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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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1.12.0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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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교양서20 제11강〉_  황갑연 전북대 교수의 「〈논어〉」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여덟 번째 시리즈 ‘교양서20’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파트너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교양서는 사회의 기본이 되는 인간 교육, 즉 교양 교육이나 인성 함양에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생각되는 도서다. 교양의 내용은 자기 수양의 지혜를 넘어 그리고 동양이나 서양의 문화적 전통을 넘어, 인간과 세계와 자연과 우주에 관계되는 넓은 독서를 포함한다. 전체 20회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자기 수련과 타자에 대한 공감과 사회적 필요와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과 우주의 구성을 느낄 수 있고 알게 하는 기초적인 교양 도서 20권을 통해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마주한 삶의 문제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주제 2. 동양사상 제11강 황갑연 교수(전북대 철학과)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편집국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논어〉


황갑연 교수는 먼저 공자에 대한 시각을 분명히 밝히며 시작한다. 그가 성인(聖人)이라기보다는 앞선 시대의 “문화와 학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시대정신을 수립하고서 자신의 생명 방향과 문화학술 정신을 구현하려고 노력한 실천주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러할 때 “공자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그가 결정한 생명의 방향과 문화학술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마땅히 물어야 하는바 그에 대해 『논어(論語)』라는 텍스트를 중심으로 궁구한 결과, “예(禮)에 합리와 정당 의미인 의(義)” 그리고 “도덕 선의지인 인(仁)을 부여하여 예의 내용과 근원을 확보”함으로써 인-의-예 삼자가 유기적으로 연계되고 인과 충서(忠恕), 의와 직(直), 예와 정명(正名)의 관계로 파생되는 중국 최초의 “자율 도덕론” 체계를 세웠으며 “인이라는 선의지의 활동 방향을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으로 설정하고, 다시 학(學)과 교(敎) 그리고 정(政)이라는 세 방향을 통해 내성과 외왕을 완성하는 것을 문화학술의 근본정신으로” 삼았다고 답한다. 

 

지난 10월 16일, 황갑연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교양서20>의 11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공자에 대한 논자(論者)의 시각

역대 공자 학술에 대한 기술은 대부분 공자를 중국 역사상 제1의 성인의 지위에서 논하고 있다. 필자는 공자를 인격의 완성자인 성인보다는 전대(前代) 문화와 학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을 통해 시대정신을 수립하고서 자신의 생명 방향과 문화학술 정신을 구현하려고 노력한 실천주의 철학자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공자의 시대정신은 무엇이고, 그가 결정한 생명의 방향과 문화학술의 정신은 무엇인가? 필자는 공자의 대표적 시대정신은 주초(周初)와 춘추 시대 위의(威儀)와 질서의 중심 이념이던 예(禮)에 합리와 정당 의미인 의(義)와 도덕 선의지인 인(仁)을 부여하여 예(禮)의 내용과 근원을 확보함으로써 진정한 자율 도덕론의 체계를 열었다는 점, 그리고 인(仁)이라는 선의지의 활동 방향을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으로 설정하고, 다시 학(學)과 교(敎) 그리고 정(政)이라는 세 방향을 통해 내성(內聖)과 외왕(外王)을 완성하는 것을 문화학술의 근본정신으로 삼는 것으로 규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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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공자의 생명과 학문 정신에 대한 자술(自述) 

『논어』에는 공자의 말이 많이 수록되어 있지만, 공자가 자신의 임무와 학술의 정신에 대해 스스로 서술한 말을 근거로 공자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묵묵히 마음속으로 깨닫고, 배우는 일을 싫어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 가르치는 일에 피곤함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 외에 무엇이 나에게 있는가?”
子曰 :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述而」

공자가 말했다. “성인과 인자의 경지라면 내 어찌 감히 (그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성인과 인자의 도를) 실천하기를 싫어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일깨워주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는 것으로 말한다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子曰 : “若聖與仁, 則吾豈敢? 抑爲之不厭, 誨人不倦, 則可謂云爾已矣.”「述而」

