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0가지 질병으로 보는 생로병사 풍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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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뒤흔든 10가지 질병으로 보는 생로병사 풍속도
  • 대학지성 In & Out 기자
  • 승인 2021.06.20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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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디컬 조선: 우리가 몰랐던 조선의 질병과 의료, 명의 이야기 |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356쪽

조선시대에는 전염병이 거의 매년 찾아와 팬데믹이 일상이었다. 감기, 종기, 중풍부터 홍역, 천연두, 학질까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조선인들이 가장 두려워한 질병은 무엇이었을까? 고작 감기로 생사가 갈렸던 시대엔 질병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역병으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지면 무엇으로 이겨냈을까?

이 책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체계적인 의료 시스템을 세우고 백성을 구제해온 조선인들의 질병에 대한 끈질긴 투쟁기다. 의학 교육의 산실 전의감과 대표 서민 병원 혜민서 등의 의료 시설부터, 세종의 소갈증과 송시열의 치질 등 조선 땅을 휩쓴 10대 질병과 그 치료법, 왕들이 앓았던 질병과 사인(死因), 그리고 의술로 이름을 날린 명의와 각종 의서까지.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500년 조선 의료의 모든 것을 흥미롭게 담아냈다.

저자는 조선의 질병과 의료에 초점을 맞춰 우리 역사의 새로운 얼굴을 조명했다. 마음의 병인 심열증에 시달린 왕들, 의료사고로 사망한 효종과 찰밥이 목에 걸려 죽은 선조 등 구중궁궐의 사연부터 감기에 걸렸을 때 꼭 지켜야 할 금기 사항, 신비의 약재 흡독석 등 민간의 대증요법과 생활상까지 조선의 생로병사 풍속도를 생생하게 그렸다. “왕은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장수하지 못했다?” “문종은 원래부터 병약했다?” “조선 왕실에는 종기 인자가 있었다?” 등 세간의 오해도 바로잡는다.

오늘날 한국인의 기대 수명은 80세가 넘는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사람이 80세 이상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조선의 평균 수명은 기껏해야 30대 중반에 불과했고, 장수의 기준은 고작 환갑을 넘기는 것이었다. 현대 의학으로는 간단하게 치료하는 질병이 조선시대에는 공포의 병마로 인식되었다. 지금이야 간단한 외과 시술로 제거할 수 있는 종기가 당시에는 최고의 의료 혜택을 받았던 왕들을 사망으로 몰고 갔다. 얼마나 무서운 질병으로 여겼는지 종기 전문 기관인 치종청까지 두었다. 감기 또한 의외로 혹독해서 오래 지속되는 경우 과경(過經)이라고 부르며 몹시 두려워했다. 세종 시기 형조판서였던 김점(金漸)은 어전회의 석상에서 자식이 감기에 걸렸으니 어의를 보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러한 질병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서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찜질 치료소인 한증소와 행려병자 구제를 위한 시설 활인서 등 여러 의료 기관을 운영했다. 또 전의감과 혜민서를 위시해 체계적으로 의관과 의녀를 양성했다. 덕분에 허준, 대장금 등 시대를 풍미한 명의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민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의서 《구급간이방》과 동양의학을 대표하는 걸작 《동의보감》 같은 의서를 편찬해 전국에 반포하여 모든 백성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선인들 역시 무방비하게 질병의 공격에 당하지만은 않았다. 이처럼 질병을 이겨내기 위해 끈질기게 분투하는 모습은 팬데믹 시대를 지나고 있는 요즘의 우리를 떠올리게 한다. 500년 전 조선인들이 겪은 위기와 그 극복 과정을 담은 이 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갈등의 일면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백신이 없었기 때문에 강력한 ‘사회적 거리 두기’만이 전염병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돈 있는 양반들은 산속에 피신처를 구해 때때마다 그곳으로 달아났고, 거리 두기와 봉쇄의 단계를 넘어 역병 때문에 아예 마을을 버리고 산으로 피신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1급 감염병으로 분류되는 천연두가 유행하면 제사뿐 아니라 결혼과 같은 잔치도 금했으며, 심지어 부부간에 동침도 하지 못하도록 했다. 나라에서는 외출을 금지하는 봉쇄령과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연산군 시기에는 원자가 천연두를 앓는 중에 국상이 생기자 곡읍(哭泣, 소리 내어 슬프게 우는 것)을 중지하고 궐문을 닫아걸었다. 거리 두기는 중국 사신이 왔을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18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천연두 예방접종법인 종두법이 처음으로 조선에 도입되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정약용이다. 그는 자신의 의서 《마과회통》에 인두종법(人痘種法)을 소개했다. 이는 천연두를 앓는 사람에게서 두즙(痘汁), 즉 진물을 취하여 인체에 주입하는 방법이다. 소의 두즙을 접종하는 우두종법(牛痘種法)도 함께 기술했는데, 인두종법에 비해 훨씬 안전하지만 서양에서 들어왔다는 이유로 배척되어 본격적으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후 한동안 종두법이 중단되었다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지석영에 의해 널리 퍼져, 천연두 극복의 시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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