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중산층이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보고서]

2023-03-04     고현석 기자
                             평양제1백화점 내부 (출처: SPN 서울평양뉴스 http://www.spnews.co.kr)

2002년 시장이 합법화된 이후 20년이 지난 현재 북한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계층화(stratification)는 매우 주목해야 할 사회변동의 현상이자 결과이다. 

장기간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김정은 정권 10년 동안 대규모 건설사업이 계속되고, 무역과 상업이 발전하였으며, 북한 주민들의 생활 여건이 개선되고, 소비 생활이 눈에 띄게 증가한 배경에는 중산층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무계급 사회를 지향하고 강제적 방법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수단과 생산관계를 사회주의적 생산양식으로 개조한 북한 사회에서 중산층의 부활은 매우 의미심장한 변화이다. 

특히, 201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 주민들의 전반적인 생활 수준 향상, 북중 무역의 급격한 증가, 달러라이제이션(달러로 자국 통화를 대체하는 현상)의 가속화 등 북한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 중산층의 규모와 생활에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 이후 북한 중산층에는 어떤 변화가 나타나고 있을까?

통일연구원은 지난해 말 발행한 KINU연구총서 〈북한의 중산층〉에서 이에 대해 심도있는 분석을 내놓았다(연구책임자: 정은미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공동연구자: 박소혜 국회도서관 관장실 비서관·이종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연구보고서는 북한 중산층을 세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하여 각 유형의 특징을 분석했다. 

첫 번째, 권력형 중산층은 당, 행정, 군 안에서 지위나 권한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는 중하위직 간부 또는 관리자 집단이다. 권력형 중산층은 양호한 출신성분, 입당, 군복무와 같은 필수요건을 요구한다. 

두 번째 유형인 전문가형 중산층은 특수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고등교육을 이수한 사람들로 출신성분이 취약하나 학력자본을 활용하여 부를 축적한다. 주로 이들은 교육, 기술, 보건, 예술 부문에 종사한다. 

세 번째 유형은 상업형 중산층으로 일반 노동자, 가정주부, 학생, 은퇴자 등 가장 광범위한 인구집단을 포괄한다. 이들은 대체로 하루의 노동시간 대부분을 상업활동에 할애하고, 상업활동을 통해 획득한 소득으로 생활을 영위한다. 

세 유형의 중산층 분석을 통해 몇 가지 특성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중산층은 공식 직업으로 획득한 소득이 불충분하여 추가적인 소득 경제활동을 병행한다. 대체로 문서상 공식 직업을 유지하면서도 비공식적으로 상업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며, 이러한 이중적 경제활동은 가구의 이원적 소득구조를 형성한다. 

둘째, 북한의 중산층은 복수의 경제활동의 병행으로 인해 계급 내 모순적인 위치에 있다. 공식 직업 지위에서는 생산수단 및 노동력에 대한 통제권을 갖지 못하지만, 비공식 경제활동에서는 자본, 노동력, 의사결정 등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경우가 많다.

셋째, 비공식적 연결망자원이 중산층의 계층 지위를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특히, 권력형 중산층은 비공식적 연결망자원 중 혈연적 연결망자원의 동원이 다른 유형의 중산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넷째, 출신성분이라는 특수한 형태의 정치자본이 사회적 이동을 제약한다. 출신성분이라는 정치자본은 수직적 사회이동을 제약하는 요소로 작동할 뿐만 아니라 중산층 내에서 수평적 이동을 제약한다. 따라서 권력형 중산층과 전문가형 및 상업형 중산층 간에는 이동의 장벽이 존재한다.  

다섯째, 구(舊) 중산층과 신(新) 중산층 간의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 구(舊) 중산층은 출신성분에 따른 계층구조에서 기본군중 가운데 영예 군인, 전사자 가족, 피살자가족, 애국희생자 가족, 제대군인 등을 의미한다.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보훈 및 복지 역량의 하락으로 그들의 생활수준은 점차 하락한다. 반면, 출신성분의 계층구조에서 하위에 위치한 복잡군중 및 적대계급에서 속해 있던 일부 주민들은 시장을 기반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둬 생활수준이 크게 향상되었는데, 이들이 신(新) 중산층이다. 신 중산층이 성장할수록 구 중산층의 상대적 박탈감은 증대할 수 있다. 따라서 자원배분을 둘러싸고 구 중산층과 신 중산층 간의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보고서는 소득, 소비지출, 자산 보유의 세 가지 측면에서 중산층의 경제적 지위를 규정해보고자 했다. 2010년대 중후반 4인가구를 기준으로 북한의 중산층은 첫째, 1년 소득이 700~2,000달러 정도이고, 둘째, 한 달에 100달러 내외의 지출을 할 수 있으며, 셋째, 생활 필수 지출 이외의 여유자금이 있어 소득의 10% 정도를 저축할 수 있다. 

