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의 언어’가 부재한 동아시아에서 다시 역사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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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의 언어’가 부재한 동아시아에서 다시 역사를 생각하다
  • 강상규 방송통신대·동아시아 정치사상 및 외교사
  • 승인 2021.05.16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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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21세기 동아시아 각국의 언론과 정계, 지성계를 배타적 애국주의와 혐오, 편견과 차별, 망각의 유령들이 활보하고 있다. 생태 위기, 에너지 위기, 핵과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끊이지 않는 내전과 난민 문제, 부의 쏠림현상 심화, 고령화 문제 등을 비롯하여 전 지구적 차원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협력해야 할 사안이 쌓여만 가는데, 각국은 유튜브, SNS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국익지상주의, 자민족 우월주의, 정의와 진실, 무한경쟁 등의 논리를 빌어 타국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정당화하는 언어와 가짜뉴스를 거침없이 발신하고 유통하며 소비한다. 

편견과 증오의 언어는 국경 외부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국경 안에 있는 반대 세력을 비롯하여 외부자, 소수자들을 편견과 혐오로 가둔다. 배제와 조롱으로 가득한 거친 언어의 비수들이 내부의 경쟁자를 끊임없이 타자화하면서 자기 세력의 결집과 단결을 도모한다. 21세기 문명화된 인류사회의 정점에서, ‘반지성주의’라고 명명할 만한 혐오와 차별의 자극적인 언어들이 도처에서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동아시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경우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것은 동아시아 지역이 동일한 문명과 문화적 기반과 가치를 오랜 세월에 걸쳐 공유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그 가운데서도 특히 근대사를 바라보는 각 나라의 시각이나 관점이 첨예하게 대립함으로써 서로를 동등한 파트너로서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맹목적으로 적개심을 가지고 바라보려 한다.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가들은 자국의 근대에 대한 서술=내러티브들을 열심히 만들어내지만, 각자의 내러티브는 내부자들 간에 유통되고 소비될 뿐, 국경이나 진영을 넘나들며 공유되거나 풍요로운 대화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 망각의 자리에는 타자에 대한 온갖 거짓 비방과 혐오의 언어들이 독버섯처럼 고개를 들고 마구 자라난다. 이러한 망각의 공간에는 역사적 기억들이 예외 없이 마구 뒤엉켜 있다. 역사의 진실은 없고 자기중심적인 해석들만 평행선을 그리며 대결한다.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고, 파편화된 진실이 본말을 전도시키며 전체를 거짓으로 뒤덮으려 한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국가들의 안과 밖으로, 기억을 둘러싼 갈등이, 내전 혹은 국제전의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해결의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를 살피려면 무엇보다 단기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거짓으로부터 진실을 분리해내려면 세계와 동아시아 역사를 자국의 역사와 함께 조망하면서 전체 그림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근현대 역사 속 조각난 퍼즐에만 시선을 고정하지 말고 큰 그림을 동시에 조망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근대를 몇 개의 시대로 나누어 상식으로 자리 잡은 기존의 이해방식을 조망해보면 선명하게 부각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19세기 이래 세계사의 전개 위에서 각 나라의 일국사적 관점만 논의되고 있으며, 동아시아 문명이나 전체 지역 차원의 관계사적 관점이나 국가 간 내지 사회 간의 상호관계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사와 일국사 위주의 서술방식 속에서 타국과의 관계는 어떤 특정 사안을 둘러싼 양국관계 수준에서 전개되기 쉬우며 동아시아가 세계사와 맞물려 영향을 주고받는 내용이나 혹은 동아시아 문명 내부 행위자들 간의 영향 관계 또한 지엽적인 논의 수준에 머무르고 만다. 예컨대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 부분과 하위 부분들 간의 다양한 상호작용들이 섬세하게 포착되지 않은 채, 세계와 일국의 역사가 쌍을 이루며 논의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틀 위에서 동아시아 근대에 관한 논의는 대개 세계사의 전개와 일국사의 중간 어느 지점 정도로 막연하게 간주되는 경향을 벗어나기 어렵다. 19세기 ‘서양의 충격’ 이후 동아시아 국가 간 관계가 맞물리고 상호영향을 주고받는 다채로운 내용이 입체적으로 조명되면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하고 파편화된 기억으로 남거나 사장되고 마는 것이다. 이처럼 동아시아의 근대를 구성하는 역사에 공통의 언어와 공감대가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21세기 동아시아 역사분쟁은 끊어지지 않고 상호 간의 불신으로 이어지며 확대 재생산될 것이다.

동아시아라는 제목의 책들을 읽다 보면, 동아시아라는 지역이나 중화/한자문명권 전체의 모습이나 혹은 동아시아 내부의 상호 영향 관계는 잘 드러나 보이지 않고 동아시아에 소속된 ‘국가’들의 이야기만 건조하게 나열하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이해방식으로 역사를 보게 되면 동아시아 내부에서 진행될 역사서술이란 배타적이고 자기중심적인 각국의 내러티브 수준을 벗어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은 서로 ‘가깝고도 먼 나라’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상생의 미래를 논의하는 것 또한 표면적인 외교적 제스처를 넘어서기 어렵다. 또한, 동아시아 문명권을 구성하는 국가들에게 국가를 넘어선 지역의 역사가 제대로 섭렵되지 않은 채 자국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낸 역사가 과연 성립할 수 있는 것인지 다시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동아시아 근현대를 보는 획기적인 안목을 담은 큰 그림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건 지금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상규 방송통신대·동아시아 정치사상 및 외교사

방송통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 총합문화연구과에서 국제관계론 분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동양정치사상사학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의 건강하고 의미 있는 소통과 상생의 길, 동아시아 역사의 새로운 해석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19세기 동아시아의 패러다임 변환과 제국 일본』『조선정치사의 발견』, 『동아시아 역사학선언』(근간) 등이 있다. 최근 논문으로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신화와 일본의 전후체제”, “주권개념과 19세기 한국 근대사”, “역사적 전환기 한반도의 국제정치 경험에 관한 연구: 류큐왕국/오키나와 및 대만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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