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집 막내아들’, 정말 양자역학스럽네!

[IBS 과학리포트]

2023-04-29     기초과학연구원

“꿈이었을까. 빙의, 아니면 나만 홀로 다녀온 시간여행?
이토록 생생한 기억은 나만의 몫인 건가” -‘재벌집 막내아들’ 中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윤현우는 의문의 사고를 당한 후 의식불명 상태에서 진도준의 삶을 체험한다.

지난해 12월 25일,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최종회가 방영된 직후 온라인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주인공 진도준(송중기)이 할아버지가 소유한 기업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17년(14화 분량) 동안의 이야기가 전부 ‘꿈'인 것처럼 연출됐는데 이 장면에 대한 시청자의 해석이 엇갈린 겁니다.

표면적으로는 의식불명에 빠진 윤현우(송중기)가 일주일동안 꿈속에서 과거 인물인 진도준의 삶을 체험한 것으로 그려졌습니다만, 일부 시청자는 꿈이 아닌 환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진도준이 행했던 일들이 윤현우가 사는 세계에서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이지요.

논쟁이 오가는 가운데 한 누리꾼의 말이 관심을 끌었습니다. 결말을 양자역학에 빗댔는데 ‘재벌집 막내아들’ 제작진처럼 이 누리꾼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냈죠. 양자역학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이미지 때문이었을까요? 양자역학에 대해 알아보며 그 이유를 추측해보도록 하죠.


Part1. 물리학에도 ‘닫힌 결말’과 ‘열린 결말’이 있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결말이 명확하면 닫힌 결말, 반대로 독자나 시청자가 직접 상상해야 하면 열린 결말이라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전자는 결말이 딱 한 가지뿐이고, 후자는 여러 결말이 공존하고 있는 겁니다.

물리학의 한 분과인 ‘역학(물체에 작용하는 힘과 운동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도 비슷한 방식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공, 컵, 휴대전화처럼 위치를 알 수 있는 대상을 연구하는 고전역학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작은 입자인 전자처럼 현재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대상을 다루는 양자역학입니다.


고전역학, 미시세계에서는 안 통해

양자역학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두 분야의 차이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전역학은 물체의 운동을 수식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입니다. 예컨대 학교에서 배우는 뉴턴의 가속도법칙은 물체에 힘이 작용했을 때 얼마나 빠르게 가속되는지를 ‘힘=질량×가속도’로 표현하죠.

이는 물체의 질량과 힘의 크기를 알면 향후 어떻게 운동할 지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수식에 의해 결정돼 있다는 의미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전역학은 만능이 아닙니다. 크기가 100억분의 1미터(m) 수준의 작은 물체인 ‘원자’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자는 원자핵(양전하)과 그 주위를 도는 전자(음전하)로 이뤄져 있습니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모든 원자는 언젠가 붕괴하는 운명을 맞이합니다. 가속 운동하는 전자는 전자기파를 방출하는데 이렇게 에너지를 소모하다 보면 원자핵과 가까워져 결국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분명한 건 고전역학은 우리 주변에 있는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어도 전자처럼 아주 작은 물체의 운동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뉴턴의 요람(Newton's cradle)은 질량이 같은 쇠공이 각각 두 개의 줄에 연결돼 있는 진자다. 바깥쪽 쇠공 하나를 당겼다가 놓으면 진자 운동을 하다 인접한 공과 충돌해 에너지를 전달하고, 멈춘다. 에너지는 쇠공들에게 전달돼 반대편 쇠공이 튀어 나간다.

전자를 보는 새로운 눈, 양자역학

전자의 기묘한 성질은 ‘이중 슬릿 실험’에서 잘 드러납니다. 두 개의 틈새(슬릿)를 지나 벽에 닿은 전자들이 그리는 무늬를 살펴보는 실험인데 만약 전자가 공 같은 입자라면 2개의 무늬를, 물결 같은 파동이라면 슬릿을 지난 후 서로 간섭을 일으켜 여러 무늬를 형성할 겁니다.

실험 결과는 전자를 입자로만 여겼던 당시의 상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파동을 통과시켰을 때와 같은 무늬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유가 궁금했던 과학자들이 전자 검출기를 달아 전자가 슬릿을 통과하는 순간을 관찰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전자가 태세를 바꿔 2개 무늬를 그리기 시작한 겁니다.

 

이중 슬릿 실험을 나타낸 그림(왼쪽)과 전자들이 파동처럼 간섭을 일으켜 틈새(슬릿) 뒤에 여러 무늬를 형성하는 모습(오른쪽).

