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18세기 세계는 헤겔을 만들었고, 헤겔은 체계를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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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18세기 세계는 헤겔을 만들었고, 헤겔은 체계를 완성한다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3.04.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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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겔의 세계: 헤겔 철학의 역사적 뿌리를 찾아서 | 위르겐 카우베 지음 | 김태희·김태한 옮김 | 필로소픽 | 736쪽

 

2020년 헤겔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며 독일에서 출간된 이 책은 “두더지”처럼 세계에 천착하여 마침내 “열기구”처럼 세계를 조망하는 관념론 철학의 “체계”를 완성하는 과정을 담은 정치사·경제사·문화사의 색채가 짙게 밴 철학적 전기이다. 저자는 헤겔의 사상을 철학의 전문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소한 관점으로 보는 데에서 탈피하여, 19세기 초 독일이라는 역사 공간 속에서의 헤겔의 위치를 포착한다. 당대 독일의 정치·경제·교육·산업·문화·예술·과학·언론 등 여러 분야와의 연결 속에서 헤겔의 사상을 살펴봄으로써, 그의 삶과 철학을 넓은 맥락 속에서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175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 역사학자 라인하르트 코젤렉이 규정한 안장 시대(Sattelzeit)는 우뚝 솟은 두 시대 사이의 침체기를 떠올리게 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낡은 사회로부터 새로운 사회로 넘어가는 눈부신 도약의 시대이자 혁명의 시대였다. 그 시대의 한복판에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당대의 수많은 독일 사상가와 마찬가지로 정치·산업·교육·과학혁명의 시대를 추동하는 것이 바로 사상이라고 보았으며, 자신의 과제를 최후의 혁명, 즉 사상혁명을 완수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책의 표지 한가운데에 놓인 열기구는 헤겔이 살던 시대의 능력의식을 보여준다. 그가 살던 시대는 역사, 진보, 자유, 국가, 시민 등의 개념이 오늘날의 의미를 얻고 계급, 공산주의 등 새로운 개념이 태동하던 시기이다. ‘세계’도 그렇다. 이 개념은 가열된 공기가 양력을 만들어낸다는 ‘거의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생각’을 통해, 처음으로 “더 이상 천상의 관찰자만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라 인간도 도달할 수 있는 현실을 가리키는 의미심장한 개념”, 혹은 인간도 도달할 수 있는 높이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현실을 가리키는 개념이 된다. 

그러나 헤겔이 말하듯이, 이 세계는 우리가 사유를 통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세계 안에 들어와서 사유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깨닫는 것은 헤겔의 관념론은 어떤 초세간적이고 초시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세계와 밀착하여 시대와 대결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헤겔의 시대만큼이나 격변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우리에게, 세계와 밀착하여 시대와 대결하는 헤겔의 사상적 고투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는 19세기 초 독일 지성계와 정치 환경 전반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달하며 헤겔을 둘러싼 모든 것을 소개한다. 프랑스 혁명이나 7년 전쟁처럼 헤겔이 경험한 역사적 사건은 물론, 그가 살았던 도시와 몸담았던 대학, 가족인 아내 마리 폰 투허, 누이 크리스티아네에 대해서도 빠짐없이 이야기한다. 그뿐만 아니라 이 책에는 그와 깊은 교우 관계를 나누었던 셸링, 슐라이어마허, 횔덜린, 슐레겔, 훔볼트, 랑케, 괴테 등 쟁쟁한 지성사의 인물들도 마치 카메오처럼 등장하며 우리를 헤겔이 살던 시대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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