성되고 변용되는 양상을 분석적 구체적인 차원에서 펼쳐 보인다. 나이토 치즈코의 「‘아이돌’과 전쟁의 정동」은 ‘아이돌’이라는 기호를 통해 현대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성폭력과 결합하여 작동하는 구조를 고찰한다. ‘함께 싸운다’는 ‘우리들의 전쟁 이야기’가 펼쳐지는 메타적인 서사 속에서 내셔널리즘과 젠더 위계를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김은진의 「미디어 속 여성 스포츠의 서사와 재현」은 예능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의 서사와 재현을 젠더적 관점으로 분석한다. 여성들이 서로 간의 관계를 통해 주체로서의 인식, 자부심을 드러냈고, 팀워크와 리더십을 배우며 상호 간의 관계, 즉 여성 연대를 만들어갔다는 분석은 재현 너머 정동적 지평까지를 가리킨다. 「냉전의 감정 동원」에서 첸페이전은 냉전 초기 각종 지식의 구축 과정에서 ‘모성애’가 아동 발달과 가족 화합에 미치는 영향이 전에 없이 높은 주목을 받고 있음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책임’으로 촉발된 일련의 논의가 ‘모성애’ 및 ‘정서적 성숙’과 ‘민주적 질서의 안정’ 간에 연결 관계를 구축하는 ‘과학적 모성애’로 발전하였다는 논의는 ‘싸우다’의 어펙트가 맞서야 할 대항정치의 지점을 정확하게 짚어 보인다.

4부 〈능동인 수동, 수동인 능동: 몸 둘 바(處身)와 어펙트〉는 시대의 불안과 싸우는 여성들의 실천을 다양한 맥락에서 검토한다. 최이숙의 「팬데믹 시대, 그녀들은 왜 새벽에 일어났을까?」는 2022년 1월 ‘김미경과 함께하는 514챌린지’에 참여했던 3040 여성들의 경험에 주목한다. 새벽 기상 프로젝트는 자기계발 담론의 실천적 방법으로서, 이 담론이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적으로 급성장하였다는 것은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 변동을 결국 개인이 감당해야 했음을 보여준다.

박언주의 「가정폭력맥락에서의 빚과 빚짐에 대한 시론」은 빚에 대한 미시경제적 관점을 거시경제적 관점으로 옮겨 파악하고, 금융자본의 경제적 착취가 여성에 대한 정동적 억압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논증한다. 이 글에서 주목을 요하는 대목은 경제적 착취와 강탈을 의미하는 부채 속박으로서의 빚짐과 상호의존과 유대로서의 빚짐을 대비시킴으로써 금융자본주의하에서의 빚의 작동방식과 양면성을 고려한다는 데 있다.

이소영의 「페미니즘은 그 이름이 페미니즘이 아니더라도」는 양귀자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에 담긴 동시대적 시간성을 ‘적대’라는 정동의 추이를 통해 살펴본다. 소설 속 인물 강민주가 적대의 행동을 완결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끝내 젠더폭력의 피해자로 남은 것은 공적 시스템 자체에 남성과 여성 간의 성차에 기반한 비대칭적인 관계가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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