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땅에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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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땅에 흔적을 남긴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2.02.27 2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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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地오그래피: 역사를 만든 땅의 오디세이 | 남영우 지음 | 푸른길 | 352쪽

 

지리는 역사다. 인류 진화를 좌우한 지리적 요인에서부터 인류가 하천 연안에 도시를 세워 문명을 만들었다는 사실, 산 너머와 바다 건너에 있는 것을 탈취하기 위해 사람들이 벌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지리적 요인은 우리의 세계를 만든 사건들의 성격을 결정지었다. 따라서 역사를 만든 것은 땅이었던 셈이다.

삼라만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이 있듯이 땅도 잘생긴 땅과 못생긴 땅으로 구별된다. 인문지리학의 권위자인 저자 남영우는 걸출한 문명과 문화는 중위도의 잘생긴 땅, 해안선의 만입 상태가 풍부하고 평지와 산악의 굴곡이 다양한 땅에서 꽃피웠음을 밝혀 오며, 지금까지 인류가 아무 땅에서나 살지 않았음을 지적한 바 있다. 그리고 인류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온 지리는 역사의 현장에서도 언제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 책은 땅 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역사적 사건을 지형별, 대륙별로 정리하여 지리와 역사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낸 책이다. 저자는 사람들에게 지리가 적지 않은 부분에서 오해되고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 지리를 공부할 때 산맥의 이름, 나라의 수도 등을 외우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만, 이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땅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일강과 인더스강이 어느 방향으로 흐르는지,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교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면 그 속성을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땅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에 초점을 두어 구성된 책이다. 땅의 종류인 산과 하천, 언덕과 골짜기, 바다와 사막 등의 장으로 나누어 그것이 인류에 끼친 영향을 대표적인 역사적 사건과 연계해 설명하지만, 그 속성을 지닌 지형이 다른 역사의 순간에서는 어떻게 작용하였을지도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지리적 요인은 역사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하기도 한다. 오늘날과 달리 과거 유럽의 최빈국에 속했던 스위스는 산악국가로 목축업 외에는 큰 수입원이 없었던 탓에, 스위스 용병을 주요 외화 수입원으로 삼았다. 험준한 알프스산맥을 오르내리며 강한 심폐 기능과 지구력으로 단련된 스위스 용병은 최강의 전력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바티칸 교황청 경비에도 투입되었는데, 로마 제국 군대가 교황청을 쳐들어왔을 당시 다른 나라의 용병은 모두 도주했지만, 스위스 용병만은 끝까지 교황을 지켜 내 현재까지도 교황을 호위하는 근위대는 모두 스위스 용병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장 용맹스러운 군대가 산악지대에서 나옴은 네팔의 히말라야산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혹독한 선발 과정을 거치는 네팔의 구르카 용병 역시 영국 왕실 근위부대에서 근무함은 물론, 오늘날까지도 영국이 자랑하는 특수부대이다.

한편, 호수 또는 바다가 다시 쓴 역사도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내해인 카스피해는 그 크기나 염분으로 보면 바다임이 분명하지만, 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호수로 볼 수도 있다. 카스피해에는 엄청난 양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매장되어 있고, 주변국은 카스피해가 호수냐, 바다냐에 따라 국제법이 다르게 적용되어 그 이해관계가 달라지기 때문에 카스피해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이렇듯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 온 지형은 어떠한 역사를 추진한 동기로 작용하거나, 제지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책이 말하는 지리가 만들어 온 역사, 문자로 다 기록되지 못한 땅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세계를 이해하고 정세를 파악하는 힘이 부쩍 길러질 것이다.

이 책의 주요 개념으로 언급되는 ‘지절률’이란 지형적 다양함과 복잡함의 정도를 의미한다. 지절이 중요한 이유는 지절률이 높은 땅에서 서로 다른 문명 및 문화 간 교류가 활발해져 한 차원 높은 문명이 창출되기 때문이다. 잘생긴 땅의 기준이 되는 지절은 대륙적 스케일로 본 경우이지만, 국지적 스케일로 볼 경우에도 지절률이 높은 지역에서 문화가 형성됨은 물론이다. 따라서 대륙별로 지리와 역사의 인과를 살펴봄은 곧 어느 지역에서 문화가 형성되는지를 함께 가늠하는 것과 같다.

더불어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조선의 땅을 훔친 일본의 비밀군사지도」로도 만나 보았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참모본부 간첩대를 조직하여 우리나라에 여행객·의사·상업시찰단으로 위장해 들어와 한반도 곳곳을 비밀리에 측량했다. 한반도 침략 준비를 위해 몰래 측량 침략을 자행한 것이다. 그리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부터는 정탐이나 군사적 목적 외에도 통치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지도가 간행되었다. 이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일본의 비밀군사지도가 우리나라 역사에 끼친 아이러니한 영향도 함께 살펴보았다.

제1부에서는 산과 하천, 언덕과 골짜기, 바다와 사막 등 땅을 구성하는 지형이 각각의 역사적 사건에서 어떻게 관여하여 그 흐름을 바꾸었는지를 파고들었으며, 제2부에서는 유럽, 아메리카, 서남아시아, 동아시아 등 대륙별로 지리적 축복을 얻은 땅부터 지리의 비극을 맞이한 땅까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당시의 현장을 생생히 재현해 낸 90여 개의 컬러 지도를 함께 실어 지리책다운 면모를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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