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는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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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는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0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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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4·3 연구 | 이재승·문경수·김동현·김민환·김종곤 외 2명 지음 | 한그루 | 326쪽

 

올해로 제주4·3 75주년을 맞는다. 한국현대사의 비극이자 제주섬의 깊은 상처인 제주4·3은 금기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공적 영역에 자리한다. 4·3특별법을 비롯한 귀중한 성과도 있었고 보상과 재심 등 그 해결 과정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이 책은 묻는다. “공적 해결 과정에서 획득한 유무형의 성과를 사회화하지 못한 채 유리관 속에 가두어 놓고, 4·3 연구가 유리관 밖으로 나와 현실의 문제에 응답하기를 요청하는 연대의 목소리에 무응답한 지 이미 오래”지 않은가 하고.

이 책은 “집단적 학술운동으로는 최초의 시도였던 『제주 4·3 연구』(1999)의 시대 정신과 책무 의식을 계승하면서도, ‘완전한 해결’로 환유되는 현실과의 불화를 꾀하고, 비판적 시각과 목소리를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서 기획됐다. 특히, 정치사, 군사사, 사건사 중심의 기존 정통사학에서 탈피하여 의학, 법학 등 각계의 4·3 연구가 결집한 융복합 연구서로서 4·3에 대한 다면적, 다층적 접근을 통해 개개의 사실과 해석이 상호 연관 속에서 ‘전체사’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사건 이후 50년간 도민들이 겪었던 치욕과 분노, 좌절과 체념, 그리고 가슴속 응어리진 피해의식 등 ‘4·3이 제주도민과 공동체에 끼친 영향’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거나 연구된 바는 없다. 이는 무엇보다도 ‘4·3’ 그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급변했다. 2000년 1월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되고 공적 영역에서 과거청산 프로그램이 본격화되면서 각 분야에서 “‘4·3’ 그 자체에 대한 진상규명”이 활발히 전개되고, “역사 연구”나 “개별적인 사례조사”의 성과도 속속 발표되기 시작했다. “‘4·3’ 그 자체”를 넘어 “4·3 이후”에 대한 연구 환경이 비로소 조성된 셈이다.

한편 이러한 지적은 “‘4·3’ 그 자체”와 “4·3 이후”를 구획지어 각각을 별개의 세계로 배치하도록 빌미를 제공한다. 4·3과 4·3 이후, 4·3 그 자체와 4·3이 끼친 영향, 사실(史實)을 발굴·고증하고 의미를 분석·탐구하는 일이 분담되는 현상은 ‘4·3 이후 50년’ 이후 20여 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 과정에서 “‘4·3’ 그 자체”의 범주를 묻는 질문은 생략됐고, “‘4·3’ 그 자체”로 합의된 시공간 속에 “4·3이 끼친 영향”은 고려되지 못해 왔다.

“4·3 이후”에 대한 고찰이 병행되지 않는 “‘4·3’ 그 자체”에 관한 연구는 가능한 것일까? 마찬가지로 “4·3 이후”를 탐구하는 작업에서 “‘4·3’ 그 자체”로 규정된 지식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 역시 부족했다. 어쩌면 이 두 영역은 상보적이며 선후 관계를 규정짓기 어려운, 맞거울(opposite mirrors) 같은 것은 아닐까?

“4·3이 제주도민과 공동체에 끼친 영향”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은 이유에 대해 혹자는 사건 자체가 8년 가까이 지속됐고 또 ‘진압’ 이후 70년 이상 경과했다는 점을 꼽는다. 사건의 여파와 후유증이 두세 세대를 거치면서 이미 우리의 생활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버린 까닭에 가려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별하기 어려움은 그때그때의 변화들에 둔감했음을 자인하는 것으로, 경계를 정당화하는 감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4·3특별법 체제하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적 해결 과정에서 획득한 유무형의 성과를 사회화하지 못한 채 유리관 속에 가두어 놓고, 모든 해결의 단위를 ‘희생자’로 한정해 온 결과, 혐오와 배제의 감정 체계가 4·3의 상흔 위에서 새로운 싹을 틔우게 됐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신냉전적 질서 속에 빚어지는 갈등과 충돌의 한복판에서 주민들의 자기결정권이 위협받을 때마다 4·3의 경험과 기억이 소환되지만, 4·3 연구가 유리관 밖으로 나와 현실의 문제에 응답하기를 요청하는 연대의 목소리에 무응답한 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작은 실천으로서, “‘4·3’ 그 자체”와 “4·3 이후” 사이의 벽을 허물고, 경험과 기억, 유산을 현대세계의 다종다양한 사회 문제와 접합시키기 위한 질문을 던질 때다. 이를 위해 4·3을 단순히 밝혀지거나 정리, 청산되는 피동적인 대상이 아닌,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창이자 경험례로서, 또한 현대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미래의 과제와 연결고리를 만들어 긴장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로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4·3’ 그 자체”가 그러하듯 “4·3이 끼친 영향”에도 탈/식민의 과제와 탈/냉전의 과제가 착종되어 나타난다.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장기적 냉전 현상에 대한 입체적인 시야가 4·3 연구에 필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4·3특별법 체제에서 절충과 합의를 통해 “‘4·3’ 그 자체”가 규명되어 온 과정과 성과, 의미에 대한 분석 또한 중요하다. 2000년 이후 제도권 영역에서 ‘희생자/유족’이나 ‘유적지’, ‘평화’, ‘화해’와 같은 용어가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의미를 획득하고, 본래의 개념이나 기능과 동떨어진 의미 지형을 구축해 가는 상황을 동시적으로 분석하는 일 역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작업이다. 이 책의 필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대한민국 재외공관’이나 ‘제주4·3공원’, ‘트라우마센터’와 같은 공간은 과거청산의 이념이 전파되고 특정한 ‘모델’이 구축, 재생산되는 곳일 뿐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의미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진압’ 이후의 인구 구조와 현상, 가족/친족의 변화에 관한 최신 연구가 발표된 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후체험 세대로의 기억 계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새롭게 의미 부여됐던 ‘개방 세대’에 관한 연구 역시 2000년대 초반에 진행된 것이고, 그 이후의 세대는 어떻게 명명해야 할지도 공백으로 남아 있다. 묵음 처리된 목소리, 결락된 질문들을 찾고, 현실 참여를 요청하는 호소에 4·3 연구의 응답이 더 이상 지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로 표현되는 단선적 발전 도식에서 의식적으로 이탈하려는 질문들이 더욱 필요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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