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속에 감춰둔 천재의 메시지, 음악 속에서 자유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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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에 감춰둔 천재의 메시지, 음악 속에서 자유를 얻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4.03 09: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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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스타코비치: 시대와 음악 사이에서 | 엘리자베스 윌슨 지음 | 장호연 옮김 | 돌베개 | 854쪽

 

쇼스타코비치는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를 조금 더 아는 음악 애호가는 그가 스탈린 치하에서 받았던 곤욕을 떠올릴 것이다. 그의 음악은 지금도 살아 있을 때처럼 널리 사랑받고 있고, 그의 비극적이면서도 기구한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연된다. 첼리스트이기도 한 이 책의 저자 엘리자베스 윌슨은 이 책을 위해 쇼스타코비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인물의 증언을 모았다. 그들의 기억과 평가, 증언 속에서 한 예술가의 인생이 모자이크처럼 펼쳐진다.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곡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음악까지 암보로 연주하는 천재였고, 작품 때문에 자신과 가족이 폭압적인 체제의 희생양이 될까 두려워하던 아웃사이더였다. 상대방을 도와주고도 그걸 알리려 하지 않는 사려 깊은 친구였으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도 스키를 타던 다정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러한 진실은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증언과 함께 무입체적으로 되살아난다.

쇼스타코비치는 음악에 관한 한 신동이자 천재였다. 그는 열세 살에 처음 작곡을 한 것으로 보이고, 열아홉 살에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했다. 피아노에도 재능을 보였는데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습도 제대로 하지 않고 연주 무대에 올라서 핀잔을 받는다. 20대 초중반에 작곡한 여러 교향곡과 고골을 각색한 오페라인 〈코〉로 이미 명성을 쌓은 쇼스타코비치는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을 발표하며 대중적으로도 엄청난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훗날 가장 높이 평가받는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과 교향곡 4번은 정권에 의해 형식주의라는 혹독한 비판을 받고 요주의 인물이 된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복무하지 않은 죄를 물은 것이다.

스탈린 정권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쇼스타코비치를 핍박하는데, 그의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제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국제적인 유명인사가 된 그를 체제 선전을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정권의 이중적인 행태 때문에 삶의 고비마다 위기를 겪기도 하고, 이득을 보기도 한다. 2차 대전 시기에는 선전 도구로 활용된 덕분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본인과 가족의 안정을 보장받았지만, 형식주의자라는 딱지가 붙어 레닌그라드 음악원에서 자신이 가르친 학생들에게 비난당하는 고초를 겪는다.

스탈린이 사라진 이후에도 처지는 비슷했다. 흐루쇼프 정권의 강압에 못 이겨 그는 공산당에 입당하는데, 이 때문에 사회적인 지위는 확보했지만 본인이 원치 않은 일들에 동원되어야 했고, 때로는 체제의 앞잡이로서 동료를 비난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려야 했다. 태생적으로 정치 활동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시대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의 삶을 염두에 두고 그의 음악을 들으면 이런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만약 그가 시대의 희생양이 되지 않았다면,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떤 음악을 썼을까? 이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이 질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당의 지침’이 없었다면 내가 달라졌을까 물었소? 당연히 달라졌을 거요. 내가 교향곡 4번을 작곡했을 때 추구하던 노선은 내 작품에서 더 선명하고 날카롭게 부각되었을 거요. 나는 화려함을 더 많이 드러내고 더 많이 냉소적으로 굴었을 거요. 내 생각을 감추려하기보다 공개적으로 드러냈을 거요. 그러니까 더 순수한 음악을 썼을 거요. … 그러나 내가 쓴 음악이 부끄럽지는 않소. 나의 모든 곡을 다 사랑하오. 절뚝거리는 아이라도 부모에게는 늘 사랑스러운 법이라지 않소.”_ 708쪽, “8. 마지막 날들” 중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 인생은 《프라우다》에 게재된 사설 “음악이 아니라 혼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그 사설 이후로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성향을 감추고 당이 원하는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음악 속에 예술가로서의 창조성을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편으로는 사생활과 관련된 모티프들도 음악 속에 은밀하게 녹여내는데, 저자 엘리자베스 윌슨은 쇼스타코비치 음악 속에 감춰진 비밀들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예컨대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5번을 우스트볼스카야의 1949년작 클라리넷 3중주와 연결해 분석하는 대목은 흥미진진하다. 우스트볼스카야는 쇼스타코비치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사적으로 매우 친밀한 관계였다고 전해진다. 우스트볼스카야에게 했다는 발언, “나는 재능이지만 당신은 경이요”에서 쇼스타코비치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엿볼 수 있다. 윌슨은 곡의 구성과 주제를 실제 일어났던 일과 교차 분석하면서 쇼스타코비치가 음악 속에 남긴 메시지를 밝혀내려 한다. 

십대 중반부터 작곡을 시작한 그는 사실상 임종을 앞둔 순간까지 작업을 계속했다. 그건 생계를 위한 일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창작열을 불태우는 방법이기도 했다. 때로 작곡은 부조리한 세상에 맞서는 자기만의 싸움이었으며, 친구에게 보내는 다정한 선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음악이 초연되는 현장에서는 항상 안절부절못했으며,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반응이 좋지 않으면 좌절하고, 좋은 반응을 얻으면 감격하는 인간적인 모습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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