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되었지만 통합되지 않은 언어,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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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되었지만 통합되지 않은 언어, 무엇 때문일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4.03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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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와 독일의 분열 | 패트릭 스티븐슨 지음 | 신명선·양수경·강남욱·강보선 역 외 2명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484쪽

 

이 책은 1945년부터 2000년까지 독일의 분열부터 통일 후 10년까지, 사회언어학적으로 독일의 언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통찰하고 있다. 

1990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독일이 곧 사회적 통합을 이루고 언어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동과 서의 서로 다른 언어 사용 패턴은 통일 이후 전면에 드러났다. 바로 ‘동독 출신’과 ‘서독 출신’의 단순 구분이 1990년대를 거치면서 동독다움(Ossizitat)과 서독다움(Wessizitat)을 평가하는 복잡한 사회적 범주로 발전한 것이다.

동독과 서독은 일인칭 대명사 사용법도 다르고, 슈퍼마켓이나 노동자라는 기본 단어도 달랐다. 통일 이후 동과 서는 하나가 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문제가 남아 있었고, 특이 언어의 문제는 공적인 부분뿐 아니라 일상의 의사소통에서도 혼선을 빚었다. 서독 출신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는 일부 용어의 사용을 자제하는 동독의 회사도 있었고, 도이체 방크에서는 동독과 서독의 새로운 파트너 간의 의사소통을 지원하기 위해 200개 단어가 실린 비즈니스 용어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서독 출신이 동독 출신보다 길게 말해서 유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동독의 방식이 의사소통에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서독 학생의 증언도 있었다. 독일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에게 독일어는 하나밖에 남지 않은 유일한 연결체로 인식되었지만 실상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했다.

독일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4개의 점령 구역에서 다시 두 국경 국가로 나뉘는 과정에 기여했고, 동과 서의 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에 기여했으며, 통일된 후에도 첫 10년 동안은 동과 서라는 두 개의 언어 공동체를 계속해서 갈라놓는 데 기여했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언어가 독일에서 사회적 분열을 구축하고 도전하며 해체하는 데 항상 중요한 역할을 해 왔고, 독일인의 언어 경험이 정치에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그동안 동독과 서독 언어 공동체 사이의 언어 및 의사소통 차이를 주제로 하는 연구는 대부분 1990년 이전의 정치적 분열 기간이나 전환기(Wende, 1989~1990년) 또는 통일 국가로 집중되었다. 더 넓은 역사적 맥락에서 동시대의 상황을 파악하고 이 자명한 불연속성뿐 아니라 중요한 연속성을 끌어내는 사회언어학적 불일치에 관한 연구는 부족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에서 ‘참여적 외부자’의 관점에서 비판적이지만 균형 잡힌 시각으로 독일어 텍스트와 담화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현대 독일의 사회언어학적 차이와 의사소통의 불일치 현상은 통일 이전 40년간의 분단과 더 길게는 지난 200년간 국가 정체성 구축과 경쟁 과정에서 독일어의 개념이 지녔던 역할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다양한 연구의 방향을 통합해 설명한다.

이 책은 언어 공동체가 분열되었거나 분열되어 있는 나라와 지역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같은 분열된 국가뿐만 아니라 정치 투쟁과 언어 실행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발칸 국가들, 카탈루냐, 퀘백, 예루살렘과 같은 다양한 다언어적 맥락이 이에 해당한다. 동과 서의 공식적인 메시지뿐만 아니라 공개 발언, 연설, 토론 등의 공적 담화, 개인적인 상호작용까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독일어가 역사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독일의 분열과 통일을 이루어 냈는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결론에서 ‘동독다움/서독다움’은 사회적 출신, 가족사, 개인적 경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실상 너무나 불명확하다고 주장한다. 동독의 규범과 관행은 부패하고 타락했다고 여기거나 동독인들이 서독의 행동 양식에 적응하면 문제가 가장 잘 해결될 것이라는 유의 상호문화적인 관점은 중립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문화적 차이를 평가하는 잣대로 작용한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사회언어학자의 역할은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차이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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