섭공이 공자에 대해 자로에게 물었는데, 자로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대답하지 못했다. (공자가 그 일을 듣고서) 말했다. “(자로야) 너는 왜 (나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그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하면) 식사를 잊어버릴 정도로 분발하고, (도를 깨우치면) 그것을 즐기면서 근심을 잊으며, (심지어) 늙어가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子曰 : “女奚不曰 :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述而」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에서 ‘黙而識之(묵이식지)’는 사(思)의 활동이고, ‘學而不厭(학이불염)’은 구지(求知)의 활동이며, ‘誨人不倦(회인불권)’은 교(敎)의 활동이다. 공자는 자신을 호학인(好學人)으로 규정할 뿐 성인 혹은 인자(仁者)로 자임하지 않는다. 또 ‘發憤忘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는 학(學)과 사(思) 그리고 교(敎)의 활동이야말로 공자 생명의 진정한 즐거움이고, 삶의 전부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공자가 말했다. “나는 열다섯 나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혼자서도 학문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마흔에 이르자 (이것저것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는 내 자신의 한계를 자각함과 동시에 새로운 사명을 세웠으며, 예순 살에는 (마음에서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자) 모든 것들이 귀에 순조롭게 들렸고, 이른 살이 되자 내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규범에 어긋나지 않게 되었다.”
子曰 : “吾十有五而志於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爲政」

공자의 15에서 70까지의 단계는 인지적 발전 과정이 아니다. 이는 공자라는 한 생명의 도덕적 성숙 과정이면서 단계별 성취이다. 당시에 15세면 태학(太學)에 입학할 시기이다. 그러나 이곳에 출현하는 15세에서부터 70세까지는 공자 인생 정진과 발전 단계를 표시한 허수(虛數)일 뿐 실수(實數)가 아니다. 30의 ‘이립’, 40의 ‘불혹’, 50의 ‘지천명’, 60의 ‘이순’, 70의 ‘종심소욕불유구’까지 도리에 대한 인식보다는 원만무애한 생명의 발전 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5. 인(仁)ㆍ의(義)ㆍ예(禮) 삼자의 유기적 연계를 통한 자율 도덕론 수립

우리에게 공자는 맹자와 아울러 도덕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도덕 실천론자로 알려져 있다. 이 규정은 당연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즉 그는 실천론자이면서 이론가이다. 필자는 공자의 도덕론을 도덕규범(禮)에 대한 의지(仁)의 입법성을 긍정하는 중국 최초의 자율 도덕론으로 규정한다. 이러한 공자 도덕론의 형태는 인(仁)과 의(義) 그리고 예(禮)의 유기적 관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은 인(仁)이지만, 공자 철학은 예(禮)에 대한 비판과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예(禮)는 춘추 시대를 대표하는 관념이다. 『논어』에 나타난 예(禮)는 종교적인 의미보다는 시서예악(詩書禮樂)의 인문 혹은 조리(條理)와 도리(道理) 및 형식의 질서, 그리고 본질과 선물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禮)는 춘추 시대에 이미 원시 종교적인 의미에서 거의 벗어나 인문 세계의 공통 이념으로 발전된 것이다. 

이러한 예(禮) 관념은 『논어』에 이르러 또 한 차례의 변화가 일어난다. 그것은 바로 형식적 규범인 예(禮)에 합리성이라는 내용이 부여되고, 또 그 합리성의 결정 근거를 밖의 공리나 초월자에게서 찾지 않고 내적인 도덕 주체인 인(仁)이라는 선의지에 추구한 것이다. 공자 시대에 들어서 천도론을 근본으로 한 예(禮)의 관념은 근본적 변혁을 이룬다. 그것이 바로 ‘예(禮)를 인(仁)에 통합시킨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인(仁)으로써 예(禮)를 통합함에 있어 직접 인(仁)으로써 예(禮)를 통합하지 않고 먼저 의(義)로써 예(禮)를 통합하였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예(禮)는 비단 의식과 절차의 의미와 완전히 다를 뿐만 아니라 예(禮)의 근거도 다시는 외적인 천도에서 찾지 않게 되었다.

