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모론은 더 깊은 진실을 숨긴 ‘대리’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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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음모론은 더 깊은 진실을 숨긴 ‘대리’ 진실이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4.27 0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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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모론이란 무엇인가 | 마이클 셔머 지음 | 이병철 옮김 | 바다출판사 | 404쪽

 

왜 사람들은 음모론을 믿을까? 우리를 위협하는 진짜 음모와 그저 누군가를 기만하려는 가짜 음모를 구별할 수 있을까? 내 가족과 친구가 음모론에 빠져 있을 때 그들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저자 셔머는 ‘음모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주제를 다루기 위해 이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다. 

셔머는 외계인, UFO, 비밀조직 일루미나티, 달 착륙 조작, 9/11 테러 자작극, 선거 조작 세력, 코로나19 백신 사기, 지구 온난화 사기 등 황당무계한 음모론을 맹신하는 건 바보라서가 아니라 똑똑해서라고 주장한다. 모든 음모론은 그 속에 더 깊은 진실을 숨긴 대리 진실로서 세계를 이해하려는 합리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또한 셔머는 역사상 수많은 음모론이 진짜 음모로 밝혀진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짜 음모와 가짜 음모를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고자 노력한다. 음모론자를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경멸하는 것은 오늘날 양극단으로 나뉜 정치적 분열을 더 심화할 수 있다. 우리는 음모론자와 더불어 대화하며 그들과 함께 과학과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가짜 음모를 가려내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통의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셔머는 오랜 경험을 통해 사람이 그저 순진해서 음모론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음모론은 음모론자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자신의 정체성 및 세계에 대한 이해와 연결된 더 깊은 진실을 숨기는 대리 진실이다. 셔머는 음모와 음모론, 음모주의 같은 용어의 기원과 역사를 추적하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음모론을 유형별로 분류했다. 이를 통해 그는 도대체 멀쩡한 사람이 왜 음모론에 빠져드는지 그 답을 제시한다. 바로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설명하는 세 가지 모델, ‘대리 음모주의’, ‘부족 음모주의’, ‘건설적 음모주의’이다. 모든 음모론은 그 속에 더 깊은 진실을 담고 있는 대리 진실이다.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거기 심은 컴퓨터칩으로 빌 게이츠가 우리를 조종할 것이라는 음모론의 심연에는 거대 제약 회사의 증거 조작, 이익 추구를 이유로 그런 회사를 신뢰하지 않는 두려움이 숨어 있다. 제약 회사의 사기와 횡포는 과거에도 지금도 실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리 음모주의다. 또한 백신에 대한 음모론을 굳게 믿고 퍼뜨리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원들, 즉 같은 집단의 사회 구성원에게 충성심을 드러내는 신호로 작용한다. 이것이 음모론이 그토록 공고한 이유를 설명하는 부족 음모주의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음모론을 믿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세 번째 이유는 많은 경우 음모론이 진실로 판명되기에 믿지 않는 것보다는 믿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의 진화적 역사를 반영한다. 나뭇가지가 뱀이라고 착각하고 도망갔던 우리 조상은 그렇지 않은 조상보다 더 잘 생존하고 번식했다. 우리 마음속에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자동 알고리듬이 들어 있다.

셔머는 이 세 가지 요인이 음모론을 믿는 핵심 이유이며 그 위에 인지 부조화, 확증 편향, 우리편 편향, 패턴 만들기 같은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일단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음모론자를 바보가 아니라 복잡하고 위험한 세계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하는 동료 시민으로서 말이다. 음모론자는 우리 모두와 마찬가지로 전쟁, 범죄, 빈곤 같은 큰 문제를 알고 이해하고 해결하고 싶기에 음모론을 믿는 것이다.

셔머는 경험에서 나온 귀중한 조언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기이한 음모론에 빠진 맹신자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셔머의 말처럼 상대방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상대방을 노골적으로 ‘히틀러’나 ‘나치’라고 낙인 찍는 순간 대화는 끝이 나버리고 만다. ‘음모론자와 대화하는 기술’에서 오늘날 가장 필요한 덕목은 어떤 지식이든 절대적 확실성은 없으므로 총기 규제, 사형제, 기후 변화 같은 정답이 있을 수 없는 첨예한 주제에서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게 되면 기꺼이 몰랐음을 인정하고 상대를 칭찬하며 의견을 바꾸라는 조언이다. 의견을 바꾸는 것에는 어떤 모순도 없으며 오히려 미덕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의 의견 역시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술이다.

셔머는 개인 생활과 공공 생활에서 점점 더 정부를 비롯한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가 약화하는 암울한 현실을 지적한다. 진실의 쇠퇴와 불신의 확산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뻔하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양극단으로 나뉜 정치적 분열과 가짜 뉴스의 범람은 이미 도래한 현실이다.

이제 다시금 이성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다른 의견을 포용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공동체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셔머는 국가의 헌법에 기반한 가치를 넘어 지식이라는 헌법으로 새로이 인류의 가치를 정초하자고 주장한다. 지식의 한법은 언론의 자유와 열린 대화의 규범을 강화하고 동의하지 않는 사람을 침묵시키거나 말살하는 검열적 행동을 약화하라는 계몽적 인본주의의 귀환이다. 그것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되살리는 것이다. “나는 결코 정치, 종교, 철학에 대한 의견 차이를 친구를 멀리하는 이유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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