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씨앗을 뿌린 문제적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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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전체주의의 씨앗을 뿌린 문제적 철학자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8.3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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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홉스: 리바이어던의 탄생 | 엘로이시어스 마티니치 지음 | 진석용 옮김 | 교양인 | 632쪽

이 책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본격적인 홉스 전기이다. 홉스가 젊은 시절에 쓴 수필부터 《리바이어던》을 거쳐 노년에 완성한 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저작에 해박한 저자는 홉스의 사상이 절대 왕정에서 의회 정치로 급변하던 영국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발전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보여준다.

토머스 홉스는 논쟁적인 삶을 살았다. ‘홉스’라는 이름에는 지극한 찬사와 함께 격렬한 비판이 따라붙었다. “새로운 철학의 빛나는 땅을 찾은 콜럼버스, 위대한 철학자, 초인적 지성”과 “맘스베리의 괴물, 형편없는 교리의 전도사, 방탕한 무신론자”라는 양극단의 평가를 받았다. 홉스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늑대인’ 자연 상태를 만인의 자발적인 사회 계약으로 극복한다는 이념을 통해 근대 인민 주권과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았다. 동시에 인민 전체의 동의에 기반해 절대주의 국가, 곧 리바이어던을 세운다는 기획을 제시함으로써 히틀러와 스탈린 체제 같은 근대 전체주의 체제의 원형을 제공했다.

홉스 철학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저자는 이 책에서 홉스의 일생을 유례없이 완벽하게 되살려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출간 자료와 미출간 자료들을 동원하여 홉스 시대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을 그려내고, 홉스를 둘러싼 수많은 의문에 명쾌하게 답한다. 대표작인 《리바이어던》을 포함해 《법의 원리》, 《시민론》, 《물체론》, 《인간론》 등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책들에 담긴 사상도 깊이 있게 다룬다. 나아가 정치철학뿐 아니라 과학적 탐구, 수학·기하학 논증, 언어철학까지 드넓은 지적 관심과 학문 세계를 상세히 살핀다.

▲ 저자 A. P. Martinich
▲ 저자 A. P. Martinich

홉스는 90여 년에 이르는 길고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홉스의 어머니는 에스파냐 무적함대의 침략 소식에 공포에 질려 일곱 달 만에 아기를 조산했고, 홉스는 자신이 “공포와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홉스의 삶은 전쟁과 혁명으로 가득 찼고, 공포가 늘 그를 운명처럼 따라다녔다. 청교도 혁명으로 내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641년에 찰스 1세에 반대하는 의회 세력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는데, 이곳에서 대작 《리바이어던》을 집필했다.

망명 생활 10년 후, 프랑스 가톨릭 세력의 위협이 두려워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영국 국교회 주교들은 홉스를 무신론자로 여겨 화형에 처하려 했다. 그를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었다. 《리바이어던》과 《시민론》은 옥스퍼드대학 금서 목록에 올라 불태워졌다.
 
홉스는 존 로크, 장 자크 루소와 함께 사회 계약론의 사상적 기초를 닦은 정치철학자이다. 대표작 《리바이어던》(1651년)은 사회 계약론에 관한 최초의 문헌으로서 근대 국민 국가 형성에 중요한 토대를 제공했다. 자연, 인간, 정치, 종교에 관해 독창적인 이론을 펼친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정치철학을 완결하는 작품이다. 《리바이어던》은 홉스가 살았던 17세기의 산물이지만, ‘근대인의 경전’이라 불리며 오늘날에도 수없이 인용되고 읽히는 고전 중의 고전이다.

▲ Hobbes A Biography
▲ Hobbes A Biography

《리바이어던》의 핵심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비참하다는 데 있다. 자연 상태는 만인이 만인에 대해 투쟁하는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한 곳이며,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절대 권력을 지닌 주권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시 절대적 주권자로서 왕의 권리를 주장한 사람은 홉스가 최초는 아니었다. 그러나 기존에는 왕의 절대적 권한이 하늘이 내려준 신성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하향식’ 관점이 지배적이었다면, 홉스는 인민 주권의 양도와 승인을 통해 국가가 형성된다고 주장함으로써 민주적인 ‘상향식’ 관점을 취했다. 이것이 홉스가 당시 왕당파와 의회파 모두에게 배척당한 이유였다.

개인의 동의가 정치적 복종의 ‘유일한 근거’이며, 정부가 합법성을 지니려면 주권자가 인민 개인을 보호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홉스의 주장은 개인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존중하는 근대적 사고의 표본을 드러낸다. 《리바이어던》은 홉스의 그 어떤 저작보다도, 혹은 당대의 그 어떤 저작보다도 근대인의 정신을 강력하게 보여준다. 근대 국민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개인의 승인에 기반한 국가의 탄생을 예견했던 토머스 홉스. 그가 남긴 역작 《리바이어던》을 ‘근대인의 바이블’이라 부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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