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역사상 전염병을 어떻게 극복해왔는가

[신간소개]

2020-03-22     김한나 기자

■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 제니퍼 라이트 지음 | 이규원 옮김 | 산처럼 | 384쪽
 

이제 전염병은 역사책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지 않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에볼라출혈열,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 중증급성호흡기증(SARS),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등 신종 전염병이 속속 출현하고 그 빈도 또한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급속히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 사회는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감염의 위험이 커졌고, 항공산업의 발달로 고속·대량의 이동이 가능해져 확산의 위험은 더 커졌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병원체 폭증의 위험과 공장식 밀집 축산으로 병원체 변이의 위험, 그리고 무분별한 개발로 미지 병원체 접촉의 위험도 높아졌다. 세계 곳곳에서 권위주의 부패 정권이 횡행하면서 전쟁, 내전, 분쟁 등이 계속돼 기본적인 위생 및 방역 체계도 무너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천명했듯이 바야흐로 ‘전염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직면하는 전염병에 대한 과제는 과거와 동일하다고 봤다. 이 책에서는 지도자의 리더십, 정부 당국의 대처, 언론의 역할이 전염병과의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할 만큼 막중하고, 개개인의 인식과 행동도 그것들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민과 학계와 정부가 협력했을 때 최상의 결과가 도출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이 책은 무엇보다 과거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등 ‘전염병의 시대’를 살게 된 우리에게 유용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

이 책은 인류가 공포에 떨며 속수무책으로 당해온 전염병 13가지를 해박한 역사 지식으로 풀어내며 어떻게 그 전염병들을 극복해냈는지를 소개한다. 고대 로마에서 창궐한 안토니누스역병을 비롯해 가래톳페스트(흑사병)와 지금도 근절되지 않는 매독, 결핵, 콜레라, 나병, 장티푸스 등을 다룬다. 무도광(舞蹈狂)이나 기면성뇌염, 전두엽절제술 등 조금은 낯선 병들의 발병했을 당시 상황과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생긴 일들, 대처방법 등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역병'이라는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적일 만큼 의미를 갖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이유는 역병에 대해 취해진 대책들이 대부분 놀랍도록 뻔해 보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고, 문자 그대로든 비유적으로든 태워 죽여서는 안되며, 도덕적으로 말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아무런 효과도 없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갑자기 새로운 역병이 발생하면 우리는 300년 전의 사례로부터 배웠어야 할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최근에 읽은 역사책에는 과거를 현대의 시점에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쓰여 있었다. 서로 다른 시대를 마치 비엔나소시지처럼 완전히 분리해서 파악하라는 것인데, 시간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며 "하지만 현재의 의식을 이루는 모든 생각이 최선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풀어 가래톳페스트를 퍼뜨렸기 때문에 그들을 증오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는 사람이 여전히 있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이 손을 씻었는지 걱정하는 것은 전염병을 옮긴 요리사 메리 맬런, 일명 장티푸스 메리와 상당한 관계가 있다"고 적었다. 결국 과거도 현재 못지 않게 우스꽝스럽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직면할 과제는 대부분 과거와 동일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오늘날과 미래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이 책에 등장하는 뛰어난 인물들처럼 역병에 침착하게 대처한다면 상황은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전한다.

이 책에서는 끔찍한 전염병의 발병으로 고통받고 죽어가는 사람들과 일상에 대해 묘사하면서, 더불어 어떻게 위기를 헤쳐 나가고 피해를 최소화했는지, 어떻게 죽어가는 환자들을 위로하고, 어떤 희생을 치르며 고귀한 성취를 이루어 현재의 문명 세계에 도달하게 됐는지를 저자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신랄하고 경쾌한 어조로 그려냈다. 저자는 "공포에 굴복해 남에게 책임지우지 않는 한, 우리는 질병과 질병에 붙은 낙인을 이겨낼 수 있다"며 "서로가 아니라 역병과 맞서 싸울 때 우리는 단지 질병을 물리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과정에서 인간성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미국의 작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나쁘게 끝났다: 사상 최악의 이별 13장면』, 『우리가 먼저 왔다: 먼저 겪은 여성들이 들려주는 관계에 관한 충고』 등의 저서를 냈고,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욕 포스트』, 『뉴욕 업저버』를 비롯해 다양한 지면에 역사, 문화, 정치 등 폭넓은 주제로 기고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