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전 서사의 플롯 분석을 통해 시대의 역동성을 탐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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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 서사의 플롯 분석을 통해 시대의 역동성을 탐구하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3.14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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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플롯의 발견: 한국 고전 서사의 재생산과 전환 | 김경미 지음 | 이화여자대학교출판문화원 | 368쪽

 

플롯은 서사의 기획과 의도를 구현하는 장치로, 서사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작가는 인물을 등장시켜 어떤 공간을 배경으로 어떤 사건을 겪게 하고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하나하나 선택하는데, 이 선택의 과정이 플롯을 짜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작가의 욕망, 가치, 이데올로기가 개입하게 된다.

또한 플롯은 사회적 규범을 서사 형식으로 구현한 것이지만, 서사는 동일한 플롯을 지속적으로 반복하지는 않는다. 서사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플롯을 재생산하면서 전환을 시도하고, 전환을 시도하면서 끈질기게 기존의 플롯을 재생산한다. 플롯의 재생산과 전환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고전 서사는 권선징악 플롯을 재생산하며 고민 없이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하는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영웅 일대기 플롯이 끈질기게 재생산되어 성장치, 국가/가족 이데올로기 장치로 작동하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기존의 플롯을 흔드는 작품들이 나왔다. 따라서 그 플롯의 재생산과 전환이 보여주는 역동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이는 고전 서사가 생산된 시대의 역동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플롯 분석을 통해 한국 고전 서사의 역동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플롯을 이데올로기 장치로 보면서, 먼저 성적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또 전환되는가를 분석하고, 그다음으로 가족, 국가, 인간 중심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재생산되고 도전받는가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 저자는 서구의 작품을 근거로 한 서구의 서사 이론이 주요 분석틀이 되고 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하며, 우리 서사를 바탕으로 한 서사론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이 책은 한국 고전 서사의 플롯을 성장치, 국가 이데롤로기 장치 개념으로 분석해서 그 특징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점에서 이론적인 시도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플롯의 변화는 통념, 이데올로기의 변화를 의미한다. 한 시대의 서사 플롯을 예의주시하며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하지 않았는가를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서사는 시대를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만은 아니다. 거꾸로 서사 혹은 서사의 플롯이 시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설 속 사랑의 서사가 현실의 사랑의 풍속을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플롯을 바꾸면 현실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시대를 거슬러 고전 서사의 플롯과 그 심저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분석하면서 다시 읽기를 시도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플롯의 개념과 이론에 대해 정리하는 서론 부분과 1부 ‘젠더화된 플롯의 재생산과 전환’, 2부 ‘가족, 국가, 인간 중심 플롯의 재생산과 전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전기소설(傳奇小說)이 보여주는 낭만적 사랑의 플롯이 어떻게 가부장적 성장치로 작동했고 또 전환해갔는가를 밝히고자 했다. 먼저 1장에서는 초기 서사에 해당하는 「김현감호」의 가부장적 서사를, 2장에서는 전기소설을 대표하는 「최치원」, 「이생규장전」, 「주생전」의 젠더화된 플롯을 분석한다.

이어서 3장에서는 「운영전」이 여성 서술자를 통해 젠더화된 전기소설의 플롯을 어떻게 전환하면서 봉합하는지 살펴보고, 4장에서는 전기소설이 주로 보여주는 사랑의 서사의 양식화에 대해 검토한 뒤, 5장에서는 「심생전」이 어떻게 일상적 사랑의 플롯을 재현하면서 동시에 성적 위계를 재생산하는지를 분석한다. 6장에서는 재능을 가진 여성과 여성 간의 지기 관계를 통해 여성에게 부과된 규범을 위반하는 「매죽당 이씨전」과 「한사인처」를 분석하고, 7장에서는 동성 결혼이라는 새로운 설정을 통해 젠더 체계뿐만 아니라 섹슈얼리티 체계를 흔들면서 가부장적 성체계에 도전한 「방한림전」을 살펴본다.

2부에서는 가족, 국가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새로운 플롯을 창출했는가를 살펴보았다. 8장에서는 이산과 귀환을 다룬 「최척전」, 전쟁을 통한 포로, 이산, 이주의 경험을 서사화한 「김영철전」의 플롯 분석을 통해 국가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지 않는 가족 서사를 분석한다.

이어서 9장에서는 명 유민을 다룬 「강세작전」, 10장에서는 전쟁고아를 다룬 「숙향전」, 11장에서는 가부장적 가족 관계의 타자인 서얼 문제를 다룬 「홍길동전」의 플롯을 분석함으로써 가족 이데올로기와 국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되고 전환되는지를 살펴본다. 그리고 마지막 12장에서는 동물전 분석을 통해 조선 후기에 창작된 동물전들이 인간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면서도 동물 자체를 발견하고 서사화한 점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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