예(禮)는 질서의 개념이며 일상생활의 규범이다. 예(禮)는 정당 합리성의 의(義)를 기초로 삼는다. 다시 말하면 공자는 도덕의 근거를 역사와 사회, 심리와 생리적인 사실 그리고 종교적 초월자에서 찾지 않고 정당 합리성의 가치 자각 의식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공자 철학에서 가치 의식의 보다 근본적인 본원은 의(義)가 아니라 인(仁)이다. 인(仁)은 공자 철학의 중심 관념이며, 또한 생활 규범인 예(禮)와 정당 합리성의 개념인 의(義)의 본원이다. 인(仁)은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내재된 도덕 자각 주체임과 동시에 대공무사(大公無私)한 경지다. 『논어』에서 의(義)는 정당과 합리 및 도리 그리고 정당한 책임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공자 철학의 제1 중심 개념은 ‘인(仁)’이다. 『논어』에서 인(仁)은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 구체적인 덕목, 중덕(衆德)의 근원, 도덕 의지(선의지), 인격의 완성자인 성인의 도덕적 경지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핵심적 의미는 시비선악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며, 다시 자신의 판단에 대하여 희열[好善]과 혐오[惡惡]을 드러내 구체적인 도덕 행위를 완성[爲善去惡]하는 도덕 실체라는 점에 있다.

공자 철학에서 인(仁)은 형식적인 생활 규범인 예(禮)와 정당 합리성의 개념인 의(義)의 근원이다. 인(仁)은 인간으로 하여금 정당 합리성을 추구하게끔 하는 일종의 도덕의식이며, 의(義)는 이러한 인(仁)의 객관적인 표준이다. 공자의 도덕론에서 인ㆍ의ㆍ예 삼자의 관계는 수평적이 아니라 수직적이다. 공자는 학술문화의 전승자로 자임하면서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고 하지만, 주(周) 초부터 중심 이념으로 자리 잡았던 예(禮)에 합리 정당 의미인 의(義)를 부여하고, 그 근원을 내적인 선의지인 인(仁)으로 삼아 진정한 자율 도덕론의 체계를 수립한 것은 분명 ‘술이작(述而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6. 인(仁)과 충서(忠恕), 의(義)와 직(直), 예(禮)와 정명(正名)의 관계

인ㆍ의ㆍ예는 공자 철학의 핵심 개념이다. 『논어』에 출현하는 많은 도덕 이론 중에서 상당수는 인ㆍ의ㆍ예로부터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파생된 것이다. 인(仁)에서는 충서(忠恕), 의(義)로부터는 정직, 예(禮)로부터는 정명(正名)이 파생되었다.

1) 인(仁)과 충서(忠恕)

‘忠’ 자는 中과 心의 조합으로서 ‘사사로움이 없는 진실한 마음의 상태이다.’ 서(恕)는 서로의 마음이 동일하기 때문에 사심이 없는 충(忠)의 마음을 근거로 상대방의 마음을 짐작하는 것이다. 충(忠)은 인(仁)이라는 도덕 의지를 실현할 때 간직해야 하는 마음의 상태이고 그리고 지켜야 하는 태도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충서를 어떻게 해설할까? 공자의 제자인 중궁이 인(仁)에 관하여 묻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궁이 (공자에게) 인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했다. “집 밖을 나서 (사람들과 교류할 때는) 귀중한 손님을 대하듯이 (정성을 다해야 하고), 백성들을 부릴 때에는 중요한 제사를 올리는 것처럼 (조심해야) 한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은 타인에게 행하지 말아야 한다.
仲弓問仁. 子曰 :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顔淵」

무릇 인자라면 자기가 성취하고 싶으면 타인도 성취하게 해주고, 자기가 통달하고 싶으면 타인도 통달하게 해주어야 한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雍也」

첫째, “문에 나가서는 귀중한 손님을 영접하듯이 하고, 백성을 부릴 때는 제사를 모시는 것 같이 한다.” 귀중한 손님을 접대할 때와 제사를 받들 때는 마음에서 사사로움을 배제하고 오로지 진실된 마음으로 그 일을 행해야 한다.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어떤 음덕도 기대하지 않은 채 오로지 자신 생명의 근본인 조상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야 한다. 또 백성을 부릴 때는 공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백성들에게 조심하고 근신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충(忠)이다.

둘째,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라.”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타인 역시 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충(忠)의 상태에서는 내 마음과 다른 사람의 마음이 동일하다. 때문에 어떤 일을 자신에게 먼저 적용해보고서 자신이 그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타인에게 요구하고, 만일 자신의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꺼리는 것이 있다면 타인에게도 그 일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서(恕)의 기본 태도이다. 공자는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서(恕)의 기본적 태도를 매우 중시하였다. 그러나 오로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만을 강조하면 어딘지 소극적인 도덕률인 것 같다. 

