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세대의 좌절과 보수혁명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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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혁명 세대의 좌절과 보수혁명의 배신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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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유럽을 성찰하다: 중산층 붕괴, 포퓰리즘, 내셔널리즘……유럽중심주의 몰락 이후의 세계 | 다니엘 코엔 지음 | 김진식 옮김 | 글항아리 | 240쪽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으로 꼽히는 경제학자 다니엘 코엔이 68혁명 이후 이 세계의 변화에 대해 총체적으로 성찰한 인문에세이다. 특히 오랜 시간 세계 질서를 주도했던 유럽적 이성이 어떤 과정을 거쳐 변질되고 쇠락했는지, 바뀐 세계 속에서 지식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여러 방면으로 담아놓았다. 이 책은 유럽에 대한 총체적 반성이자, 포퓰리즘과 극우주의 등 극단의 문화 속에서 어떻게 글로벌한 합리성을 만들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모색이라고 할 만하다.

경제 위기는 68혁명의 반대자들에게 역습의 기회를 제공했다. 아일랜드의 토머스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이 ‘무절제와 악덕’의 사슬을 풀어놓아 젊은 세대들이 ‘지혜와 미덕’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비판했다. 1980년대 초반에 등장한 신보수주의자들도 같은 실수를 범했다. 68혁명 세대들이 ‘금지를 금하기를’ 원했지만, 잘못 생각한 게 있었다. 모든 사회는 규칙과 금지를 통해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불가능을 요구하기’를 원했지만, 인간 조건이 비극적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68혁명에 대한 비판은 ‘무력감과 쾌락주의와 도덕적 혼란에 빠지는 것’을 한시바삐 막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 저자 다니엘 코엔
▲ 저자 다니엘 코엔

1960년대에서 1980년대로 이처럼 급격하게 변화한 것은 인간 욕망의 양극단 사이에서 이뤄진 진부한 왕복운동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인간 욕망의 양극단은 보들레르가 ‘이 세상 밖 어디든지’라고 불렀던, ‘스스로에게서 해방되어 멀리 떠나고자 하는 마음’과, 이 역시 우리가 자주 경험하는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되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변화는 이처럼 깊이 왜곡된 대립의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전통에 대한 찬사는 타인 기피와 외국인 혐오증으로 변했고, 기존 질서에 대한 즐거운 이의 제기는 경쟁적인 개인주의 속에 쓰러져 있다. 해방과 전통이 대립하는 이 현장에서 우리는 승자와 패자의 커다란 분열을 목격했다. 관습에서 해방돼 자율적인 존재가 된 승자와, 전통이 제공해주지 않는 보호책을 전통에서 찾고 있는 패자가 그것이다.

좌우 양극단 이념 세력의 공통된 실패는 지금의 포퓰리즘을 낳았다. 유럽 포퓰리즘은 위로는 사회 엘리트, 아래로는 이민자 집단에 대한 증오를 응집시킨다. 이탈리아 포퓰리즘 운동에는 엘리트 혐오라는 위를 향한 증오와 급진 좌파 성향은 있었지만, 외국인 혐오라는 두 번째 아이템이 없었기 때문에 실제 선거 결과는 우파에 뒤졌다. 스웨덴의 ‘민주당’, 덴마크의 ‘인민당’, 핀란드의 ‘진짜 핀란드당’, 오스트리아 ‘자유당FPO’, 그리스의 ‘금빛 새벽당’, 이탈리아의 ‘북부 리그당’은 모두 외국인 혐오에 기반을 두고 있다. 르펜이 이끄는 프랑스의 ‘민족전선’도 마찬가지다. 좌파보다 더 급진적인 경제 정책과 우파보다 더 급진적인 도덕 정책으로 세계화에서 낙오되고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서민들로부터 지지를 얻는다.

그렇다면 연속으로 나타나는 이런 위기와 단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시대가 소리 없이 보여주는 현상들은 과연 어떤 병일까? 그 대답은 산업세계라는 문명의 붕괴와 더 이상 후계자를 찾기 힘든 진보 사회의 커다란 어려움과 관련돼 있다. 오늘날의 시대를 부르는 ‘후기산업사회’라는 명칭이 많은 오해를 낳는 것 같다. 후기산업사회를 두고 좌파는 자본주의를 벗어나는 것으로, 우파는 노동 가치라는 기본 가치로 복귀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 두 시각 모두 틀렸다. 후기산업사회의 참된 의미를 가리고 있던 장막이 최근 들어 걷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탈산업사회는 숱한 시행착오 끝에 적절한 명칭인 ‘디지털 사회’라는 제대로 된 길을 이제는 찾은 것 같다. 규모의 효율성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정보가 취급할 수 있는 정보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이 강제로 거대한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야 한다. 사전에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어 있으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은 무한대의 고객을 돌보고 배려하고 충고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미래를 예고하는 영화 「그녀Her」에는 ‘감정 소프트웨어’가 등장하는데 거기에 나오는 여배우 스칼렛 요한슨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한꺼번에 수백만 명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인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상, 즉 호모 디지털리스가 예고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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