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 예술의 ‘의미’를 찾아서…종교적 틀 안에서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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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예술의 ‘의미’를 찾아서…종교적 틀 안에서의 예술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2.03.06 2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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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 예술 이야기: 그들은 왜 깊은 동굴 속에 그림을 그렸을까 | 장 클로트 지음 | 류재화 옮김 | 열화당 | 304쪽

 

라스코, 쇼베, 알타미라….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보았을 이 동굴들에는 수만 년 전에 그려졌다고는 믿기 힘든 대단한 장관의 벽화들이 남아 있다. 떼 지어 달리는 황소나 사자에서부터 일부러 찍어 놓은 사람의 손자국,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별할 수 없는 복합적인 형상까지. 선사인들이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행한 결과물들을 보고 있자면, ‘왜 찾아가기도 힘든 장소로 들어가 그림을 그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선사학자 장 클로트(Jean Clottes)의 이 책은 이같이 ‘왜’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샤머니즘에서 그 탄생 원리를 찾아간다. 이론적 설명뿐 아니라 연구자들의 모사화부터 동굴 벽화 및 집기 예술, 샤먼 의식을 촬영한 사진 등 도판 30점이 답사 경험들과 함께 총체적으로 수록되어, 입문서로도 학술서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줄 중요한 저술이다.

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서는 선사시대 연구가 지금까지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다른 학문에서 취한 입장과 선사학 고유의 연구방법론은 무엇인지 하나씩 짚어 본다. 2장은 유럽 이외의 다른 대륙, 즉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인도, 중국 등)의 유적들을 찾아가며 다양한 후손 민족들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들을 다룬다. 이 책의 중심이 되는 3장에서는 문화에 따라 변주되어 나타나는 예술 사례들이 유럽의 동굴과 장소, 자연, 동물, 신화와 같은 구체적 요소를 중심으로 소개된다. 여기에는 저자가 제기한 문제들이 적용되는데, ‘왜’ ‘누가’ 그렸을까, 왜 동굴 바깥이 아닌 ‘안’에 그렸을까, 왜 사람이 아닌 동물의 형상이 대부분일까 하는 질문들이 그것이다.

1장 「동굴 예술에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는 동굴 예술에 접근하는 여러 연구자들의 관점과 그 개념들을 다루는데, 이를 위해 먼저 예술을 메시지로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전제한다. 저자에 따르면, 예술을 통해 경고나 금기를 내리거나, 숭고한 사실 혹은 신화를 영원히 새기며, 존재를 표명하고 확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로써 예술은 신이나 정령 또는 정령의 힘을 얻고자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끈이 되어 주었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신이나 정령이 바위나 동굴 ‘내벽’ 너머에 살고 있다고 여겼으리라 짐작되는데, 생생한 현실 세계와 초자연적 세계 사이에 이 동굴 내벽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징적 의미에 관한 연구는 예술을 탄생시킨 자들이 사라지고 없다는 점, 즉 경험적 지식이 부재한다는 점에서 비관적인 입장에 놓여 있었다. 이에 반해 경험론자들은 객관성을 주장하며 모든 가설로부터 자유롭다고 확신했는데, 여기서 요구되는 객관성 역시 결국 동시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수용하고 이론처럼 구현하는 가설일 뿐이다. 그렇다 보니 결국 연구는 더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 

