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동아시아, 다시 올림픽의 의미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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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동아시아, 다시 올림픽의 의미를 묻다
  •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인류학
  • 승인 2021.08.1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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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제32회 도쿄 2020 올림픽이 막을 내린 지 1주일이 지났다. 코로나19 사태의 진정을 기대하며 개최가 1년 연기되어 개최된 이번 올림픽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기대에 못 미쳤다는 것이었다. 일본 내 코로나19 감염자는 개최 전후로 최대 폭으로 증가했고, 계속되는 방침의 변화와 올림픽 관계자의 연이은 추문으로 인한 문제들이 터지면서 많은 일본인들이 올림픽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무관중으로 진행된 개막식의 모습이었다. 텅 빈 스태디움에 관계자와 선수들만이 모여 개막식이 진행되는 동안, 밖에서는 올림픽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진행한 시위에서 외치는 반대 구호가 스태디움 안까지 들려오는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이런 모순적인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도 가능할 것이지만, 한편으로 이 풍경이야말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근대화와 함께 등장한 올림픽으로 대표되는 '메가 이벤트'가 내포한 모순을 응축하여 보여주는 흥미로운 것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동아시아적 맥락에서 올림픽은 일종의 '문명화' 혹은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선언하는 효과가 있었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은 패전에서 벗어나 다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일본의 위상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에 힘입어 한국의 존재감을 강화하는 것이었으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세계의 열강으로서 도약한 중국의 위치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마다, 개최국 내외에서 올림픽의 효과에 대한 회의 및 국가 주도의 거대 이벤트가 내포한 다양한 문제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런 비판들은 모두 지극히 유효하고 필요한 것이지만, 각각의 개최국에서 '최초의' 올림픽들은 여러 의미에서 개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어떤 계기로서 작용하였다는 점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2020 도쿄 올림픽은 일본에, 동아시아에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세계의 불확실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지금, 올림픽 개최를 둘러싼 근본적인 사태의 난맥상과는 별도로 2020 도쿄 올림픽은 21세기에 다시 동아시아에 '귀환한' 올림픽이 어떤 의미여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어려운 숙제를 우리에게 환기시켰다는 점에서 그 완성도나 내용 이상의 의미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관점 또한 도쿄 2020 올림픽에서 20세기적 가치, 즉 국력의 과시나 일사불란함을 읽어내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새롭게 부각된 올림픽의 의미는 바로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발휘하는 장이라는 점에서 가장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올림픽 개최 중에도 계속 코로나19 감염상황을 이유로 중지를 요구하는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지만, 올림픽에서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국적을 넘어서 많은 감동을 남겼다. 

환언하자면 올림픽이라는 메가 이벤트가 지닌 많은 문제점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지닌 축제라는 성격 - 특히 코로나 19사태라는 암울한 상황 속에서 선수들의 노력과 그에 열광하는 대중 - 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출전 선수들 개개인의 인생 드라마와 함께 펼쳐지는 경기들을 통해 20세기의 올림픽에 비해 많은 대중들은 자국 선수뿐만 아니라 타국의 선수들에 공감하고 감동하는 경우가 과거에 비해 증가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올림픽 개최 당시, 그 어느 때보다 무관심했던 한국인들도 8월 13일 한국 갤럽에서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림픽이 있어 생활이 더 즐거웠다'는 항목에 대해 약 53%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0년대 이후 올림픽에 대한 긍정적 반응으로서는 제일 낮은 수치였지만, 2020 도쿄 올림픽 이전의 낮은 관심도와 개막식과 폐막식을 비롯한 여러 문제들에 대해 한국인들이 전반적으로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도쿄 올림픽 개회 직전 낮았던 관심 수준,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 성적이 종합 10위 밖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메달 못지않게 경기 운영 과정에서의 예상외 재미와 감동이 중요함을 보여준다"(한국갤럽 데일리 오피니언 제460호)는 평가가 적절하다 할 것이다. 

2020 도쿄 올림픽은 여러 상반되는 평가와 감정을 남기고 막을 내렸지만 패럴림픽은 8월 24일부터 9월 5일까지 2주간의 일정을 앞두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2020 도쿄 패럴림픽이야말로 2020 도쿄 올림픽을 유치할 당시부터 강조되었던 가치인 '다양성'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시공간이라는 점이다. 도쿄 2020 올림픽의 이미지 영상인 「TOKYO 2020 PEOPLE」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유롭게 스포츠와 문화예술을 함께 하고 도쿄를 탐방하는 모습은 도쿄 2020 올림픽보다는 오히려 도쿄 2020 패럴림픽을 통해서 제대로 구현되기 때문이다. 

근대국가와 민족주의, 그리고 정상성의 상징인 스포츠로 구성된 올림픽의 시대가 저물고 21세기, 다양성이라는 화두와 함께 패럴림픽의 이미지가 올림픽의 홍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지만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렇게 '다양성'이 중시되고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지금조차, 현실 속에서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의 차이는 쉽게 변하지 않으며 오히려 다양성이라는 가치만이 전유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앞으로 올림픽의 의미를 생각할 때 중요한 지점일 것이다. 


김효진 서울대 일본연구소·인류학

서울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석사학위, 하버드대학교 인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글로벌일본연구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젠더와 일본사회》(공저), 《한일관계사 1965~2015 3: 사회·문화》, 《원본 없는 판타지》,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BL진화론》, 《남자도 모르는 남성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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