중산층의 가구는 실물자산으로 대체로 자전거, 선풍기, 전기밥솥 등을 보유하고 있고, 손전화를 대부분 이용한다. 냉장고, 세탁기, 컴퓨터와 같은 고가 전자제품에 대한 보유율이 계속 높아지면서 생활양식 측면에서 상층과의 격차가 점차 좁혀지고 있다. 2000년대 전후 시기에는 식량 소비량, 컬러TV의 보유, 외화의 보유와 같은 지표들이 계층분류의 기준으로 유효했으나, 2010년 이후에는 차별성이 약화되었다. 

중산층의 소비행태에서 모방을 통한 유행과 확산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자본주의 모방 경향과 더불어 한국산 제품이 중산층 유행의 표본이 되고 있다. 중산층의 소비는 개인의 기호와 취향이 체화된 형태의 소비, 실용주의를 넘어선 상징 소비, 시공간이 결합한 소비 등으로 차별화된다. 중산층의 욕망과 정체성에서 자녀 세대의 계층 재생산 욕망과 상층으로의 지향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자본 축적을 통해 개인주의를 체득하며 욕심과 행복, 체제 의구심 등 개인화의 욕망을 보여준다. 

중산층 유형 중에서도 권력형 중산층은 전문가형 중산층과 상업형 중산층보다는 소비생활이 좀 더 여유있고 풍요로운 편이며, 단속 또는 검열과 같은 통제에서도 자유롭다. 반면, 전문가형 중산층이나 상업형 중산층은 자녀교육에 집중 투자하고 평양을 동경하는 등 권력 획득에 대한 갈망을 보인다. 

북한의 중산층은 계층 지위 획득 및 재생산 그리고 사회이동 측면에서 사회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북한에서 뇌물, ‘덕과 정’의 실천, 지원사업 참여 등은 사회적 자본의 성격을 띤다. ‘덕과 정’의 실천과 지원사업의 참여로 공동체 안에서 사회구성원들과 신뢰와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획득하는 사회 자본은 사적 이익실현을 위해 뇌물을 통해 얻는 사회자본과는 성격이 다르다.

출신성분, 즉 토대는 약하지만 경제자본의 우위적 지위에 위치한 중산층은 사회자본을 축적하여 계층의 상향이동을 꾀한다. 경제력을 갖춘 중산층 여성들은 남편의 출세를 돕거나 자녀의 성공을 통해 계층의 상승이동을 추구하기도 한다.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중산층의 성장은 북한사회의 개방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이다. 

계층 상승이동에 성공한 경우 사회의 급격한 변화보다는 사회의 안정과 통합을 더 선호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북한 중산층의 성장이 반드시 사회변혁 또는 체제이행의 동력을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자영업자 및 중소기업가와 같은 임파워된 중산층의 규모가 늘어나면 출신성분과 같은 정치자본에 의한 불평등한 분배구조와 경제잉여에 대한 권력층의 약탈적이고 기생적인 의존행태에 불만이 누적되어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2000년대 초 시장화가 진행되던 초기에는 노동자, 가정주부, 은퇴자 등 일반 주민들이 상업활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비교적 많은 자본을 축적할 수 있었다. 권력과 지위의 특권이 없이도 많은 일반 주민들은 시장경제활동을 발판으로 경제적 지위가 상승했고, 개선된 생활양식과 풍요한 소비생활을 경험하면서 상대적인 사회이동을 경험했다.

보고서는 이처럼 2000년대 초 시장화가 진행되면서 나타난 북한 주민들의 상승적 사회이동 증가는 북한사회의 역동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시장이 안정화되고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유통되는 자본량이 많아지자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시장과 결합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코로나 이후 북한 주민들은 대북제재와 국경봉쇄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내부적으로 더 치열한 생존 경쟁에 처하게 되었으며 어렵게 획득한 경제잉여마저 일부를 관료들과 나눠야하기에 일반 주민들의 최종 수입액이 크게 감소한 상황에 보고서는 주목했다.

보고서는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업형 중산층에서의 하강 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고 결론적으로 중산층의 규모가 축소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러한 계층이동의 역행은 김정은 정권이 지향하는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을 실현하는 데 지체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북한 중산층이 지위 유지와 상승 이동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사회적 자본은 개인 또는 시장의 부(富)를 공공 및 공동체로 분배하는 효과를 지니며, 이로써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내에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기능을 갖는다. 

따라서 보고서는 "중산층의 계속 성장은 '사회주의 전면적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반면, 중산층의 위축은 북한사회의 불평등을 심화시켜 전체 사회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