공자는 오로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만을 강조하였는가? 그렇지 않다. 공자는 “무릇 인(仁)이라는 것은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도 서게 해주고, 자신이 성취하고 싶으면 남도 성취하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공자는 이것을 서(恕)의 기본적 의미로 삼지 않고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는 것을 서(恕)의 기본적 의미로 내세웠다. 왜 그런가? 그것은 바로 서(恕)의 적극적 태도(-황금률)를 일반화시켰을 때 도덕률의 차이로 말미암아 갈등과 충돌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恕)의 기본적 태도는 상대방의 차이성을 존중하는 것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갈등과 대립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공자가 지향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관이다.

 

 

2) 의(義)와 직(直)

의(義)와 정직에 관한 공자의 언설도 후에 많은 논쟁을 수반하였다.

혹자가 말했다.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으면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원한을 은덕으로 갚는다면) 은덕은 무엇으로써 갚을 것인가? (합리성을 내용으로 하는) 정직함으로써 원한을 갚아야 하고, 은덕으로써 은덕을 갚아야 한다.”
或曰 : “以德報怨何如?” 子曰 :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憲問」

공자는 원한에 대해 ‘합리성을 내용으로 하는 정직함으로써 원한을 갚아야 한다’고 했을 뿐 결코 ‘원한으로써 원한을 갚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원한도 은혜로 보답하고, 은혜도 은혜로 보답한다면 은혜와 원한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 어떤 사람은 원한을 은혜로 갚는 것이 대장부의 태도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원한과 은혜 사이에는 차이가 마땅히 있어야만 비로소 합리적이라는 것이 공자의 판단이다. 이곳에서 ‘직(直)’의 내용은 합리성이다.

3) 예(禮)와 정명(正名)

공자의 도덕론에서 예(禮)는 질서성의 개념이다. 공자는 예(禮)로부터 정명(正名)이라는 사회적, 정치적 의무 개념을 도출한다. 예(禮)가 질서에 관한 형식적인 규범이라면, 정명은 이 질서의 원리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이다. 정명에서 명(名)은 개체명이 아니라 관계명이다. 즉 공동체에서 지위(군(君), 신(臣), 부(父), 자(子), 대통령, 국회의원, 부장, 과장 등)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 ‘명(名)’에는 그에 해당하는 책임과 의무가 내재되어 있다. 공자는 ‘명(名)’과 책임(의무)이 일치하였을 때 비로소 공동체의 질서가 확립된다고 주장한다.

공자의 도덕론에서 정명은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서로의 지위와 분계를 바르게 확립하여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다(正位分, 不侵權). 모든 정치적 혼란은 자신의 직분을 벗어나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 군주가 신하의 권리를 무시하고, 신하가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서 군주의 지위를 찬탈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 지위의 명칭에 해당하는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군주라면 군주에 해당하는 의무를 다하고, 신하와 부모 그리고 자녀 역시 마찬가지로 자신 지위의 명칭에 해당하는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군주가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녀는 자녀다울 수 있는 것이다. 자로가 정명을 내세우는 공자의 태도에 답답함을 보이자 공자는 명분을 올바르게 세우는 것을 언순(言順), 사성(事成), 예악흥(禮樂興), 형벌중(刑罰中), 민조수족(民措手足)의 기본 조건으로 내세운다. 하나의 공동체에는 정치 조직ㆍ가정 조직 등 사회 조직이 있는데, 이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에게는 각자의 지위가 있고, 그에 해당하는 권리와 의무가 있다. 공자는 정명을 내세워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타인의 권리를 존중해야 함을 강조한다.