한편 1960년대부터 시도된 구조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각각의 전통 부족들은 환원할 수 없는 독창성을 가진다. 따라서 이 시각에서는 그들 간의 비교를 모두 거부하고 동굴 자체에 집중해 이미지의 구조를 연구한다. 막스 라파엘, 앙드레 르루아 구랑과 같은 선사학자들에 따르면 구석기인들은 샤머니즘 유형의 종교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의 예술은 이러한 종교적 틀 안에서 창조되었다. 수렵 경제와 깊은 연관을 맺는 샤머니즘 사회에서 샤먼은 현실과 영혼 세계의 중재자로, 실존하는 모든 존재를 돕는다. 내세에서 샤먼은 동물 형상의, 즉 현실에서 사냥당했던 영혼을 만나 협상하고, 미래를 예언하거나, 사냥으로 비롯된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깨진 조화를 다시 세운다. 이때 샤먼이 경험하는 환영은 동굴 벽면에 표현된 이미지와 관련된다. 최면과 같은 트랜스 상태에서는 몸이 부양하는 느낌이 들거나 눈을 감으면 기하학적 형상들이 보일 텐데, 이미지는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더불어 클로트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나 호모 파베르보다는, ‘영적 인간’을 의미하는 호모 스피리투알리스라 부르길 바라면서 그 정신성에 주목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보고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이 강렬한 정신 작용으로 내적 세계에 이미지를 투사하고, 이를 다시 외적 세계에 투사한 것이 예술이라는 것이다. 동물들을 수렵하고, 어떤 의미에서는 ‘살해’해야만 생존이 가능했던 구석기인들에게는 일종의 속죄 의식이 있었을 테고, 종교 의례와도 같은 행위로써 예술이 이루어졌으리라는 짐작이다. 저자는 이같은 여러 가설과 그에 따른 비판과 논쟁 들을 짚어보고, 이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발견과 연구, 경험들이 계속되었음을 밝힌다. 

구체적인 사례들이 2장 「여러 대륙에서 다양한 동굴을 만나다」에서 소개된다. 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아프리카, 아시아를 답사한 기록들과 전통을 잇고 있는 후손 민족들과의 만남은, 객관성을 주장하는 일보다 훨씬 ‘과학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체득한 생생한 경험과 증언들은, 몇 만 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선사인들이 바로 곁에 와 있음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클로트는 이를 바탕으로 인간 집단이 전념했던 보편적 주제들이 예술로 표현되는 양상을 되짚어 보는데,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 왜 유독 동물의 형상을 그렸을까? 틈이나 요철, 기이한 주름들은 무슨 역할을 한 것일까? 무수히 찍힌 손자국들은 우연일까, 의도된 흔적일까? 나란히, 또는 겹쳐져 그려진 그림들은 서로 연관이 있을까? 과연 여성은 창작의 주체가 아니었을까? 

3장 「세계의 지각과 예술의 기능」은 동굴의 암흑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듯 실마리를 풀어 가는 장으로, 구석기시대의 유럽 동굴과 바위 등에 표현된 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어떤 개념적 틀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지 세분화하여 제시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전반은,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지식과 정보를 일정한 차원에서만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 아래, 쇼베 동굴의 후실이나 라스코 동굴의 우물 등 잘 알려진 벽화들의 해석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쇼베 동굴의 후실에서 발견된 검은 그림에는 그 전에 동굴 곰들이 낸 듯한 흠집들과 함께 여러 시대가 뒤섞인 손대기 흔적(trace)이 보인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인 반복 행위로, 손을 통해 암면과 직접 접촉하고자 하는 명백한 의지를 증명한다. 라스코 우물에 있는 새 머리 모양을 하고 발기한 채 뻗은 남자 벽화의 경우, 그간 남자는 사냥하다 죽은 불운한 사냥꾼으로 해석되었으나 우물이 동굴에서 가장 진입하기 어려운 곳에 있고, 탄소가스의 비율이 높다는 장소성과 연결 지어 그림의 단서를 잡았다.

이 과정에서 나타난 모든 지표들은 샤먼 형태의 종교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만여 년의 시간 동안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기본 개념을 갖춘 종교가 있었다는 게 저자의 입장으로, 최근 시대까지 지구 북반구 대부분의 지역에 샤머니즘 문화가 펴져 있었다는 사실 또한 확고히 한다. 이로써 샤머니즘은 인류에게 알려진 가장 오랜 예술적 전통의 하나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장 클로트는 이 또한 하나의 가설이라는 열린 태도로 결론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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