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함의 챔피언’, 호모 사피엔스
상태바
‘불완전함의 챔피언’, 호모 사피엔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4.04.27 01: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불완전한 존재들: 결함과 땜질로 탄생한 모든 것들의 자연사 | 텔모 피에바니 지음 | 김숲 옮김 | 북인어박스 | 276쪽

 

‘공학적 완벽함’을 기준으로 보자면, 호모 사피엔스는 ‘만물의 영장’답지 않게 어설프기 짝이 없다.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하며 넓은 시야를 얻었지만 허리 통증과 관절염에 시달려야 했고, 복잡해진 뇌로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지만 반대로 만성적인 두통과 심리적 불안에 시달리면서 살아가야 한다. 점액질로 호흡기가 막혀 고통받는 일도, 식도와 기도가 불분명해 질식 위험에 처하는 일 모두 사족보행을 하는 동물들에게는 발견할 수 없는 것들이다. 게다가 갓 태어난 새끼는 무려 십수 년 이상 부모의 보살핌 속에 자라야 하는 귀찮고 번거로운 종이며, 잘못된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서슴없이 행동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동물이다.

그런데도 이 불완전해 보이는 종은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한 지 무려 40억 년 후에나 나타나 “두 발로 걷고, 교향곡을 작곡하며, 달로 로켓을 발사하는” 유일한 종이 됐다. 뇌의 발달 덕분이었을까? 아니면 두 다리로 걷기 시작했기 덕분이었을까? 오랜 진화사의 장면을 펼쳐보면, 이 답으로는 충분치 않아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 말고도 큰 뇌를 가지고 두 다리로 걷던 호미닌(Hominins) 몇몇 종이 멸종하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 살았으니까. 그러면 무엇이 달랐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우주의 탄생부터 지구와 생명체, DNA, 돌연변이의 등장, 그리고 새로운 ‘지배자’인 인류의 출현까지의 과정을 탐색하며, 현대 인류가 특유한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살펴본다. 특히, 그는 오랜 진화사의 시간 속에서 ‘완벽한 인류’의 흔적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다만 무수한 우연과 땜질로 타협된 자연선택에 의해 탄생한 인류의 불완전한 모습만이 우리의 특징으로 드러난다는 것.

여기에는 진화의 역설이 담겨 있다. 저자는 특유의 ‘불완전함’이 호모 사피엔스를 더 유연하고 창의적인 종으로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때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던 네안데르탈인과 비교해도 호모 사피엔스는 과감하지만 불완전한 선택을 감행했다. 단적인 예로, 호모 사피엔스는 커진 두뇌를 지탱하기 위해 두껍고 짧은 목을 선택한 네안데르탈인과 달리 긴 목을 선택했다. 긴 목은 커진 두뇌를 지탱하기에 결점 많은 구조였으나, 목 아래로 이동한 후두가 기도와 성대로 분리되면서 하나의 목구멍으로 동시에 숨 쉬고, 먹고, 말할 수 있게 된 불완전한 타협이었다. 비록 오늘날까지 질식 위험과 만성 목 디스크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만, 이로 인해 언어라는 걸 갖게 됐으니 불평할 수만은 없는 꽤 괜찮은 타협이었다.

진화는 최적화가 아닌 적응과 변화의 과정이다. 과거의 이점이 미래의 단점으로 변할 수 있음을 공룡의 멸종과 오늘날 인류의 조상인 작은 포유류의 생존에서 볼 수 있다. 이는 진화가 지속적인 적응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핵심은 유연함과 기동성이다.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새로운 것을 처음부터 만들기보다 기존 것을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하는 것이 경쟁력을 높인다. 완벽한 최적화가 아니라 불완전한 땜질이 진화의 핵심이다.

지구상에 생명체가 탄생한 지 한참 후에나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가 재빨리 지배종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불완전함의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이들은 다른 종과 달리 척추동물의 뼈 형성에 기능하는 오스테오크린(Osteocrin) 세포를 학습과 기억을 위해 뇌에서 재사용한다거나, 두 다리로 걷기 시작한 후 골반이 좁아지자 아예 미성숙한 새끼를 낳는 방식의 진화적 타협안을 선택함으로써 변화된 환경에 기민하게 적응했다. 이러한 불완전한 선택들은 극단적인 타협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유형성숙(늦은 성장과 성숙)과 같은 인간만의 특성으로 작용해 사회적 협력과 학습 능력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즉,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기보다 이미 주어진 환경과 자원을 재사용하는 기민한 적응과 타협으로, 지배종이 된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불완전함이 다른 생명체들의 불완전함보다 조금 더 잘 기능했다.”

이렇듯 저자는 불완전함을 단순한 결점이 아닌, 생존과 진화의 핵심 동력으로 재해석한다.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타협과 적응은 인류가 직면한 수많은 도전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화는 늘 그렇듯이, 오늘의 이점이 내일의 약점이 될 수 있다. 숱한 진화적 성취에도 인류는 이제 또 다른 진화적 분기점에 서 있다. 또 다른 적응으로 생존을 이어갈 가능성도 여전하지만, 반대로 공룡의 길을 걷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류 진화의 깊은 통찰을 통해 당면한 현대 사회의 복잡한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향을 고민한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적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불완전함과 창조적인 타협이야말로, 의료, 기후 변화, 생태계의 파괴, 인공지능 등의 윤리적 문제와 같은 거대한 문제들에 맞서 싸우는 데 인류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될 거라고 전망한다. 인류가 완벽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고 오판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다.

인류 진화의 본질을 규명하는 것은 단순히 과학적 탐구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가 누구인지, 또한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우리에게 인류의 본질적인 불완전성이 실제로 우리 존재의 아름다움과 창의성, 그리고 생명의 진정한 가치를 드러내는 데 어떻게 기여하는지 똑똑하게 보여준다. 우주의 탄생부터, 태양계, 지구, 생명체의 등장, 그리고 수많은 생명체의 명멸을 통해, 불완전성이야말로 진화의 섭리이자 본질임을 지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