 

 

7. 효(孝), 향원(鄕愿), 귀신(鬼神)에 관한 공자의 태도

1) 효(孝)

아마 인륜의 덕목 중에서 실천 강령으로서 효(孝)를 수위의 자리에 놓지 않은 도덕과 종교는 없을 것이다. 공자 철학에서 도덕 실체 혹은 선의지인 인(仁)의 실천 범위는 무한하지만, 부모형제가 구성원인 가정으로부터 실천이 확장된다. 왜냐하면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활 단위가 바로 가정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효(孝)와 자애(慈愛)가 있고, 형제자매 사이에는 제(弟-형은 동생을 배려하고, 동생은 형을 존중한다)가 있다. 가정에서 효(孝)는 부모와 자녀라는 수직적인 윤리[縱]이고, 제(弟)는 형제간의 수평적인 윤리[橫]이다. 수직적인 효(孝)를 밖으로 확장한 것이 바로 충(忠)이고, 수평적인 제(弟)를 밖으로 확장한 것이 붕우유신(朋友有信)이고, 장유유서(長幼有序)이다. 따라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충효라고 말하지만, 공자의 가정관과 국가관에 따라 엄격하게 말하면 효충(孝忠)이어야 한다.

부자와 형제 간의 도리는 인륜 중에서도 개인의 선택 의지가 반영될 수 없는 천륜이다. 다시 말하면 부자와 형제의 관계는 선천적이고 영원한 관계로서 어떤 후천적인 요소에 의하여 바뀔 수 없다. 후세에 어떤 사람들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를 주장하기도 하는데, 군신 간의 윤리, 스승과 제자의 윤리는 부자와 형제의 천륜과 성격이 다른 후천적 인륜이다. 다시 말하면 군주와 신하,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떨어짐[可離]과 합침[可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부자와 형제 사이에는 이러한 후천적인 떨어짐과 합침이 있을 수 없다. 군사부일체는 단지 군주와 스승에 대한 예의와 의무를 강조하는 구호일 뿐 군주와 신하 그리고 부모에 대한 도리가 동일한 성격임을 긍정한 것이 아니다.

2) 공자는 왜 그토록 향원을 평가 절하하였을까?

공자는 『논어』에서 중행(中行)의 인품과 함께 비록 어느 한쪽에 편중될 수 있지만 긍정할 수 있는 인격으로서 광자(狂者)와 견자(狷者)를 든다.

공자에서 최선책은 당연히 중행의 인품을 가진 사람과 일을 도모하는 것이다. ‘광(狂)’과 ‘견(狷)’은 차선책이다. 공자에 의하면, 견자는 고집이 센 사람으로서 스스로 올바른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그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다. 『논어』에 나오는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며, 말하지도 말고, 행동하지도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顔淵」)”는 것이 바로 견자의 태도이다. 반면 광자는 매우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성인의 뜻을 실천하려는 굳은 의지의 소유자이다. 

이처럼 공자는 견(狷)과 광(狂) 그리고 중행(中行)을 모두 긍정한다. 그러나 유독 향원에 대해서는 혹독한 비평을 한다. 향원(鄕原)으로 되어 있지만, 주희는 ‘原’이 ‘愿’과 동의어라고 한다. ‘원(愿)’은 근후한 인품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시골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겉만 보면 근후하고 위엄이 있으며 마치 중행의 인품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기에 영합하고 온갖 이해득실을 따지면서도 표정으로 그것을 가리고 근엄한 척하는 자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대표적인 이중인격자이다.

 

 

3) 귀신에 대한 공자의 태도

공자는 과연 귀신의 존재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부여하였고, 귀신의 역할에 대하여 어떤 신뢰를 보였는가?

공자는 ‘귀신을 섬겨도 된다’ 혹은 ‘섬겨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지 않았고, 죽음의 세계에 대하여 ‘알고 있다’ 혹은 ‘모른다’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사람과 귀신 사이에 사람의 우선성을 긍정하였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무대와 죽음의 무대 사이에서 현재 우리들의 무대에 대하여 우선성을 부여했을 뿐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 교감을 이루면서 사는 사람은 바로 살아 있는 우리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귀신의 존재 여부는 알 수 없다. 그것들과 특별한 교감도 없다. 그렇다면 왜 산 사람에 대한 의무도 아직 미진한 상태에서 존재성을 명확하게 인지할 수도 없고, 교감할 수도 없는 귀신에게 정력을 낭비하려고 하는가? 

공자는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지만 멀리할 수 있다면 지혜롭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귀신의 존재성에 대한 희미한 긍정을 의미한다. 그러나 ‘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귀신이 존재한다고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의 가치와 역할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겠다’는 존이불론(存而不論)의 입장이다. 부정은 하지 않지만 멀리한다. 즉 귀신의 역할인 길흉화복을 귀신에게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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