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과 격리

[리베르타스]

2020-03-22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검역을 뜻하는 ‘Quarantine’은 이제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외국여행을 위해 공항을 출입하면서 검역이라는 단어에 시선을 오래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요즘 같아서는 검역이 공항이나 항만 출입자들을 붙잡아둘 수 있고, 14일의 격리로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도 1995년 장편소설 『검역La Quarantaine』을 썼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자크와 레옹 형제가 조상들이 살았던 땅을 찾아 떠나는 ‘정체성 찾기’ 혹은 ‘가족의 신화 찾기’ 등의 주제로 읽을 수 있다. 『검역』의 주인공은 아프리카의 모리셔스 섬으로 가기 위해 프랑스를 떠나 오랜 항해 끝에 섬을 목전에 두게 되지만 인근의 또 다른 섬에 정박하게 된다. 형제는 모리셔스 인근의 플레이트 섬에 40일 동안 격리된다. 프랑스어로 ‘quarantaine’, 즉 ‘약 40’은 그들이 섬에서 강제로 머물러야 하는 격리 기간이기도 하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섬 전체가 코호트 격리를 당한 셈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검역』의 등장인물들은 아프리카의 섬으로 가려는 유럽의 이민자들이고 잠재적인 전염병 보균자이기 때문에 40일 동안 목적지 하선이 불가능한 채 제한된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이들은 배에 머무는 대신 섬에 하선했기 때문에 일본 요코하마 항에 하선하지 못하고 선내에 갇히게 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호’의 승객들에 비해 생활여건이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정은 다르다.

40일간의 한정된 기간 동안 플레이트 섬에 격리된 ‘아바’ 호의 승객들은 최소한의 식량을 공급받으며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야만 한다. 물과 식량이 부족한 가운데서 섬의 임시 거주자들은 통제와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이 기다리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수평선 너머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배와 격리 해제 소식이다. 격리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스스로 섬을 탈출하다가 죽는 사람도 생긴다. 섬의 임시 거주자들 가운데 질병을 얻게 된 사람들은 플레이트 섬 인근의 또 다른 불모의 섬인 가브리엘로 옮겨진다. 이중의 격리 속에서 차이가 있다면 가브리엘 섬에 격리된 사람들은 죽음에 좀 더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격리 중에 죽는 사람도 늘어간다. 이런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모리셔스 섬은 등장인물들이 40일 뒤에 도착할 수 있는 현실의 공간이 아니라 살아서는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으로 묘사되기 시작한다. 요즘 강제 격리 혹은 자발적 격리 상태에 있는 사람들의 불안도 언제 병이 나타날지 모르고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는 단절감 속에서 느끼는 두려움에 있을 것이다. 문제는 섬에서든 다른 공간에서든 격리 당한 사람들에게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선택권이 없다는 것이다.

무인도 혹은 난파 소설의 핵심 주제 중 하나인 ‘구원의 외재성’은 소설 속에서나 현실,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즉 폐쇄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그곳을 벗어날 수 없고 외부에서 올지도 모르는 구원의 가능성에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플레이트 섬에 유폐된 사람들 역시 자립이 불가능하고 대부분의 식량을 모리셔스 섬에서 오는 배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 『검역』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전염병을 빌미로 이민자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람들은 모리셔스 섬과 본국의 권력자들이다. 하지만 임시 체류지이자 검역소인 플레이트 섬에 격리된 자들을 억압하고 ‘분리와 금지’의 법령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외부 세계의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소설의 주인공 레옹은 “우리를 바위섬에 붙들어 매어놓고 고립시켜놓은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공포심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에 앞서 30여 년 전에 범선을 타고 온 1,000여 명의 이민자들 역시 그들 스스로가 만들어낸 통제와 억압 속에서 본섬에 가지 못하고 대부분 검역소에서 죽고 말았다.

검역과 격리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는 40일이 지난 어느 날 거짓말처럼 배가 들어와 섬의 생존자들을 실어갈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지금 우리사회도 검사(검역)를 통해 확진자가 될 수 있고 지역사회라는 거대한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폐쇄된 장소에 격리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져 있다. 카뮈의 『페스트』에서 페스트가 사라진 것은 전염병에 맞서 끝까지 싸운 의사 리외와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임”을 깨달은 랑베르 같은 사람들의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염병을 몰아내고 도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감과 연대의식이 필요했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