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토 이래의 위대한 회화술을 집대성하다

2023-05-20     이명아 기자

■ 회화술의 서 | 첸니노 첸니니 지음 | 츠지 시게루·이시하라 야스오·모치즈키 카즈치카 편역 | 구자현 옮김 | 미진사 | 312쪽

 

조토 디 본조네, 타데오 가디, 첸니노 첸니니. 이 가운데 첸니노 첸니니의 이름만큼은 분명 생소하게 느낄 것이다. 첸니니는 작품이 아닌, 회화의 기술을 다룬 저작 『회화술의 서IL LIBRO DELL’ARTE』로만 전해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실적이고 자연적인 묘사로 중세 회화, 또한 예술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던 조토는 당대 프레스코 회화 규모에 걸맞게 많은 제자들을 두고 일했다. 조토의 화풍은 공방을 통해 타데오 가디에게로, 그의 아들 아뇰로 가디에게로, 그리고 이 책을 저술한 첸니노 첸니니에게로 이어졌다. 

첸니니는 아뇰로 가디의 공방에서 1398년을 전후하여 약 12년간 일했던 ‘조토파의 마지막 후예’로, 조토 이래로 전해온 화법, 정확히는 중세 후기 이탈리아 회화에 요구되는 모든 기술을 구전에서 기록으로 옮겼다. 조토에 대한 그의 존경심은 제1장의 서술 “조토는 회화의 기술을 그리스어에서 라틴어로 바꿔 근대의 것으로 만들었고, 이 기술을 어느 누구도 다다르지 못한 경지라 이를 정도의 완벽한 것으로 만들었다”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첸니니는 중세 회화, 정확히는 중세 후기 이탈리아 회화에 요구되는 모든 기술을 구전에서 기록으로 옮겼다. 

그림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 안료와 붓, 종이, 천, 석고, 아교 등의 재료를 마련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프레스코화, 패널화, 장식 등에 옷의 주름과 머리카락, 피부색을 올리는 세부적인 지침까지 그야말로 화가라면 배워야 할 모든 지식을 안내한다. 첸니니가 기록한 것은 그저 중세 이탈리아 공방에서 이어가던 회화 기술만이 아니다. 그는 르네상스에 가려져 있던 한 시대를 글자 속에 담아냄으로써, 600여 년이 지난 우리 앞에 14세기 피렌체 예술가들의 삶과 태도를 오롯이 펼쳐보인다.

이 책은 총 5부, 그리고 그 아래 189장의 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회화술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설명하는 서문, 드로잉을 위한 밑작업과 재료, 드로잉에 활용되는 여러 종이의 쓰임 등을 소개하고 있으며, 제2부는 안료를 직접 마련하고 각 안료의 성질과 조색하는 방법, 붓을 만드는 법 등에 대해 자세하게 펼쳐낸다. 

제3부는 프레스코와 세코 화법의 차이는 물론, 각 화법에서 인물과 의복을 채색하고 안료별로 채색에 요구되는 과정 등을 담아내는 한편 벽과 패널 등에 유채로 그리는 방법, 금박과 석박을 활용하는 법에 대해 논한다. 제4부는 패널화를 위한 여러 과정과 화료에 대해 소개하며, 석고 바탕칠, 잉크와 금박, 바니시 등을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제5부는 다양한 바탕에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설명하는 장이다. 채색필사본, 깃발, 유리, 유골함등을 장식하거나 색을 입히는 방법을 소개하며 인체에 석고를 부어 본을 뜨는 방법 등에 대해서도 안내한다. 

이 책의 특징은 본문 189장을 더욱 수월하게 활용하도록 정리한 부록에 있다. 개별 안료의 제작법을 간략하게 구성한 색명표는 물론이고, 참고한 여러 사본과 판본에 대한 설명과 각종 용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소개한 용어해설이 그러하다. 용어해설을 지도로 삼아, 그간 전해온 첸니니의 모든 사본과 판본을 간략히나마 가늠해볼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당대를 살았던 이들의 가치관, 영혼의 고귀함을 예술로 구현하려던 태도, 신을 마주하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다다라야 할 경지, 성실하고도 경건한 예술가의 자세를 마주할 수 있다. 다양한 범주의 가치 추구,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매체,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예술 등 자유로움과 혼란이 가득한 현대미술에서 잠시 벗어나 글 너머로나마 다른 시대의 예술가들의 모습에서 새로이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 영감은 누군가에게는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신앙이, 누군가에게는 나 자신을 마주케 하는 거울이자 내일로 나아갈 길이 되어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