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화콘텐츠의 시대

2023-03-05     안채린 경남대·문화산업학

■ 책을 말하다_ 『다시, 문화콘텐츠: 성공하는 콘텐츠의 비밀』 (안채린 지음, 해남, 118쪽, 2023.02)

 

누구나 한 번쯤은 문화콘텐츠가 국가 미래의 먹거리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콘텐츠가 필요해!’라는 말을 들으면 어렴풋하긴 해도 그게 대략적으로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런데 막상 그 문화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문화콘텐츠학과에 재직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 “그래서, 문화콘텐츠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이에요?”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문화콘텐츠에 대해 궁금해 하고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아직 문화콘텐츠는 상당히 모호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책 <다시, 문화콘텐츠: 성공하는 콘텐츠의 비밀>은 기존의 기계적이고 사전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문화콘텐츠의 새로운 정의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특정 생활양식을 기반으로 한 문화를 반영하여 만들어지는 문화콘텐츠는 만들어진 데에서 그치지 않고, 생산된 문화콘텐츠 자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면 또다시 이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다. 먼저 ‘특정 문화를 반영’한다는 의미를 알아보자. 특정 지역의 문화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는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느낌을 들게 한다. 해외 시장에 진출한 한국의 문화콘텐츠들은 모두 한국 특유의 문화를 자연스레 반영하고 있다. 장유유서의 문화, 결혼을 사랑의 완성이라고 여기는 경향, 아이를 낳아야 어른이 된다고 믿는 경향 등은 한국 드라마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는 한국의 문화적 요소들이다. 이러한 문화적 요소들을 친숙하게 여기거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권에서 한국 드라마들은 줄곧 사랑을 받아왔다. 1세대 한류 드라마인 <대장금>을 사랑했던 국가들의 문화적 공통점을 보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낮고, 장유유서의 질서가 강한 경우가 많다. 이슬람 문화권과 아시아가 대표적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이나 북유럽 등지에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 요소가 담긴 드라마들이 큰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새로운 문화 형성의 기반’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문화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공유하는 특정 생활양식인데, 이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문화콘텐츠도 결국 사람들이 소비하게 된다. 문화 소비자들은 주어진 대로 문화콘텐츠를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주는 기술적 환경이 큰 역할을 하게 된다. 

한때 ‘머선129’라는 유행어가 만들어진 적이 있다. 채널 tvN의 <신서유기>라는 프로그램에서 시작된 이 유행어는 개그맨 강호동의 경상도 사투리 발음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경상도에서는 때로 ‘ㅡ’와 ‘ㅜ’발음을 ‘ㅓ’로 발음하는 경향을 찾아볼 수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냐’라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인 ‘무슨 일이고’를 표현하는 강호동의 독특한 사투리 억양을 프로그램 제작진들은 ‘머선 일이고’라는 자막으로 과장하여 표현했다. 여기에 10~20대의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문화, 즉 단어를 축약하거나 단어의 일부를 숫자나 영어로 표기하는 것을 즐기는 문화가 더해져 ‘머선 129’라는 암호 같은 표현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 신조어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수없이 공유되어 하나의 놀이 문화로 자리 잡게 되고, 새로운 유행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기존의 문화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콘텐츠가 새로운 문화 형성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다시, 문화콘텐츠>는 1부에서 문화콘텐츠의 본질적 개념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 후 2부에서는 보편성과 차별성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법칙을 통해 <기생충>, <사랑의 불시착> 등 세계시장에서 성공한 K-콘텐츠들을 분석하여 문화콘텐츠의 본질을 다양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끝으로 3부에서는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NFT와 같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시장 환경 속에서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의 창의성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신기술의 등장이 인간의 역할을 소멸시킬지의 여부가 주목되고 있는 지금, 이 책은 문화콘텐츠의 본질과 인간의 역할에 대해 다시금 주목할 수 있게 한다. 연구자나 관련학과 학생들뿐만 아니라 문화콘텐츠에 관심을 갖는 일반인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된 이 책을 통해 문화콘텐츠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작게나마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


안채린 경남대·문화산업학

경남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예능방송 PD로 일을 하다 영국 워릭대학교 문화정책센터에서 문화산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 분야는 창의 노동, 문화콘텐츠 산업, 문화경영 전략, 문화정책으로 이에 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저서로는 《다시, 문화콘텐츠》, 《창의노동》, 공저로는 《Routledge Handbook of Cultural and Creative Industries in Asia》, 역서로는 《창조전략, 경영과 혁신을 다시 연결하라》, 《창의 노동과 미디어 산업》이 있으며,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