이는 전자가 입자일 수도, 파동일 수도 있다는 뜻인데 사실 전자뿐 아니라 광자(빛의 입자), 원자, 분자 등도 비슷한 성질을 가졌습니다. 곧 과학자들은 이런 입자들을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학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지금의 양자역학입니다.

양자는 1, 2, 3, 4…처럼 불연속적인 값을 갖는 물리량의 최소 단위(이 경우 1)를 말합니다. 현재 양자역학은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와 그의 제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 등이 주축이 돼 완성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자 개념은 독일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가 처음 도입했습니다.

 

왼쪽부터 보어의 수소 모형,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보어가 이를 활용해 “전자가 불연속적인 에너지 값을 가지며 이에 대응하는 궤도에 있을 때 에너지를 방출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원자 모형을 고안했습니다. 이 모형은 몇 가지 약점이 있어 훗날 폐기됐지만,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 슈뢰딩거의 파동함수 등 양자역학을 수학적으로 기술하는 이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를 토대로 전자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주장이 등장하게 됐죠.


Part2. 열린 결말의 묘미는 ‘해석’이다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거의 완벽하게 설명했습니다. 고전역학으로 충분히 분석할 수 있는 대상도 양자역학으로 들여다보면 더 정확한 값을 내놓았죠. 그런데 양자역학은 미완성이었습니다. 전자가 특정 위치에 있을 확률을 제시할 수 있지만, 왜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갖는지 설명해 주진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과학자들은 나름의 해석을 곁들일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현재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의 ‘코펜하겐 해석’이 대표적인데요, 이 해석에 따르면 전자의 이중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확률적으로 존재 가능한 모든 위치에 동시에 존재하며
관측되는 순간 하나로 결정된다.“

즉 전자를 관측하기 전에는 여러 위치에 동시에 존재해 마치 서로 간섭하는 파동처럼 행동하고, 관측하는 순간 한 곳을 뺀 나머지 위치에 존재할 확률이 사라져 입자처럼 행동한다는 겁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말 그대로 ‘해석’이므로 어느 정도 상상력이 가미됐으며 참‧거짓을 가릴 수도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과학자의 반발을 샀는데 상대성이론으로 잘 알려진 독일 출신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며 죽을 때까지 이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고, 양자역학 또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외에도 미국 물리학자 휴 에버렛이 제시한 ‘다세계 해석’도 흥미롭습니다. 코펜하겐 해석과 다르게 관측 시 특정 위치들에 존재할 확률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서 각각 존재한다고 보는 관점인데 이는 스파이더맨, 닥터스트레인지 같은 SF영화에서 ‘멀티버스(Multiverse)’라는 설정의 과학적 근거로 쓰이기도 합니다.

 

영화 닥터스트레인지에서는 마블 히어로 중 한 명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멀티버스를 통해 차원을 오고가며 적과 싸운다. 사진은 닥터 스트레인지를 연기 중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사진 출처 = 위키미디어]

이해는 못 해도 활용도는 ‘따봉’

현재 물리학계에서는 다수의 과학자가 코펜하겐 해석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만, 완벽하게 옳은 것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며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전자기기 역시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대표적으로 ‘꿈의 컴퓨터’로 불리는 양자컴퓨터의 정보단위인 큐비트는 0과 1 두 값을 동시에 갖는데 이는 양자역학에서 물질이 여러 가지 상태로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해 개발됐습니다. 전자기기 외에도 다양한 연구 단체가 양자역학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는 기초과학연구단(IBS)의 양자나노과학연구단,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연구단이 있습니다.

한 예로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연구단 소속 김준성 학연연구위원 연구팀은 새로 합성한 위상물질이 고유한 양자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를 작년 말 국제학술지에 발표했습니다. 양자역학을 활용해 차세대 정보 소자로 쓸 수 있는 물질을 만들어 낸 겁니다
.
이쯤 되면 누리꾼이 ‘재벌집 막내아들’이 양자역학 같다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나요? 양자역학처럼 결말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고, 전자가 입자인 동시에 파동인 것을 윤현우와 진도준을 오가는 상황에 빗댄 걸 수도 있습니다.

최종 해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분명한 건 해석과 상관없이 ‘재벌집 막내아들’이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는 점입니다. 마치 양자역학처럼요.


[출처] IBS(기초과학연구원) NAVER 포스트 | ‘재벌집 막내아들’, 정말 양자역학스럽네! | IBS IBS 원자제어 저차원 전자계 연구단 | 2023. 0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